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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대놓고 이민자를 소재로 한 픽사의 신작

픽사의 신작, Elemental이 동네 도서관에 있길래 아무 생각 없이 빌려와서 봤다. 아름다운 영화였다. 우리 둘째도 얌전히 앉아서 끝까지 봤다. 약간 내 이야기 같기도 하고. 아니 정말 내 이야기 같았다.

주인공과 주인공 가족을 보면 뭐랄까, Firetown을 보면 중국계 같아 보이기도 하고, 멕시코계 같이 보이기도 한다. 그냥 그들을 다 뭉떵거려서 표현한 것 같다. 뭐 나도 이민자로써 여기 자리 잡고 주류 사람들과 어째 섞여서 살아볼라고 아등바등 하다보니까 주인공 가족의 입장이 남 일 같지가 않았다. 아는 사람 생각도 나고 말이지. 영상도 아름답고 해서 난 재밌게 봤다.

헌데, 내가 잘 봤다는 게 이민자들하고 잘 지내야 된다는 영화의 메시지가 감동적이어서는 솔직히 아니다. 뭐 서로 다른 인종들끼리 반목하지 말고 사이 좋게 섞여 지내라 뭐 이게 머리로는 이미 다 아는 내용이잖아. 같이 섞여 있으면 좋을 새로운 이유를 보여준 건 아니다. 그냥 누구나 다 아는 걸 그냥 영화에서 대놓고 말하는 건데… 이 영화가 나 같은 이민자가 아닌 사람에게는 어떻게 보일지 잘 모르겠다.

예전에 주토피아라는 영화가 있었다. 평단의 평도 좋았고 흥행도 꽤 했다. 캐릭터도 귀엽고, DMV의 나무늘보라든가 하는 유머도 좋았다. 충분히 즐길만한 영화였는데, 난 조금 깨름칙하더라. 차별 하지 말라는 영화의 메시지가 너무나 교조적이었기 때문이다. 아예 대놓고 설교를 하더라니깐. 차별이 나쁘다는 걸 모르는 사람한테 이 메시지를 준다면 뭐 모르는 걸 깨우치게 될지도 모르지만, 솔직히 말해서 인종 차별 같은 걸 하면 안 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냐 이거야. 남들 다 아는 도덕 이야기를 저렇게 대놓고 장황하게 메시지라면서 던져주는 게 좀 뭐랄까 안타깝기도 하고, 저거를 만든 사람들은 얼마나 선민의식에 쩔어 있으면 저러나 싶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면 극찬을 쏟아붇는 평론가들에게도 비슷하네 느꼈다.

비슷한 이유로 저 영화의 메시지가 장점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단점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비록 주토피아처럼 대놓고 설교를 하진 않지만, 러닝 타임 내내 같은 소리를 반복하잖아. 다른 인종들끼리 배척하지 말고 잘 지내라고 말이야. 나 같은 이민자야 주인공에게 이입되어서 보느라, 따분한 메시지가 쏟아져도, 많은 재미를 느낄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그만한 재미가 없을 것 같다.

차라리 이민자 가족이 자리를 잡아가며 겪는 우여곡절에 집중을 하든가,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이민 1세대 아이들의 이야기를 풀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이민자라는 설정을 빼고 이야기를 하든지 아니면 생생한 이민자 이야기를 하는 게 더 나았을 것 같다. 그냥 서로 배척하던 우리가 힘을 합쳐서 뭘 했어요 이러는 거 식상하다. 그 메시지를 위해서 만들어진 이야기 같다. 영화의 줄거리는 메시지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 같은데, 그 메시지는 이민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보여지기 위한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있다. 이래서 영화가 좀 억지스러운 구석이 있다.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갈 때 유심히 봤는데, 한국계나 중국계 이름이 많이 보이더라. 이 영화만 그런 것인지 그냥 픽사에 그런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건지는 모르겠다. 예전에 알던 사람 하나도 헐리웃에서 꽤 잘 나가는 디자이너가 되었는데 그런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그러니까 자연스러운 이민자 이야기 영화가 나오기도 하는 것 같네. 작년에 봤던 ‘미나리’라는 영화는 진짜 한국계 이민자인 감독이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하던데 오히려 그 영화가 모든 게 자연스러워서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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