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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학력 사칭 사기꾼에 대한 기억 하나

내가 그 사기꾼을 직접 아는 건 아니라서 많은 걸 알지는 못하는데, 제법 가까운 사람들이 이리 저리 엮였던 일이라, 돈도 좀 떼인 사람 있고 해서 가슴이 철렁했었다.

이 사건은 어느 종교 단체에서 생겼다. 공부를 못하던 어느 여자 고등학생이 뜬금 없이 서울대학교에 붙었다고 구라를 친 게 그 시작이다. 교회에 나가서 내가 어느 대학 무슨 과 다닌다 그러면 학생증 까면서 확인하지 않잖아. 그냥 그런가보다 하는거지. 그래서 이 여자는 종교 단체에 가서 구라를 쳤다. 그런데 인원 수가 많은 학과, 예를 들면 의예과 같은 데 붙었다고 하면, 한 두다리 건너서 쉽게 검증이 되잖아. 또 이왕 구라를 까는데 들어가기 어려운 과에 붙었다고 하는게 더 폼이 나니까 당시 정원이 스무명 정도 밖에 안 되고 커트라인이 최상위권인 과를 골랐다.

그러니까 걔가 실제로 서울대학교에 나가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 종교 단체 안에서, 그러니까 대학생회 같은 데서 그냥 서울대학교 학생 행세를 하고 대접 받고 뭐 그랬던 거지. 입학 구라는 이미 쳤고, 나중에 휴학 구라와 대학원 진학 구라까지 친다고 가정하면 제법 오랜 시간을 대접 받으면서 지낼 수 있는 거다. 물론 그 종교 단체 안에서만 말이다. 실제로 사람들은 그 기대에 걸맞는 시선으로 자기를 봐 주었고 나름 행복하게 지냈던 것 같다. 난생 처음으로 똑똑한 사람 대접을 받는게 여간 뿌듯하지 않았는지 아주 열심이었단다. 그 종교 단체 안에서 걔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인생이라는 게 계획대로만 어디 되던가. 가상의 서울대생 3년이 끝나갈 즈음 청천벽력이 들려왔다. 자기가 사칭했던 그 학과에 실제로 누군가 입학을 한 것이다. 시발 재수도 없지. 일단 평소에 설치고 다닌 이미지대로, 그 신입생을 찾아가서 격하게 축하를 해줬단다. 지금 생각해보면 암살 안 당한 게 다행이다. 이 바람에 예기치 않게 3년만에 조기졸업을 선택한다. 평소에 교회에서 살다시피 하던 애가 계절학기 같은 걸 듣는 것 같진 않았는데 어찌 학점을 채웠을까 의문이 들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의심한 사람도 있었다. 근데 워낙 천재 비슷한 포지셔닝을 해놔서 맨날 초과 학점 신청 해서 듣고 있었나보다 뭐 이래 넘어갔단다.

똑똑한 척 폼이란 폼은 다 잡았는데 조기졸업 씩이나 해서 그냥 논다고 할 수가 없잖아. 그래서 무슨 회사에 다닌다고 뻥을 쳐야할텐데 대학 문턱도 안 가본 애가 회사에 대해서 뭘 알야아 말이지. 그래서 멀쩡한 회사 다닌다고 구라는 못 까고, 교수의 추천으로 무슨 비밀스런 자금을 운용하는 비밀스런 조직에 다닌다고 둘러댄다. 참 이런 거짓말이 통했다는게 어휴… 그러다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너희 돈도 굴려주겠다면서 유사 수신행위, 즉 폰지 사기를 치게 된 거지. 꼴에 비서까지 고용했었다. 그러다가 3년이나 갔나 모르겠는데 뻔한 그 결말을 맞은 거지.

실제로 신문 사회면을 장식한 사건이다. 이런 일이야 지금도 가끔씩 신문에서 본다. 하지만 이게 특별한 이유는 내가 아는 사람들이 여기 저기서 등장을 하기 때문이다. 먼저 서울 XX고에서 전교 1등을 찍고 그 문제의 학과에 진학한 학생. 나와 많이 가까운 사람이다. 이 분과 범인의 친분은 당연히 없다. 그 망나니를 진짜 똑똑한 사람으로 착각한 어느 아주머니로 인해 내가 아는 어떤 이는 그 사람과 선을 볼 뻔 했다. 실제로 그 여자는 결혼을 했는데 상대는 학벌이든 뭐든 영 못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실체를 놓고 보면 어이 없는 일이지만 주변에서는 ‘저렇게 똑똑한 아이는 결혼도 파격적으로 하나보다.’ 뭐 이래 받아들였단다. 돈 떼인 사람 중에는 내가 아는 사람도 있다.

그 종교 단체에서 사기 사건이 여럿 있었다. 뭐 저런 식으로 누구 감방 간 적도 있고 그냥 사기인 게 분명한데 흐지부지 된 것도 있고. 그러고보니 사기꾼들이 저런 데를 애용하는 것 같다. 내가 아는 어느 사기꾼 집안도 교회에 열심히 다니니까. 차를 렉서스로 바꿀 돈은 있어도 빚 갚을 돈은 없다는 사기꾼. 교회에 훌륭한 사람도 많을텐데, 참… 종교 생활 열심이다라는 사실이 사람들의 판단력을 어처구니 없이 형편 없게 만든다. 종교 단체라는 데는 아무나 다 받아주다보니까 오히려 명문대에 다닌다거나 직업이 좋거나 돈이 많거나 이런 사람을 더 높게 쳐주고 대접을 잘 해주는 풍조가 있는 것 같다. 그게 사기꾼들에게 이용해먹기 좋은 환경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나저나 그 사기꾼은 지금 뭐 하고 사려나 모르겠네. 그 종교 단체에는 발을 못 붙이게 됐을테고. 출소일 기준으로 보면20대 중반 나이에 기술이 있을 리도 없고 있는 거라고는 고졸 학력과 전과 뿐인데 어디 식당 알바 말고 멀쩡한 일은 할 수 없었겠지. 남편도 제정신이 붙어 있으면 이혼을 했지 싶고. 지 인생이 우짜다 이래 됐나 원통하기도 할 거다. 그냥 잠시 허영심에 부모에게 서울대 가게 됐다고 구라 한 번 쳤을 뿐인데 말이야. 하루 이틀 지나서 사실은 그냥 붙은 대학이 없다고 이실직고 했으면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겠지. 부모가 그거 이해 못해주지도 않았을 거고 말이야. 근데 구라를 시작해보니 점점 일이 커져서 스스로 멈출 수가 없게 되었다 뭐 그래 생각하고 있었을 것 같다.

그래도 멈췄어야지. 그냥 종교 생활 하던 거 딱 멈추고 다시 공부를 해서 자기 수준에 맞는 학교라도 갔었어야지. 인간 관계가 뭐 다 그 종교하고 얽혀있다보니 그러면 아는 사람들하고 다 끊어지기 마련인데 그게 두려웠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본인이 구라를 시작하면서 같은 종교 단체 사람 외에는 다 끊었듯이 현실로 돌아오면서 그 사람들과는 끊어지는 것을 감수하고, 전문대라도 들어가서, 새로운 사람들과 다시 시작했어야지. 어차피 거짓 위에 올려진 게 뭐 오래 갈 수 있을 리도 없는데 말이야. 뭐 그렇게 개척할 수 있는 본인의 현실이야 지금까지 구라로 누린 것들에 비하면 비루하겠지만 강제 소환된 현실은 비루한 정도가 아니지 않은가.

이래서 내가 거짓말 비슷한 거 잘 하는 사람은 일단 멀리한다.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게 있긴 있는데, 대단히 진귀한 것이기 때문에 일상에서 마주치는 일은 거의 없다. 특히나 본인의 실체와 허영심의 간극을 메꾸기 위한 것이라면 더 볼 것도 없다. 그 차이를 향상심으로 연결해서 뭔가 생산적인 걸 만들어낼 생각을 해야지 거짓말로 떼운다면 어떤 인간인지 뻔한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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