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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Yellowstone 가는 길에 들린 Rapid City에서

여차저차해서 Yellowstone으로 8일간 여행을 다녀오게 됐다. 한국사람은 나 하나고 나머지는 중국 방방곡곡에서 온 애들이니 흔치 않은 조합이긴 하지. 아직은 Yellowstone은 아니고 가는 길에 Rapid City라는 곳에 들러서 오늘이 이틀째다.

중국애들은 비자 받기가 힘들어서 꽤 부유층에 속하는 애들 아니면 미국에 공부하러 오기가 힘들다고 한다. 임금 수준도 낮으니 나처럼 일해서 모은 돈으로 오는 케이스는 없다. 그렇다보니 나랑 나이차이가 꽤 난다. 얘네들은 군대도 없으니까. 회사 다닐 때 저 나이 먹은 애들이 날 얼마나 어려워했던가를 생각해보면 사람은 역시 환경에 적응하기 마련인 것 같다. 그런 말도 있잖은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날 아무런 꺼리낌 없이 대하는 얘네들이 처음엔 좀 신기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볼 일이 아닌게 여기서 만난 한국 애들도 비슷하다. 다른 원인도 많겠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이란 어지간하면 환경에 맞게 행동하기 마련인 것이지.

뭐 어떻게 해서 가자는 말이 나왔고 차를 빌렸다. 25세 이상이 아니면 차를 잘 못빌리거나 비싸거나 한데 내가 있으면 아주 간단히 문제가 해결된다. 뭐 그런 이유로 여기 조인한 건 아니고 원래 친한 애들이다. 첫날은 죽어라 운전만 했다. 15시간 넘게 차를 타고 왔는데 드라이버가 세명인게 정말 다행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그렇게 심하게 차를 타고 다니진 않았다. Rapid City 근교를 돌아다니는 것이니까 좀 여유를 갖고 경치 좋으면 속도도 줄여가면서.. 첫날은 이동하는 기분이었다면 오늘이 정말 여행하는 기분이더라.

여행을 왜 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들은 사진으로 본 게 그대로 있는지 확인하러 다닌다. 남들에게 어디를 가봤다고 자랑할 거리를 만들기 위해 다니는 사람도 꽤 많다. 이런게 전형적인 한국식 관광인데 난 이건 좀 벗어났다. 여행을 가면, 가서 보는 것보다 가는 동안 여러가지 생각을 많이 하는게 좋다. 물론 Mt. Rushmore에 있는 미국대통령 흉상들, Badland에서 처음 보는 사막지형 모두 보기 좋았다. 하지만 끝도 없이 펼쳐진 평원을 보며, 오랜만에 올려다 본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보며 학과공부와 잡서치에 시달리던 때엔 못하던 많은 생각을 했다. 원래 한발짝 떨어져서 보면 못보던 것도 보이고 하는 것이니까.

이번엔 특히 뭐랄까. 겸허함 같은 것을 많이 느꼈다. 크기도 가늠되지 않는 평원, 그 위로 지는 해를 보면서 내 자신이 참 보잘것 없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은 다들 자기는 특별하다고 생각하고 산다. 물론 사람들은 다 특별하지만, 실제보다 훨씬 더 자기 자신이 특별하고 대단한 존재라고 착각하고 산다. 나도 그런 보통 사람들하고는 다르지 않아서 그런 착각에 빠져 산다. 반에서 일등 좀 하고 회사에서 일 잘한다고 에이스 대접 받을 때에는 참 유치하게도 "내 능력의 끝이 어디일까?"라는 생각도, 아주 잠시이긴 해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손발이 다 오그라든다. 나만 이런게 아니고 누구나 다 그런 생각 한번씩 하니까 이 사실 자체가 그리 쪽팔릴 일은 아니지만, 그전에 미국대륙을 달려봤더라면 그런 쪽팔리는 생각 좀 덜하고 살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거기에 따른 실수도 덜 했겠지.

그런데 지금은 나도 많이 성숙했고 이제 좀 안다. 내가 성취한 것이 내가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니고 내가 생각하지도 못하는 수많은 factor들이 관여하고 있었음을 말이다. 그리고 내가 실패한다고 해도 온전히 내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안다. 이건 진작 24살 이럴 때 알긴 했는데,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분명하게 알아가고 있다. 또 내가 보지 못했던 factor들도 하나하나 더 눈에 보이고. 그래서 이젠 성공을 하도 덜 우쭐해질 것이고, 실패한다고 해도 덜 좌절하겠지. 이런게 성숙해진다는 의미인 것 같다.

한가지 더 있다. 시카고를 벗어나고 위스콘신주에 들어서자 콘필드와 목장들이 번갈아 펼쳐졌다. 지겹게 이어지던 옥수수밭 또 옥수수밭. Wharton School의 MBA 교수가 쓴 "Beyond Beef"에서 비육우를 키우는 산업이 어떻게 자원을 소모하는지에 대해서 읽었던 게 자연스레 생각나더라. 비육우를 만들기 위해서 곡물을 먹이는데 주로 그게 옥수수였지. 직접 그 현장을 눈으로 보는 느낌이었다.

예전에 친한 친구 한명이랑 홋카이도의 아바시리라는 도시에 갔을 때가 생각났다. 나름대로 오호츠크해에서 뜨는 해를 보겠다고 한겨울에 찾아간 것이었는데, 일출만 보고는 도망치듯 돌아왔었다. 들고다니던 녹차에 얼음이 꼈을 정도니까 그럴만 했지. 그때 친구가 그랬다.

"고딩 때 '오호츠크해 기단의 성질은 한랭다습'이라고 들입다 외웠는데 직접 와보니 이건 뭐 한랭할 수 밖에 없구만."

그 말을 듣자 뭔지도 모르고 외웠던 그 단어들이 살아나 피부에 와닿았다. 멋진 풍경을 보면서 이 생각을 했다면 좀 이상하지만, 뭔가 전에 어렴풋이 개념으로만 알던 것이 좀 분명해진 느낌이었다. 역시 책으로 익혀지는 부분이 있고, 몸으로 떼우면서 얻어지는 게 또 있는 것이지.

물론 미국대륙의 광활한 평원, 티없이 맑은 밤하늘에서 쏟아지는 무수히 많은 별빛, 8년만에 본 북두칠성, Rushmore 국립공원, Badland 국립공원 모두 대단한 볼거리였다. 특히 Rushmore에서 본 미국 대통령들 얼굴은 사진에서 본 그대로 아직 붙어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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