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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남대문 안경 타운

나는 과외로 생활비를 벌어다 쓰는 가난한 대학생이었고, 조금이라도 싸게 안경을 맞춰보려고 용을 썼다. 누군가 남대문 시장에 가면 안경 싸게 할 수 있다고 알려줘서, 가본 적도 없는 남대문 시장을 용감하게 찾아갔다. 어디에 그 안경 타운이 있는지는 정확히 몰랐다. 하지만 어려워봐야 얼마나 어렵겠는가? 남대문 역인지 회현 역인지에다가 내려서 대충 들은대로 길을 찾아갔다.

그런데 내가 가는 길은 아무리 봐도 안경 타운 같지는 않았다. 그냥 사람들이 드문 드문 있는 골목길일 뿐이지 무언가를 파는 시장도 아니어 보였다. 뭐 그래도 어쩌겠는가. 여기 지나면 시장이 나오길 바라면서 계속 걸었다.

솔직히 나도 뭔가 잘못된 줄은 알았다. 그래도 너무 초행인 티를 안 내고 태연한 얼굴로 걸어가고 있었지. 천만다행으로 어느 아주머니가 다가오시더니 “오빠 여기서 뭐해?” 뭐 이런 식으로 물어보더라. 아니 나한테 왜 오빠라고 하는지 의아스럽긴 했는데, 지금 그걸 따질 때인가. 나는 얼씨구나하고 물었지. 아주 정중한 태도로 말이다. “안경 맞추려고 왔는데 길을 잃은 것 같습니다. 안경 타운에 어떻게 갈 수 있는지 길을 좀 알려주십시오.” 뭐 이렇게. 다행히 목적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은 아니었더라. 나는 감사하다고 꾸벅 인사를 올리고는 안경집을 찾아갔다.

어디 가서 로컬들한테 길을 물어본 일이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고 해서, 그냥 안경만 싸게 사왔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었던 어느 날이었다. 누가 남대문 시장 근처에 사창가가 있다고 하더라고. 서울 시내 한복판, 거기다 사람도 엄청 많은 곳이 남대문 시장인데 거기 그런 게 있을 수가 있나? 하고 의아해 하던 순간, 그 때 그날 본 그 음침한 골목길이 생각났다. 대충 맞춰보니 거기가 진짜 맞는 것 같더라. 그날 나는 안경 맞추러 가서는 사창가로 향했던 것이다. 벌건 대낮에 말이다. 아 당황스러워라.

헌데 내게 도움을 건낸 그 아주머니한테는 딱히 당황스러운 일이 아니었을 것 같다. 안경 맞추러 와서 거기로 빠진 사람이 어디 내가 처음이었겠나. 아무래도 사람 상대하는 직업이다보니 딱 보면 대충 고객(?)인지 안경 맞추러 왔다가 길 잃은 스무살짜리 학생인지 알았겠지. 그래도 혹시나 해서 물어는 본 것이고. 내 말을 듣자마자 어이쿠 이런 또 길치 하나 왔구먼 했겠지.

하여간 이 일이 크게 인상 깊었는지, 다시는 남대문에 안경 맞추러 가서 길을 잃지 않았다. 길 잘 알려주셔서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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