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imple Life

나이가 들면 왜 열정을 잃나

한국에 있을 때는 직장에서 정말 많은 일을 했다. 힘과 열정이 끓어 넘쳤다. 모든게 빠르게 변했고 잘 굴러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 중에 가장 신기한 것은 내 자신이 변하는 것이었다.

극장판 아키라를 보면 자신의 능력을 점점 알아가는 데츠오가 이런 말을 한다. "Can I do this too?" (난 영어판으로 봤다) 좀 과장이긴 해도 나 역시 내가 발전해가는 것을 느꼈다. 내가 과거에 9 밖에 못했어도 열심히 10을 도전해보면 그게 되더라.

이런 경험이 하나둘씩 쌓이니 점점 적극적이고 열성적이 되었다. 무리인 듯 해도, 열심히 하면 자꾸 되니까.

모든 일을 혼자서 할 수는 없다. 같이 일을 하는 사람들이 중요하다. 내가 보기엔 조금 더 열심히 하면 될 일인데, 옆에서 자꾸 김 빠지는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으면 짜증이 났다. 나는 분명히 되는 일이라 생각했다. 뻔한 일을 두고 소극적으로 나오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특히나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자주 그러는 것을 보았다. 내가 그정도 나이가 되면 능력이 훨씬 대단할 거라 생각했고, 그 때문에 더 이해를 못했다.

그런데 이젠 이해를 한다. 안타깝게도 말이다.

나이가 서른이 되면서 머리 돌아가는 것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알았다. 전에는 분명히 1시간만에 하던 것인데, 나도 1시간이면 될 줄 알았는데, 이젠 2시간이 걸렸다. 예전엔 전에 2시간 걸리던 것을 더 집중해서 열심히 하니 1시간만에 되던데 말이다. 처음엔 컨디션이 좀 안좋았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자꾸 이런 일이 쌓였다. 이젠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새로운 일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게 되더라.


전에 예전에 무리였던 일이라도 '한번 해볼까?'하고 덤볐고, 최선을 다해 해냈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에 곧잘 하던 일도 잘 못한다. 예전보다 보수적으로 접근해도 될지 확실치 않다. 나보다 나이 많던 사람들이 덜 적극적인 것을 보며 열정이 식은 사람들이라고 판단했다. 이유도 잘 모르면서 나는 나이 들어도 열정을 잃지 않을거라 다짐했다.

서른을 훌쩍 넘긴 지금, 한국에서 일하던 나와는 참으로 많이 달라졌다. 체력이 예전같지 않아 이제 밤도 못샌다. 집중력을 오래 유지하는 것도 안된다. 머리가 돌아가는 속도도 확실히 늦어졌다. 내가 생각해도 난 이전보다 일을 잘 못한다.

하지만 잃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쩔 수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예전보다 신중해졌다. 잘 모르는 것 중에 덤벼서 되는 일이 드물어졌으니까. 그리고 사람들을 좀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우선 열정을 잃은 듯해 보였던 나이 든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큰 그림을 보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캐파가 줄어들었으니 그것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만 하니까 큰 그림을 보고 뭐가 중요한지 보려는 노력을 하게 되더라.

어쩔 수 없이 나도 소극적인 나이 든 사람이 되었다. 가끔 그때 그 일하던 시절이 그립다. 비극으로 끝나긴 했지만, 내 자신이 커지는 느낌, 아마 다시는 가져볼 수 없겠지.

반응형

'Simple 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회자정리(會者定離)  (0) 2013.02.26
기억에 남는 하객  (0) 2013.02.18
외국에서 한국 사람 만나면 조심하라는데 사실일까?  (0) 2013.01.23
가해자와 피해자  (0) 2013.01.16
50대를 위한 변명  (0) 2012.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