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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불투명한 조직에서는 일을 하면 안된다

나름 내 소중한 경험이 녹아있기도 하고, 혼자만 알고 있기가 아까워서 여기 정리를 해봤다.

어느 미국 대기업 CEO가 어느MBA에서 강연을 했다. 주제는 ‘나는 이렇게 성공했다’. 요약하자면 대충 이런 내용이다.
“누구나 남이 싸놓은 똥을 치우는 일은 하기 싫어한다. 그러나 나는 똥을 열심히 잘 치워서 능력을 인정받았고 이 자리까지 왔다.”
친구와 이게 맞는 말인지에 대해서 좀 얘기를 나눠봤다. ‘맞는 말이긴 한데, 투명한 조직문화가 전제되어 있어야 한다’로 결론을 냈다.

일이 엉망이 되면, 그 책임을 맡은 사람은 본능적으로 문제를 감추려고 한다. 그리고 해결사를 부른다. 해결사에게도 현재 상황을 솔직하게 까놓는 경우는 드물다. 상황이 덜 심각한 것처럼 얘기를 하고 불러온다. 해결사는 문제의 심각성을 알아채지만, 그걸 외부에 알릴 기회가 주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결국 해결사는 똥을 치우지만, 프로젝트 외부에 있는 사람들은 똥이 있었는지도 모르거나, 살짝 지린 똥 정도로 안다. 일은 해결사가 하고, credit은 그 똥 싼놈이 받는다. 그리고 똥 싼놈은 다음번에도 일을 그런 식으로 벌인다.

이게 불투명한 조직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이게 쌓이고 쌓이면 어떻게 되느냐. 정치가 싹을 튼다. 잘못된 사람에게 책임과 권리가 맡겨지고, 잘못된 사람이 승진한다. 거기다 유능한 조직원을 잃게 된다. 이걸 막으려면 조직을 투명하게 만들도록 특별한 노력을 해야한다. 누가 뭘 했는지,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백일하에 드러나 있으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 이래서 일의 책임소재를 투명하게 하고자 노력을 들이는 기업들이 있다. 예를 들면 FaceBook인데, 예전에 내가 볼 때는 좀 과하다 싶을 정도였다.

누가 무슨 일을 하기로 했고, 실제로 했는지 추적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굳이 그런거 안해도 일이란 건 굴러가도록 되어 있어서 거기 투자를 안하는 회사도 많다. 아마 시간이 꽤 지나갔으니 지금은 다르겠지만, 내가 한국에서 일을 했던 조직도 꼭 그랬다. 그 부작용을 워낙 제대로 겪어서, 어제일처럼 생생하게 기억난다.

난 젊은 공학도 4명으로 된 팀에 합류했다. 그런데 한달이나 됐을까, 팀장이 나가버렸다. 그래서 다시 4명이 됐다. 어차피 1, 2년 동안 할 일은 정해져 있어서 그랬는지, 팀장 없이 가기로 했다. 높으신 분이 약간의 인사적 관리만 해주셨지 실제 일에 대한 관리는 전혀 없이 팀원들끼리 알아서 하게 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이상한 일이다. 꽤 많은 매출에 관여하는 팀인데, close management 없이 가기로 했다는게 말이다.

팀장은 없어도, 그 팀에 들어온지 가장 오래된 사람이 일을 좀 주도했다. 편의상 그 사람을 SM - Smart Mouth - 라고 하자. SM은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아마 인성만 조금 괜찮았어도 친구로 혹은 직장동료로 오래오래 함께 하고 싶었을게다.

우리팀은 잘 굴러갔다. 모두 열심히, 정말 많은 일을 했고, 꾸준히 높은 매출에 기여했다. 이 과정에서 SM이 가장 많은 credit을 받았다. 일단 능력이 있는 사람이고, 가장 많은 일을 했으며, 그것을 대외적으로도 잘 어필했다. 우리팀에 뭔가 credit을 돌려야 할 때 그 사람이 받는 것은 당연해 보였다. 그는 수백명 중에 가장 눈에 띄는 몇명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팀 전체가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나고, 새 제품을 개발하게 되면서 조금 상황이 달라졌다. 원래는 기존에 하던 일을 하면서 새 제품에 참여하라고 했는데, 본인이 새 제품에만 집중하겠다고 했다. 이제 그가 새로 하는 일은 온전히 close management의 대상이 되었고, 이미 해놓은 일은 다 내게로 왔다. 거기 문제만 없었다면 내가 자세히 들여다보는 일은 생기지 않았겠지.

진실의 시간이 왔다. 난 그가 해놓은 일이란 게 어떤건지 봤다. 그를 감독하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있을 수 없는 ‘대충대충’이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어떤 프로토콜에서 이상적으로 흘러가는 상황을 정의한 부분은 많이 쳐줘봐야 전체의 1/3이다. 나머지는 죄다 정상적으로 못굴러갈 때를 대비한거다. 실제 상황에서는 95% 이상 정상적으로 굴러가기 때문에 당장은 그것만 가지고도 운영이 가능하다. 언젠가는 문제가 생기겠지만 그건 나중 일인게지. 그래 그는 정상 부분만 해놓고, 대외적으로도, 높으신 분들께도, 심지어 인수인계를 받는 나에게도 모두 다 구현해서 남은 일이 없다고 천연덕스러운 거짓말을 한거였다. 일은 20%만 하고 점수는 full로 따니 어찌 좋지 아니한가.

난 비로소 이해했다. 어떻게 그가 그렇게 많은 일을 해냈는지. 그렇게 출중한 능력을 갖고 있는 그가 해놓은 일에서 왜 허구헌날 문제가 뻥뻥 터지는지. 윗분들 눈에는, 일은 그가 다 했고, 가끔 생기는 운영상의 작은 문제들만 갖고도 나머지 팀원들이 쩔쩔매는 것으로 보였겠지.

SM의 능력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 된 사람은 나 뿐만이 아니었다. 부서를 옮기고나서부터 나도 close management를 받게 되었다. 내 상사께서도 SM이 해놓은 일이 어떤 것인지, 내가 하는 뒷수습이란게 어느 정도의 일인지도 다 아시게 되었다. 그리고 그분 스스로도 SM의 윗사람이기도 했다. 정확히는 상사의 상사지만.

일이 여기까지만이었다면, 당장 필요한 것만 해놓고 나머지를 미뤄뒀다가 까먹었다고 봐 줄 여지가 있었다. 같이 일한 정이 있어서 그런지 나도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도저히 그렇게 봐줄 수 없는 일이 생겼다. 제품에 새 기능을 어떻게 넣을지 회의하는 자리였다. SM이 자기가 이미 다 해놓았으니 내가 할 일은 별로 없다고 높으신 분들 앞에서 자신 있게 말하더라. 우린 그런 줄 알고 기한을 짧게 잡았고, 회의는 끝이 났다.

난 불안한 마음으로 그가 해놓았다는 일을 살펴봤다. 설마가 사람 잡더라고. 이게 한번도 돌려본 게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을 때 난 SM의 오피스에 찾아가서 물었다.
“진짜 다 된거 맞아요?”
약간 망설이는듯 하다 그가 대답을 들려줬다.
“아주 자세히 테스트는 안해봤어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대로 돌아나왔다. 일부러 우리 둘만 있는 시간을 냈다. 내가 다 알아보고 온 줄도 짐작했을거다. 그런데도 이건 뭐… 본인의 거짓말을 스스로 믿는 수준이었다. 그에 대한 나의 평가는 ‘그래도 능력 있는 사람’에서 ‘같이 일을 해서는 안되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기한은 짧은데 처음부터 다 해야하니 얼마나 일이 많겠나. 동분서주하는 내가 상사께서도 의아스러웠나 보다. 하긴 나랑 일을 안해보신 것도 아니고, 그 간단하다는 일을 갖고 내가 이러고 있는게 이상했겠지. 나를 조용히 부르시더니 물어보셨다.
“SM이 해놓았다는 일 말인데, 그게 잘 안돼?”
내 대답은 간단할 수 밖에 없었다.
“하나도 해놓은게 없던데요.”
내 대답을 들은 상사께서는 말이 없으셨다. 아마 SM과 조금씩 일을 같이 하시게 되면서 짐작은 하셨던 것 같다.

다시 말하지만 SM은 능력 자체는 훌륭한 사람이다. 두뇌도 명석하고 지식도 많다. 체력과 끈기, 집중력 어디 하나 나무랄데 없다. 그러나 그가 잠시라도 빛나보인 까닭은, 그에 못지 않은, 혹은 더 뛰어난, 사람들이 그가 싼 똥을 묵묵히 치워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몰랐던 것 같다. 그게 어느 정도의 일인지 이해하려 하지도 않았으니 고마워하지도 않았다. 본인의 성취가 온전히 본인의 능력이라고 믿었다. 회사에 있던 몇몇 천재들과 본인이 동급이라고까지 믿는 듯 했다. 내가 보기에는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데 말이다.

일이 제법 투명하게 처리되는 조직으로 옮겨가자 생긴 일은, 뭐 상상되는 그대로다. 우수하다는 평판이 있으니 SM은 새 부서에서 즉시 2인자 대접을 받았다. 본인도 열심히 했고, 주위에서도 적극 맞춰줘서 뭘 좀 하기도 했다. 시간이 좀 지나자, 우리 모두, SM이 아니라, 진짜 능력 있는 사람을 알아보게 됐다. SM은 조바심이 나는지 무리수를 두고 말이야. 덤덤하게 써놓긴 했는데, 이 과정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첫단추가 잘못 끼워지면 다 그렇지.

참 길게 썼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불투명한 조직에서는 공과 과가 제대로 평가되지 않는다. 잘못된 사람이 승진을 하고 책임을 맡는다. 일이 아름답게 굴러갈 수가 없다. 끝내는 덜 정치적인 사람을 희생시켜 된 일을 포장하려고 할 것이다. 이것도 안되면 일 자체가 폭망하고, 한두명이 아니라 조직 전체가 희생된다.

일 대신 정치질로 먹고 살겠다는 사람이 아니면 저런 조직에서는 일해서는 안된다. 본인의 성과가 온전히 평가받지 못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보상을 얻을 수 없고, 기회를 얻기도 어렵다. 잘못된 사람이 조직에서 인정을 받으니까 엉뚱한 사람을 롤모델을 설정하는 실수를 저지르기 쉽다. 유능한 사람이 먼저 탈출하기 때문에 좋은 사수를 만나기도 어렵다.

그 조직을 떠난 후로 SM과 얘기를 나눠본 적은 없다. 그는 여전히 같은 회사에 다니고는 있다. 어떻게 지내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보통 이상으로는 하고 있을거다. 그 당시로만 봐도, 뭘 통째로 맡기기에는 부족하지만, 시키는대로 일하고 그거 검사 받는 식으로라면 탁월하게 할테니까. 시키는거 하고 검사 받기라… 어디서 많이 보던거 아닌가? 그가 정치적이라는 생각이 든 적이 많았는데, 단지 한국식 교육에 최적화된 전형적인 시험형 인재였을 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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