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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내 오래된 랩탑을 보낼 때가 되었다.

7년전 미국에 오면서 랩탑을 하나 샀다. 이게 자그마치 지금까지 버텨줬네. 그 오랜 시간동안 내 책상 한켠을 당연한 듯이 차지하고 있던 녀석. 아직도 엊그제 일처럼 생각난다. 친구고 뭐고 없던 시절, 미드 Lost DVD를 빌려다 자막 깔아놓고 흉내내며 영어공부하던 시절이. 내가 미국 와서 정착하기까지… 그 시간 동안 겪어온 일들이 보통이 아니었으니 함께해준 랩탑에도 특별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동안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 2GB 램과 32bit OS로는 이제 웹서핑도 버겁다. 5년 전엔 여기서 Matlab도 돌리고 다 했는데 말이야. 유튜브 동영상도 전체 화면으로 띄우면 버벅댄다. 게다가 HDD에 bad sector가 생겼다고 자꾸 에러메시지가 뜬다. 이 문제 정도야 HDD만 갈아끼우면 해결되겠지만, 32bit 프로세서의 한계가 너무 컸다. 그래 이제 보내줄 때가 된 것 같다.

같은 회사 비슷한 제품으로 주문했다. 정말 7년이란 시간이 길긴 긴가보다. 이 오래된 랩탑도 샀을 땐 가볍다고 좋아했었다. 그런데 새 것과 나란히 놓여 있으면 트럭처럼 보인다. 단순히 무게와 디자인 만이 아니다. SSD의 위력인지 부팅도 순식간에 된다. 아마 HDD가 SSD로 바뀌면서 무게와 발열이 다 줄어든 것 같다. 전력도 덜 쓰겠지. 어플리케이션 몇개 설치해서 돌려보니 아주 쾌적하게 돌아간다. 마음에 든다.

내 오래된 랩탑은 HDD만 고쳐서 팔 생각이다. 100불 정도에 거래되는 것 같던데. 누군가 잘 써줄 수 있다면 그냥 버리는 것보다는 낫겠지.

한국에서 미국으로 올 때 아주 많은 것을 버리고 왔다. 달랑 가방 두개 들고 미국 왔으니까. 여기서 꼭 자리를 잡겠다고 다짐은 했는데, 앞일이 어찌될지 모르니 최대한 돈을 아껴야 했다. 중고와 싸구려 물건들만 사모아서 생활을 했다. 그 와중에 랩탑은 제대로 된 걸 샀는데, 이건 뭔 일이 생겨도 들고갈 수 있으니까. 그렇게 힘들었던 유학 생활을 함께 한 물건들을 떠나 보낼 때마다 내 인생의 한 장이 저무는 듯 한 느낌을 받았다. 버벅거리는 랩탑을 볼 때도 내 몸이 늙어서 고장나는 듯 했기에 조금은 슬펐다. 새 주인이 고작 100불짜리 랩탑을 얼마나 소중히 다뤄줄지는 모르겠으나, 정말 좋은 주인을 만났으면 좋겠다.

아내도 새 랩탑을 하나 사달라고 한다. 아내 것도 오래됐지. OS가 64bit인데다 램도 4GB라 지금까지 버티긴 했는데, 여기저기 부서진 곳이 많아서 언제 망가져도 이상하지 않다. 내것도 좋긴 한데 이번에는 Apple Macbook을 써보고 싶다고 조른다. 그런데 지금 나와 있는 Macbook은 크기가 작아서 불편해보이니, 앞으로 나올지 모르는 조금 큰 Macbook을 사달라는데 뭐… 애플이 화면 키운 Macbook을 만들지 않기를 기도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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