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 치팅 사건

약간 뒷북 때리는 감도 있지만 워낙 중요한 일이라 그냥 넘어갈 수가 없네. 이 사태에 대한 여러 언론 기사를 읽고 내 나름대로 정리해봤다.

폭스바겐은 독일의 세계 1위 자동차 회사다. 특히나 연비 좋고, 힘도 좋고, 오염물질 배출도 적게 하는 디젤 엔진으로 유명했다. 그런데 이게 구라였음이 밝혀진거다. 의도적으로 차량의 제어프로그램에 치팅 소프트웨어를 넣어서, 검사시에만 오염물질을 적게 배출하도록 조작을 했단다. 난 기술은 잘 모르겠는데, 연비 좋게 만들면 오염물질이 많이 배출되고, 오염물질을 억제하면 연비가 나빠지는 게 보통인 모양이다. 이 모순된 두가지를 한꺼번에 해결했다고 한게 폭스바겐 디젤 엔진이었는데 이게 쌩 구라였다니...

무슨 듣보잡 삼류 회사도 아니고, 공돌이의 본고장이자 성지, 독일의 최대 자동차 회사에서 이런 짓을 했다는게 너무나 충격이다. 세상에 진짜 믿을 놈 없구나. 자기 이익 앞에 별 거 있는 놈 드물다는 사실 또 한번 뼈저리게 느낀다.

그런데 이게 사람들 좀 놀래키고 넘어가질 일이 아닌 것 같다. 몇가지 후폭풍이 불어닥칠텐데 이쯤에서 뭔 일이 생길지 한번 짚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먼저 폭스바겐이라는 기업의 미래다. 당장 폭스바겐의 기업가치가 곤두박질쳤다. 요 며칠새 주가는 2/3토막이 났고 앞으로 얼마나 더 빠질지 모른다. 벌금과 소송 등으로 직접 타격을 받을 것이고, 브랜드 이미지도 나빠져서 판매가 꼬꾸라질 게 불보듯 뻔하다. 이미 CEO가 사임을 했는데, 뭐 이걸로 해결될 일은 아닌 것 같다. 아마 더 많은 사람들이 짤려야 할 모양이다. 게다가 매출감소가 현실화되면 대규모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와중에 사임한 CEO는 수백억원의 퇴직연금을 받는댄다. 역시 사고는 맨 위에서 치고 죽어나는 건 보통 직원들이구나.

그 다음으로는 자동차 산업의 변화다. 디젤 엔진이 환경규제도 만족시키면서 연비도 좋게 나온 덕분에 제법 인기가 있었다. 그런데 그 환경규제를 어떤 식으로 피해갔는지 알려졌으니, 이제 환경규제를 제대로 만족시키는 디젤 엔진만 팔아야 될거다. 그렇다면 연비가 떨어지는 건 당연지사. 인기도 같이 떨어질거다. 그러면 자연스레 반사이익을 보는 진영이 있다. 가솔린도 좀 이익을 보겠지만, 주로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제조사들이 이익을 볼 것이다. "클린 디젤"의 허상이 드러난 지금, "클린"의 포지셔닝을 갖고 있는 전기차, 하이브리드에 더 많은 투자가 될 것이다.

국제 정치의 영역에도 영향이 있을 것 같다. 현재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제법 있다는 나라를 5개 추려보면 다들 이 나라들을 꼽을거다. 미국, 중국, 독일, 러시아, 일본. 이 중에 러시아는 유가 하락으로 제 앞가림하기 바쁘고 일본은 미국과 아주 분위기가 좋다. 유럽에서 유일하게 미국에게 제 목소리를 내던게 독일이었는데, 미국이 사실상 폭스바겐의 목줄을 쥐고 있는 모양이 됐다. 미국이란 나라가 그렇다. 대충 돌아가는 것 같은데, 잘못한거 하나 걸리면 그야말로 아주 가혹한 대가를 치뤄야 된다. 미국 사람들이 다 착해서 신호등 잘 지키는 게 아니다. 미국에서 마음만 먹으면, 아니 원칙대로만 해도, 폭스바겐이라는 회사가 벌금과 소송으로 망할 판이다. 미국이 독일을 상대로 아주 좋은 카드를 한장 쥐게 되었다. 자연스레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는 뭔 카드를 갖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내 생각인데, 문제의 원흉을 파고들면 말단 펌웨어 개발자 하나가 나쁜짓을 했다 정도가 아닐 것 같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아니 얼마나 높은 레벨에서 이 치팅을 하기로 작당을 했을까? CEO는 몰랐다고 하는데, 최소한 이사회 레벨에서는 알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거기 기업문화가 한국과는 좀 다르겠지만, 겨우 개발자 몇몇에게 이런 짓을 할 권한을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뭐 그럴 리는 없겠지만, 이 짓을 하기로 한 사람들을 꼭 밝혀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 사람들 애매하게 감옥에 몇달 가둬놓는 게 아니라 이 책임을 제대로 물었으면 좋겠다. 그 사람들에게도 가족이 있겠지만, 재산의 마지막 한톨까지 다 빼앗아서 이 일로 직장을 잃을 사람들에게 위로금으로 줬으면 좋겠다. 벌은 사고 친 놈이 받아야지 지금까지 성실하게 폭스바겐에서 일했던 직원들이 무슨 죄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