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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박경리의 토지를 다 읽었다

20권짜리 책을 다 읽었네. 평생 읽어본 소설 중에 제일 긴 게 삼국지인데, 그건 10권짜리였고, 이건 두 배나 길다. 몇 달 동안 내 출퇴근 시간을 책임져줘서 너무나 고맙다. 출퇴근 시간이 기다려질 정도였다. 그 외에도 병원에서 기다리는 시간 뭐 이런 의미 없이 보낼 시간을 채워줘서 정말 고맙다.

삼국지도 후반에 가면 주요 인물들이 죽으면서 힘이 확 빠지고 재미도 없어지는데, 토지는 끝까지 힘을 유지한다. 작가의 집중력과 끈기가 대단한 것 같다. 뭐 엄밀히 따지자면야 1부에 비하면 5부는 좀 늘어지는 느낌도 있고 재미도 덜하긴 하다. 그건 긴 시간을 다루는 소설에서는 어쩔 수가 없는 것이, 시작하면서 내가 감정이입을 했던 캐릭터들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새로운 인물들이 나오기는 하느데, 아무래도 애착이 덜 생기기 때문에 뭐 그리 되는 거다.

그냥 사람이 죽어서 그런 것 외에는, 아무래도 초반에는 진짜 뭘 해먹어야 살 수 있느냐 이런 절박한 고민을 등장 인물들이 했다면, 5부 쯤 되면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 다른 것들을 고민한다. 물론 모두 그들에게는 절박한 문제겠고, 그 중에는 나에게도 크게 와닿은 것들도 있지만, 아무래도 먹고 사는 문제만 못하지. 그리고 독립 운동 하던 사람들도 대충 다 감옥 가고, 또 죽고, 따라서 조직도 망가져서 되는 일도 없고 이러다보니까 뭐가 크게 되는 일도 없다.

그렇다고 이게 작품이 잘못 된 거냐 하면 그렇지도 않은 게, 그 시대가 정말 그랬기 때문이다. 정말 그 시대 안에서 다양한 인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충실하게 보여주는데 이 작품의 미덕이 있다. 아무래도 가난한 조선 말기 민중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일제시대 말기 기 죽이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보다는 내게 더 와닿는 면이 많았던 것이지.

그렇다. 다양한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들. 가난하지만 올곧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똑같이 가난했지만 악하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지체 높고 여유 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최고의 교육을 받았지만, 실상 본인은 별 능력도 없고 의욕도 없는 사람도 있다. 이냥 저냥 사는 사람들도 많고. 보통의 소설에서는 크게 조명될 일이 없는 사람들의 삶조차 가볍지 않게 다뤄진다.

근데, 워낙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다뤄지다보니 나한테는 그냥 좀 마음에 안 드는 등장 인물도 있다. 대표적으로 오가타. 그 시대에 한국과 일본 사이에 애매하게 낀 인물들이 많았겠지. 이렇게 애매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저렇게 낀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 중 하나를 보여주기 위해서 등장시킨 건 알겠고, 나름의 역할이 있는 것도 이해한다. 근데, 이 사람은 뭐 그냥 청승만 떨었지 딱히 제대로 하는 일도 없고 뭐 그래서 어휴 이 새끼만 나오면 그냥 답답하더라. 뭐 그런 사람도 있었겠지. 근데 뭐 이런 사람 이야기를 이리 자세히 써놨어 싶더라.

그럼 이 많은 사람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무엇일까? 뭐 주제 딱 하나만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우리 문화 대한 자긍심, 농민에 대한 찬양 등등 많은 게 있다. 근데 가장 두드러지는 건, 아마 작가의 의도는 아닐 것 같은데, “모진 놈 옆에 있으면 벼락 맞는다”가 아닐까 싶다.

아니 누가 잘 못 될 때를 보면 지가 뭘 잘 못해서 그래 되는 일은 드물고, 죄다 모진 새끼 옆에 있다가 유탄 맞아서 그리 되더라고. 그러고보니 우리 인생이라는 게 그런 것 같다. 행운이든, 불운이든 다 사람을 통해서 오니까. 남에게서 예기치 않은 행운을 얻는 일보다는 남이 똥을 튀기는 일이 더 흔하다. 나도 뭐… 내 인생이 존나 꼬였을 때를 생각해보면 씹새끼가 일부러 나한테 똥을 튀겼기 때문이었지. 하필 어머니께서 그 새끼하고 가깝게 지내는 바람에 그래 된 것인데… 토지에도 나오는 말이다. 사람의 진면목을 알아보는 것은 아주 어렵지만, 아주 중요하기도 하다. 그러니 사람을 조심하고 똥이다 싶으면 피해 다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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