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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다시 한번 유럽

내가 학교에서 struggle하고 있을 때였다. 유럽배낭여행 같이 갈 사람을 찾던 죽마고우란 놈이 그랬지. “야 학교 때려치우고 내하고 유럽이나 가자.” 그녀석 말 때문에 그런건 아니지만 난 정말 학교를 그만뒀고, 이왕 백수 된 김에 같이 유럽여행을 갔다.

워낙 돈도 없었기 때문에 진짜 거지처럼 다녔다. 노숙도 하고, 어지간한 거리는 다 걷고, 식사는 거의 빵 사서 잘라먹는거 아니면 맥도널드. 입고 간 옷은 애초에 가서 버릴 생각하고 온 것이었다. 진짜 무슨 배짱으로 유럽에 갔을까 싶다. 뭐 내 상황이 워낙 암울했으니 뭔가 리프래쉬가 필요하긴 했지만.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그 친구가 해준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이제 돌아가서 말린 인생 펴야지.”

그러고 15년이 흘렀다. 3년 안에 반드시 돌아오리라고 다짐했었는데. 말린 인생 폈는지 어쨌는지 그동안 참 많이 변했다. 나는 미국에 정착했고 날 꼬셨던 친구는 벌써 두 아이의 아빠가 됐다. 웬만큼 여유도 생겼다.

육체노동스럽게 도시를 옮겨다니던 때와 달리, 이번엔 두 군데만 갔다. 런던과 파리. 지난번에 아쉽게 갈 수 없었던 곳과, 좀 더 머무르고 싶었던 도시다. 런던 히드로 공항에 내리는 순간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여기 일찍 왔어야 했는데. 자연스레 그 시절 일들이 생각났다. 아마 인생의 가장 큰 변곡점이었으리라. 처음으로 내가 누구인지, 내가 인생을 어떻게 살고 싶은지 진지하게 답을 찾았던 때이지 싶다.

파리에 갔을 때도 감회가 새로웠다. 그 시절 그 모습이 남아있더군. 길을 걷다 내키는대로 아무 레스토랑에 들어가 식사를 하는게 즐거웠다. 식도락의 도시 답게 그렇게 해도 다 만족스럽더라고. 예전엔 이런건 꿈도 안꿨는데, 이러고 있는 내가 참 신기했다. 땡거지 시절 돈 들까봐 못해본거 대충 다 해본 것 같다. 샹젤리제 거리의 루이비통도 내가 기억하는 그 자리에 있더라. 예전에, 무슨 난민스런 옷차림으로, 들어가 구경했었는데 직원들이 정말 무례했었지. 마음은 그 때 그대로인데 참 많은 시간이 흘렀음을 느꼈다.

여행하는 동안 벨기에에서 테러가 났다. 그 때문인지 생각보다 관광지에 사람이 별로 없었다. 라이플을 든 군인들이 쫙 깔려 있는게 이채롭더라. 에펠탑 구경을 갔을 때도 군인들이 많이 보였다. 그런데 일부는 에펠탑을 배경으로 기념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더만. 어이가 없어서 그 장면을 사진으로 찍을까 했는데, 총 든 사람하고 어째 엮이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지.

거렁뱅이 시절 했던 여행도 좋았고, 충분히 여유를 누린 이번 여행도 좋았다. 그때는 그 시절에만 할 수 있는 많은 것을 느끼고 경험했다. 아마 그게 젊음의 특권이지 싶다. 이번에는 또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건 아마도 예산이 넉넉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레 할 수 있는 것도 느낄 수 있는 것도 달라진 탓이리라. 다음에는 스위스에 가보고 싶다. 지난번에 갔을 때에는 그게 그렇게 환상적이었는데 나이 먹은 나는 또 어떻게 느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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