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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MBTI

심리학으로 석사까지 하고 정신과에서 일하던 친구가 있었다. 얘가 갑자기 나에게 엉뚱한 제안을 하나 했다. 전문적인 테스트를 해줄테니 자기한테 받으라는 거다. 그 테스트 중에 하나가 MBTI인데, 당연하겠지만 십수년 전의 난 이게 뭔지 전혀 몰랐다. 이것 말고도 서너개 더 했다. 원래는 IQ 테스트까지 포함시키려 했으나 완강히 거부했다. 고등학교에서 받는 검사 따위가 아니라 더 정확한 거라는데, 아이고 내가 토플점수를 알려줬음 알려줬지 IQ를 친구한테 까발려지고 싶진 않았다. 검사 하나 하나가 다 꽤 비싼데 그걸 공짜로 해줬으니 아주 고맙게는 생각했다.

MBTI의 결과는 ISTP로 나왔다. 대충 여기에 대해서 알아보니 나하고 비슷한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이게 내 성격을 알려주는 건 절대 아니란다. 내가 대충 ISTP에 해당되는 것들을 내가 좋게 보고 있다는 뜻일 뿐이지 실제로 내가 그런 선택을 하고 행동하느냐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라는 거지. 결국 그 사람에 대해서 파악할 수 있는 단서는 되지만 여기에 의존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 말을 듣고보니 100% 맞는 말이더라. 난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을 때가 많으니까.

아무래도 친구니까 당돌한 질문을 하나 했다. 단순히 질문에 답을 하면 결과가 나오는 게 MBTI라는 검사인데, 너처럼 전문가에게 가서 검사를 받을 이유가 있느냐? 그냥 플레시 게임처럼 만들어서 돌리면 싸게 결과를 뽑아낼 수 있지 않느냐? 뭐 이런 내용이었다. 같은 ISTP라고 해도 사람들의 답이 전부 동일하진 않다. 같은 ISTP들을 모아놔도 다들 다른 사람들 아닌가. 게다가 내가 봐도 당시의 기분에 좌우될만한 문항도 상당히 많았다. 따라서 문항과 답, 그리고 그 사람 자체를 보면서 해석을 할 여지가 있는데 플레시 게임으로 그게 될 수가 없다는 거지. 나 같은 무식한 놈이 간과하는 게, MBTI 검사 자체가 목표가 아니다. 이건 다른 일을 하기 위한 단서를 제공할 뿐이기 때문에 그 해석이라는 것이 실무 차원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는 식으로 설명을 하더라.

사실 그 때는 내가 저 대답을 다 이해하진 못했다. 점점 더 나이가 들고 이런 저런 경험을 하다보니 그 친구의 대답이 더 와닿는다. 단순한 지표로 뭔가를 규정하려는 게 얼마나 무모한 시도인지 말이다. 학창시절 학교에 보고해야 했던 것들이 있지. 부모님 학력, 내 학업 성적, 집 평수 등등... 모두 나를 이해하는 단서가 될 뿐이지 나를 정의하지는 못하는 했다. 재무제표 분석도 마찬가지이고.

그건 그렇고 그 때 내 검사 해준 친구는 지금 뭐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당시에는 왠 뚱딴지 같은 검사를 받으라 하나.. 이게 한 두개도 아니고.. 이렇게 생각했었는데, 진지하게 나를 정말 생각해줘서 그리한 게 아닌가 싶다. 아무리 좋게 생각할래도 당시 내가 분명히 제 정신으로 살고 있진 않았으니까. 도움이 되었는지 아닌지는 차지하고 고맙다. 사실 그리 자주 보던 친구는 아닌데 1년에 한두번이나 봤나 몰라. 그래도 참 열심히 살고 착한 친구였는데 좀 더 친하게 지내지 못했던 게 좀 아쉽기도 하다. 미국 오기 전에 회사 다니면서 유학 준비하다가 연락이 끊어진 것 같네. 그런 사람이 한 둘이 아니지만. 분명히 잘 하고 있을 것 같아서 궁금해 해도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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