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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Farewell Chicago

겨우 시카고 근교로 이사가는 주제에 오바를 떤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시카고의 이 콘도에서 짐을 싸 이사를 나가는 이 날이 내겐 너무나 감정적인 순간이었다. 눈물을 참느라 힘들었다. 부산, 서울, 분당... 그 어느 곳을 떠날 때도 이런 감정은 느껴보지 못했다.

먼저 시카고에 대해서
12년... 12년 동안 내 주소는 Chicago, IL로 끝났다. 이 도시에 오기 전에는 나를 생각해봤다. 난 몸도 마음도 지쳐 있었다. 지치기만 한 게 아니라 상처도 많이 입은 상태였던 것 같다. 제 정신이 아니었다. 쉼표 건 마침표 건 뭔가 하나는 찍어야 했다. 그리고 여기에 왔다. 모든 게 다 잘 될거라고 생각하며 오긴 했어도 지금의 나처럼 풀릴 수 있으리라고는 솔직히 믿지 않았다. 내 의지로 와서 기대 이상의 것들을 얻고 떠난다. 이 도시에게 정말 감사한다.

이사 전 날에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지난 이 12년이 너무나 벅차고 감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사하는 내내 비가 왔어도 짜증 하나 나지 않았다. 그저 나를 품어주고 성장시켜준 이 곳이 고맙고 떠나서 아쉽게만 느껴졌다. 아내는 dining chair에 스크래치가 났다고 짜증을 내지만, 나는 그것도 아무렇지 않았다. 이사하면서 뭐 하나 망가지는 게 없기란 어려운 일이기도 하고.

시카고 콘도
6년 전 이 콘도를 살 때 아내와 이런 대화를 했다. 이 집을 잘 산 것인지 아닌지는 지금은 알 수 없다. 나중에 이 집을 떠날 때 정말 좋은 일이 많았지 하며 미소지을 수 있으면 잘 산 집이 된다. 현명한 결정인지 아닌지는 우리가 이 집에서 어떻게 사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이다. 자 지금 the moment of the truth가 되었다. 이 콘도를 산 것은 정말 똑똑한 선택이었다. 일도 잘 풀렸고 수많은 추억이 생겼다. 특히 우리 이웃들에게도 감사한다. 떠나기 전에 와인을 한 병씩 선물했다. 그냥 고마워할 일이 많았기에 감사의 표현이었다. 선물 받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어딨겠냐만 모두들 다 좋아했고 앞 날의 행운을 빌어줬다.

애기들 데이케어
우리에겐 이 데이케어가 목숨을 살려준 것이나 다름 없다. 예정보다 일찍 첫째를 데이케어에 보내야만 했는데 이 어려운 애를 너무나 잘 돌봐줬다. 나중에 둘째도 보내게 되었으니 이 곳이 가장 어려운 시기의 우리 애들을 맡아준 것이다. 그냥 맡아만 준 것도 아니고 커리큘럼도 훌륭했고, 여러 이벤트도 많이 열어주고 말이지. 아이들이 이 곳에서 정말 잘 보호받고 행복해 했으며, 나는 이 곳이 없었다면 어떻게 살아남았을지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이 데이케어를 떠난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이 곳이 정말 특별한 곳이었다고 하던데 나도 그렇게 느낄 것 같다. 솔직히 다른 데 보낸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비슷하게 느낀다.

데이케어에서의 마지막 날에는 마침 할로윈 파티가 있었다. 나도 이사간 집에서 대충 정리를 하고 시카고, 이 데이케어로 돌아왔다. 이 파티 덕분에 여러 아이들의 부모들과 작별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우리가 이사가는 것도 많이들 알고 있었고 어디로 가는 지도 알더라. 전에 우리를 생일파티에 초대해줬던 아빠가 이랬다.
"It's sad to see you go but it sounds like a good move."
아무렴. 망해서 이사 나가는 게 아닌 것은 확실하지. 이 사람들과 앞으로도 연락을 계속 하고 지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쉽진 않겠지. 바로 옆 동네에 자기 부모님이 산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이라도 가끔 볼 수 있으면 우리 아이가 참 좋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작별인사를 하고 아이들을 충분히 놀린 다음에 차에 태웠다.

돌아오는 길은 저녁 시간 답게 오지게 막혔다. 단골집에서 조각 피자를 사 나왔다. 주인 아저씨에게도 작별인사를 했다. 한 달에 한 번은 꼭 와야 된다고 농담을 던지는데, 나도 그럴 수만 있으면 좋겠다. 안녕 시카고. 다시 한번 내 의지로 새로운 챕터를 열었다. 새로 이사한 이 집을 언제 떠날 지는 짐작을 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 때에도 지금처럼 행복한 기억을 안고 떠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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