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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드디어 영주권 받기 전 마지막 단계

2009년이다. 내가 미국으로 온 해가. 금융위기를 한창 겪고 있을 때라 유학을 가기도 만만치 않았고 전망도 밝지 못했다. 하지만 더 늦어지면 영영 학교를 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냥 결정했다. 솔직히 말해서 원하던 학교는 아니었지만, 지금 떠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았다.


그렇게 미국에 와서 제일 먼저 느낀 것은 당혹감이었다. 정말 한국에서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수모를 많이 겪었다. 아니 상상은 했다. 내가 무슨 일을 겪게 될지 친구들로부터 충분히 들어서 알고 있었고, 나름 준비도 충실히 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주일에 70시간 이상을 일하면서 충분히 준비하기란 불가능했다. 아니 40시간만 일했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과연 미국에 내 자리가 있을까? 분명히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는 아니었는데, 하루하루가 불안했다. 그러다가 운 좋게 지금의 직장을 잡을 수 있었고 별 탈 없이 다닌 끝에 영주권을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오늘 시카고 북쪽에 있는 연방정부 건물에서 지문을 찍었다. 영주권을 application의 마지막 단계인 것이다. 집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영주권이 날아올거라고 통보받는 순간 무언가 말로 하기 힘든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지문날인 자체는 영주권 신청에서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다. 수많은 서류를 다 준비하던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몸만 가서 잠시 앉아 있다 오는 것일 뿐이다. 나도 이유는 잘 모르겠다. 문을 열고 나와 다시 시카고의 쨍한 햇살을 맞이하는데, 6년 전 처음 오던 그 때가 생각났다.


과연 미국에 내 자리가 있을까? 그렇게 고민했던 그 지난 날들이 말이다. 여기서 만난 고마운 친구들 좋았던 일들 모두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이제 영주권을 위해서 내가 더 할 일은 없다. 그냥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미국이란 나라에 내 자리가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는 그냥 기뻤다. 남들이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일일지 모른다. 그래도 막연한 불안감 속에 미국행을 결정하던 그날을 돌아보니 너무 크게 느껴진다. 6년 전 이 때에는 모든게 지금 나처럼 잘 풀려 있을 거라고 감히 상상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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