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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외국에서 한국 사람 만나면 조심하라는데 사실일까?

외국 나가서 한국 사람 조심하라는 말 다들 들어봤을거다. 외국 나가자마자 한국사람에게 사기부터 당하고 시작한다는 얘기. 나도 한국에 있을 땐, 과연 이걸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몰랐다. 재수 없는 몇몇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니까.

그런데 이게 불행히도 사실이다.

나도 미국에 오자마자 한국사람에게 사기를 당했다. 멋도 모르고 비싼 리무진 서비스를 이용한 건, 속은 쓰리지만, 사기가 아니라고 치자. 어쨋든 처음 만난 한국 사람에게 사기를 당하고야 말았다.

금액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내 빠듯한 예산에는 너무나 아쉬운 돈이었다. 미국에 사는 친구들에게 이런 일을 털어놓으니 다들 이런 경험이 있거나, 가까운 사람이 당하는 걸 봤단다.

그래서 내가 유학을 가더라도 친구들이 있는 도시에 가고 싶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오게 된 곳이 시카고. 맨땅에 헤딩하니 이런 일도 다 당하고...

그러고나니 한국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게 내키지 않았다. 그 후에는 순수한 선의로 접근해온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위축될대로 된 내가 마음을 열지 못했고 아쉽게도 별로 가까워지지 못했다.

이제 막 시작하는 유학생에게는 이런 일이 생기기가 아주 쉽다. 이런 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영어다. 막 유학 나온 사람 중에 영어가 더 편한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한국 사이트를 찾게 되고, 누가 한국말로 뭘 설명해주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특히나 나처럼 토플 리스닝만 하던 귀를 갖고 있으면 미국인이 근처만 와도 덜컥 겁이 난다.


그 다음이 정보다. 아무리 인터넷이 있더라도 그 바닥에 굴러야만 알 수 있는 정보들이 있다. 시카고에 막 도착한 사람이 CVS와 Walgreen, Dominick's, Jewel Osco 중 어느 곳이 일회용 숟가락을 싸게 파는지 알 수는 없다. 사실 지금도 모르지만 누가 아는 척하고 알려주면 아주 고마워했을 것 같다. 이미 이곳에 1~2년이라도 먼저 온 사람들 눈엔 그런 사람이 어떻게 보일까? 저들이 모르는 걸 안다는 우월감과 동시에 사기쳐먹기 딱 좋은 먹잇감이다.

그 다음 이유로는 너무나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한국에서 유학을 나온다는 점이다. 한국은 나라도 좁고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일 수 밖에 없는 환경이라 한다리 건너면 대충 다 아는 사이다. 진짜 한국에서 회사 다닐 땐 그랬다. 팀메이트가 다 한두다리로 연결됐다. 그런데 미국 와서 보니 유학을 참 다양한 사람들이 나오더라. 진짜 내가 한국에선 도저히 만들 수도 없었던 사람들도 있다. 어차피 모르는 사람이니, 앞으로 만날 일도 없고, 안심하고 사기를 칠 수 있다.

타지에서의 인간관계가 가볍디 가벼운 것도 하나의 이유인 것 같다. 유학생들은 다들 제 앞가림하기 바쁜 사람들이다. 여기서 열심히 해서 학위를 따고 직장을 잡는게 목적이든, 최대한 안락하게 지내다가 돌아가는게 목적이든, 그냥 제 앞가림 하기 바쁘다. 남의 일을 잘 봐주기가 쉽지 않다. 잘 봐줘야 할 이유도 별로 없다. 그렇다보니 옆에서 누가 사기 치는걸 보더라도 그냥 넘긴다. 괜히 끼어들어서 사기를 쳐볼까 하는 놈과 껄끄러워지는 것보단 그냥 잠시 모른 채 하는게 편할 수 있으니까. 사실 내가 사기를 당하던 상황도 비슷했다. 사람이 그러면 안되지만 이해는 간다. 내가 그 사람에게 앞으로 크게 도움이 된다는 보장도 없긴 하지. 원래 사람은 positive한 incentive보다 negative한 incentive에 더 크게 반응한다.

내 친구가 스페인 갔을 때 어떤 사람이 같이 앉아있던 사람 물건을 훔치는걸 봤단다. 웃긴건 주변에 같이 맞장구치며 떠들던 사람들이 분명히 그걸 봤는데도 그냥 보고만 있더란다. 뭐 여행중 우연히 만난 사이니 그냥 그러려니 했다는데. 약간 이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한국사람들끼리도 인간관계가 참 superficial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게다가 설마 한국사람끼리, 같은 유학생 처지에 그럴까 하는 생각도 사기에 당하기 쉽게 만든다.

이런 복합적인 이유 때문에 유학생활 초기에 사기를 당하기가 너무나 쉽다. 의지할 사람도 없는 곳에서 이런 일을 당하고나니 정말 억장이 무너졌다. 너무 슬퍼서 여기저기 전화를 해대던 기억이 어제 일처럼 생각난다.

어찌보면 그것은 미국에서의 내 위치를 잔인하리만큼 정확히 확인시켜준 사건이다. 의지할 곳도 없다. 억울한 일 당해도 하소연할 곳도 없다. 한국에서 내가 뭐였든, 여기선 아무 상관도 없다. 한국에선 상대할 일도 없었을 수준의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에게 난 딱 좋은 먹잇감이었을 뿐이라는 게 내 현실이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누군가 내게 "이제 막 유학생활 시작하는데 한국 사람들을 좀 알게 되었어요."라고 한다면, 그 사람들 그닥 믿지 않는게 좋다고 말해주겠다. 앞서 말한대로, positive한 incentive보다는 negative한 incentive가 당하면 더 뼈아프니까.


너무 나와 내 주변 사람 경험에 치우쳐서 부정적인 얘기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가끔 처음 보는 한국사람이 접근해왔는데 너무나 잘해줘서 큰 도움이 되었다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운이 좋은 것이 감사하고 그 인간관계를 소중히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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