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imple Life

내가 미국으로 온 이유 1

요즘 들어 유독 바빴던 것 같다. 보통 정신없이 일이 많으면 생각이 없어지던데, 이번에는 어쩐일로 지나간 일들이 생각나더라.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아마도 미국으로 오기로 결정한 것이 내 인생의 가장 큰 결정 중에 하나였는데 그 이유를 생각날 때마다 정리해보는 게 의미가 있겠다 싶다.


동기가 된 일은 참 많았다. 그 중에 아마도 가장 강한 동기는 "평범한 생활"을 하기가 너무 어려웠다는 점이다. 난 결코 대단한 걸 원하지는 않았다. 그냥 직장 다니고, 퇴근하고 집에 와서 가족과 오손도손 밥먹고 대화하고 책도 같이 읽는 그런 생활을 꿈꿔왔다. 누구 기준으로도 대단한 건 아닌 것 같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게 너무나 힘든 목표로 보였다.


오해를 덜기 위해서 쑥쓰럼을 무릅쓰고 밝히자면, 난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참 잘 하던 사람이다. 소위 에이스 소리도 들었다.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다니는 직장이었냐면, 차라리 그 반대였다. 능력이 출중한 사람들이 주변에 많았고 그 뛰어난 사람들과 치열하게 일하면서 이룬 성취 하나 하나는 지금도 소중한 경험으로 남아 있다.


어느날 주위를 한번 둘러봤다. 나보다 직장생활 5년 10년 더 한 사람들을 봤다. 그 사람들은 분명 상위 1% 이내에 드는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이렇게 뼈빠지게 일해서 집을 살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물론 직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사는게 가능했겠지만, 적어도 출퇴근 좀 편한 동네는 꿈도 못꾸는 처지였다. 그렇다고 다른 사치를 부리는 것도 아닌데 당장 가족들과 보낼 시간도 없었다. 거의 매일 하는 야근에 툭하면 새벽에도 불려 나오는게 일상다반사니까.


그렇게 대단한 능력을 갖고 뼈빠지게 일해서 내가 원하는 목표가 이뤄진다면야 별로 불만 없다. 뭐 대단한 목표도 아니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 선배들의 모습을 봐서는 도저히 그렇게 될 것 같지가 않았다. 혹자는 그렇게 말하더라. 다들 그렇게 산다. 대출금 갚으며 야근 하며 살지만 다들 불만 없다고. 나보다 못한 사람도 많다고 말이다. 징징대지말라, 남탓하지 말라, 그냥 지금처럼 내 할일이나 하며 살아라 등등. 뭐 그래 다 맞는 구석이 있다.


그런데 말이다. 여기서 고생하는 사람들이 무슨 동네 양아치 최씨가 아니다. 상위 1% 이내에 드는 재능을 갖고 그렇게 뼈빠지게 일해도 생활기반을 잡기 어렵고 가족과 보낼 시간이 거의 없다면, 이건 뭐가 잘못된 게 아닌가? 마치 전교 1등하는 학생도 30점 밖에 못받는 시험문제처럼 말이다.


내가 아무리 직장에서 인정을 받아도 내 목표가 이뤄지지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모든게 공허해졌다. 여기서 이러고 있는게 의미가 없어보였다. 내가 내 인생을 살아야지, 내 직장상사, 내 회사 사장의 꿈을 이뤄주면서 그 사람의 인생을 살 수는 없는게 아닌가. 그래서 내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내 가족들에게 신경쓰고, 내가 진정 원하는 것 혹은 도움이 되는 것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래지 않아 이들은 내 직장생활과 양립가능하지 않음을 알았다. 그 때 난 내 직장을 관둬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소홀하게 하진 않았다. 나중에 내가 유학간다고 밝혔을 때, 도대체 어느 시간에 준비를 했었냐며 놀라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내겐 휴식이 필요했고, 해보고 싶던 공부를 하고 싶었다. 동시에 미국에 있는 친구들이 오라고 난리였다. 그래 지금 생각해보니 미국행이 그리 어려운 결정은 아니었다. 만약 자리를 못잡고 석사만 받고 한국에 들어가더라도 후회하진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태평양을 건너던 때에는 정말 미국에서 꼭 자리를 잡겠다고 다짐했다. 비행기표도 편도로 끊었다.


미국에 온지 6년. 잘 온 것 같다. 운이 좋은 덕에 지금의 회사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고, 최선을 다해서 일했더니 정말 일한만큼 인정을 받는 느낌이다. 기업문화도 합리적이다. 아마도 워낙 나라가 크고 좋은 회사도 많다보니 그런 것 같다. 칼퇴근하고 평소에도 충분히 쉬는데다 주말에도 푹 쉬고 운동도 많이 하니 오히려 더 젊어진 느낌이다. 한국에 있는 예전 동료들과 아직도 연락을 한다. 뭐 다들 그대로 있는 사람도 있고, 나가서 더 잘 된 사람도 있다. 가끔 내가 거기 남았다면 뭘 하고 있을지 생각해본다. 뭘 해도, 나름 잘 해나가고는 있겠지만, 지금처럼 살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