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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Being a 꿀먹은 벙어리 again

난 토종 한국인으로써 영어가 잘 될래야 될 수가 없다. 그래서 파티 같은데 가면 꿀먹은 벙어리가 따로 없었지. 그래도 지금은, 뭐 파티에서 쓰는 영어가 디게 고급일 필요도 없고 해서, 사람들 얘기하는데 끼어들기도 한다. 꿔다놓은 보릿자루 신세는 면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어제는 또 벙어리가 됐다. 벙어리가 된게 문제가 아닐 정도로 어제 일이 내 인생이 또 생길지 어떨지 모르겠다.

우리 첫째가 다니는 놀이방에서 어느 애기 엄마가 우리 애를 생일파티에 초대했다. 아내는 그 엄마와 아직 말도 몇번 해본 적이 없었다. 근데 우리 애를 좀 귀여워하긴 하더란다.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렇게 파티에 초대하는구나 싶었는데, 파티 장소가 Shedd Aquarium이다. 입장료만 $20인(일리노이주 밖에서 오면 $40) 시카고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소 중 하나 아닌가. 저기서 생일 파티를 하는데 도대체 뭘 기대해야 할지 감이 안왔다. 그래서 우린 $40짜리 장난감 하나 포장해서, 알려준 장소로 갔다.

입구부터 좀 헷갈리더라. 가보니 사람들이 보통 다니는 입구가 아니라 loading deck이었다. 그동네 주차장은 기본 $20부터 시작인데, 돈받는 사람도 없는 곳에 차를 대놓고 있어도 되는건지 두리번거리며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런 우리에게 어느 말쑥하게 빼입은 직원이 문을 열어줬다. 관광객들 드나드는 문이 아니었다.

그 사람의 안내를 받아 Finding Dory에서 본 듯한 직원들 공간을 지나 Beluga Whale 있는 곳으로 갔다. 곧 쇼가 시작될테니 근처 수족관 구경 좀 하고 있다가 오란다. 아니 생일 파티에 왔는데 쇼를 보여준다니. 우린 시키는대로 10분 뒤 정해진 장소로 돌아왔다. 오늘의 주인공인 그 꼬마와 엄마가 보였다. 아까 그 직원이 우리를 에스코트해서 맨 앞자리, 그러니까 예약석으로 안내하더라. 맨 앞자리에서 본 바다사자는 생각보다 컸다. 아이는 좋아하는 것 같으면서도 무서워하며 나와 아내에게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쇼가 끝나자 우리는 private room으로 안내되었다. 2살짜리 생일파티 치고는 너무 말도 안되게 고급이었다. 일단 방의 전망이 죽여주더라. 내가 생각하는 시카고에서 꼭 봐야할 뷰 두개가 있는데, 그 중 하나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음식도 좋았다. 애기 밥을 먹이고 있는데, 갑자기 동물들을 데리고 오더라. 도마뱀, 이구아나, 거북이를 데리고 와서 만져보게 해줬다. 우리애는 무섭다고 엄마 뒤에 숨어있기만 했는데, 나라도 좀 만져봤다.

그제서야 알게 된 사실은, 애기 아빠가 Shedd Aquarium 이사회 멤버셨다. 그런데 이사회에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것 아닌가. 시카고 최고의 M&A 변호사 중 한분이시란다. 초대받은 사람들도 같이 일하는 변호사 혹은 private equity 펌에서 일하는 사람. PE는 하는 일이 회사 사고 파는 일이니 일하다 알게된 분인 것 같았다. 이래서 대화에 끼지도 못했다. 사람이라도 많았다면 NBA 파이널이나 야구에 관심 있는 사람이 있을 법도 한데, 겨우 그 집 포함해서 다섯 가족 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외노자는 나 하나더라. 그래서 겨우 수족관 운영에 대한 이야기 좀 한 것 말고는 뭐… 호스트하고 몇마디 하지도 못했다. 다른 사람들하고도 육아에 대한 얘기 조금 했을 뿐이고… 솔직히 주눅들어 있었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내는 나보고 바보란다. 그런 사람들하고 네트워킹할 수 있는 멍석을 깔아줘도 벙어리처럼 있다 왔다고. 파티에 초대됐는데 망부석처럼 있다 오면 나는 다시 초대받지 못한다는 걸 안다. 바보짓 한거다. 뭐 그래도 이런적이 한두번도 아니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번엔 이런 주눅드는 상황에 있더라도 긴장 풀고 잘 어울려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해도, 그때라도 고쳐야 다음 소는 안잃어버릴 것 아닌가.

집에 돌아와서도 기죽을 일이 또 생겼다. 파티 끝나고 나눠준 구디백을 열어봤는데, 솔직히 거기 들어있던 장난감이 우리 선물보다 더 비싸보였다. 아무리 이동네 사람들이 저런걸 신경 안쓴대지만, 그래도 내가 기가 죽는 이걸 어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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