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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현재를 살기

아이가 생긴 이후로는 독서조차 쉽지 않은데, 뭐 어찌 짬을 내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하나 읽었다. 10년 전 쯤에 대학 동아리 후배가 추천해준 책인데 이제야 봤네. 해변의 카프카.

신기한 일이다. 책장은 술술 넘어가는데, 난해하다. 자세히 이해하지 못하는데도 잘 읽히는게, 역시 하루키는 대단한 작가다. 그냥 대충만 이해했으므로, 자세한 해설이나 비평 같은건 할 주제가 못된다. 그냥,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과는 좀 거리가 있을, 내 감상만 짤막하게 언급할 수 있을 뿐이다.

두명의 주요 인물이 대조적인 삶을 살고 있다. 사에키의 삶은 과거에 머물러 있다. 현재는 그냥 의미없는 시간들의 합일 뿐이다. 나카타는 과거가 없다. 그냥 현재만 살아간다. 미래도 아닌 현재만 보고 산다. 인물들의 다른 특징도 대조적이다. 작가가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다기보다는 그냥 그리 될 수 밖에 없어 보인다.

그 수많은 다른 점 중에 나의 주의를 사로잡은 것은, 나카타가 사에키보다 훨씬 행복해 보인다는 사실이다. 지능도 떨어지고, 가진 것도 없고, 주변에 사람도 없는 나카타가 미인에다 가진 것도 많고 똑똑한 사에키보다 행복하다는 것이 자칫 모순처럼 보이기도 한다. 허나 이건 분명했다. 오히려 사에키는 불행해 보인다. 그 이유는 그녀가 과거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

내가 철학자는 아니지만, 행복은 현재에 있는 것 같다. 현재를 가까운 미래와 과거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본다면 더욱 그러하다. 먼 미래에 삶의 의미를 두고 있는 사람이 행복할 수는 있겠지만, 이것은 현재가 그 목표로 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현재와 그 미래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는 조금 다르다. 이것은 지나간 일일 뿐이다. 과거와 연결되어 있지 않은 현재는 존재할 수 없지만, 과거의 일에 머물러 있으면 절대 행복할 수 없는 것 같다.

지나간 일 또한 중요하다. 거기서 얻은 경험과 지혜는 인생의 소중한 자산이다. 따라서 과거의 일은 기억하되, 얽매여 있지는 않아야 한다. 내가 과거를 받아들이고 기억해야지 과거가 나를 사로잡고 있게 해서는 안된다.

내가 과거에 사로잡혀 있던 때가 생각이 나더라. 중요한 시기에 누가 나에게 나쁜 짓을 해서 내가 좆됐다. 난 잘못한 게 없는데, 내가 좆된게 너무 괴롭더라. 그래서 술도 많이 마시고 6개월을 폐인처럼 지냈다. 그 나이에 군대에 끌려갈 수는 없으니 뭐라도 해야했지. 인생을 다시 궤도 위에 올리려고 아둥바둥 하면서도 내가 이러고 있는게 너무 억울해서 가슴을 치고, 술도 먹고 뭐 그랬다.

아무리 억울해 해봐야 달라지는 건 없더라. 아니 달라질 수가 없지. 친구들이 아무리 측은하게 봐줘도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그들로부터 위안을 얻고 용기를 얻을 수는 있지만 좆된 현실을 받아들이는 건 내 몫이다. 그 상황에서 현실을 받아들인다는 건, 뭔가를 포기한다는 걸 의미한다. 한번도 내꺼라는 걸 의심하지 않았던 것들을 내려놓는게 쉽진 않았다. 그 밖에는 다른 길이 없었다. 참 이런 말이 있지. 포기하면 편하다고. 진짜 그렇더라. 진정으로 포기하면서 좀 편해졌다. 마음의 평화를 거기서 찾았다. 증오도 좀 사그라들고 말이지. 그래서 지금은 뭐 멀쩡하게 살고 있다. 내가 당한 일을 옆에서 봐주던 친구들도 다시 멀쩡하게 돌아온 나를 좋게 봐주고 말이지.

요약하자면, 과거에 매여 있는 건 이런거다. 지난 일에 아직도 가슴 치고 안타까워 하며 지금 할 일을 못하는거. 과거를 보낸 건, 지난 불행했던 일이 생각나도 지금 내 삶, 내가 할 일에 영향을 주지 않는 거다. 그 일을 뒤로 하고 앞으로 나아가는거다. 과거를 인정하고, 포용하고, 떠나 보내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 같다. 지금 내가 해야 할일에 집중하고, 한걸음씩 나아가는데서 행복을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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