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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할머니의 부고

그냥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부고를 듣는 순간 머리가 멈춰버렸다. 아니 온 세상이 다 멈춘 것 같았다. 뭐라고 전화기에다 대답을 해야하는데 할 수 없었다. 이게 현실인지 아닌지, 지금 뭘 하고 무슨 말을 해야할지 아무리 애를 써도 머리가 돌아가지를 않았다. 그래, 충격을 받았다는 표현이 정확하겠다.

같이 식사를 하던 사람들이 왜 그렇게 절망적인 표정을 하고 있냐고 물어봤다. 정확하게 봤다. 일찍 좀 집에 가봐야겠다고 말하고는 자전거에 올랐다. 찬바람을 쐬면서 조금씩 정신이 돌아왔다. 그래 이건 현실이다. 그리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이제는 다시 할머니를 볼 수도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다. 이게 지금 일어난 일이다.

그제서야 무언가 내가 겪어본 적이 없는 감정이 밀려왔다. 큰 슬픔과 충격이 온 몸을 압도하는 듯 했다.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고, 눈 앞도 잘 보이지 않았다. 시간의 흐름도 느껴지지 않았다. 슬펐다. 너무나 슬펐다. 안개가 짙게 낀 도로 위를, 울면서 달렸다.

집에 와서 할머니와 찍은 사진을 봤다. 한참을 울고나니 그래도 할머니가 좋은 삶을 살다 가셔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수를 누리셨다. 정말 존경스러운 할아버지를 만나셨다. 할아버지만큼이나 훌륭한 아들과 며느리가 잘 보살펴드렸다. 손주들도 공부 잘해서 대한민국에서 좋다는 대학 대충 다 가보셨다. 증손까지도 보셨다. 많은 사람들에게서 존경을 받았다. 이정도면 정말 정말 훌륭한 삶이었노라고 본인도 느끼실거라고 생각하니 조금 위안이 되었다.

그런데 나는 어찌해야 하나. 아무리 좋은 생각을 하려 해도, 가슴에 큰 구멍이 생긴 것 같다. 할머니는 나를 그저 위해주고 감싸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나는 할머니에게 사랑하는 손자 아닌 그 무엇도 아니었다. 부모님조차도 나를 이용할 수 있는 도구로 보기도 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한결 같았다. 이기심이나 욕심이 아닌 그저 사랑하는 마음으로만 날 대해주셨다. 나도 그걸 잘 알았다. 그런 할머니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했다. 이제 더이상 그런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너무나 견디기 어렵다.

그래 생각해보니 나도 할머니께 조금은 특별한 손자였다. 제일 뭘 잘 한 게 있지도 않은데 말이다.

할아버지의 기일과 비슷한 날 돌아가신 걸 보니, 할아버지가 무척이나 그리우셨나보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두분이신 할아버지와 할머니. 내가 그런 훌륭하신 분들의 손자라는 게 자랑스럽다. 그 두분이 모두 안계신 세상이 낯설다. 언젠가 내가 하늘나라로 갔을 때 평소처럼 반갑게 맞아주시는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 꿈에라도 다시 할머니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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