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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어릴 때 다닌 서예원

어린 시절에 배운 것들 중에 서예가 제일 좋았다. 나도 참 많은 학원을 다녔다. 속셈, 미술, 피아노, 태권도. 그 중에 서예가 제일 재밌었다. 솔직히 부모님이 왜 그걸 배우게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학교 성적하고 그다지 상관이 없는데다, 애들이 다 다니는 보습학원도 아니었으니.

보습학원이 아니면 뭐 어떠랴. 난 그곳에 가는게 좋았다. 거기서 친구들과 장기를 두며 노는 것도 좋았고 서예를 하는 것도 좋았다. 내가 특별히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게 좋았다. 거기 선생님들은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였는데, 애들에게 편안하게 대해주셨다. 게다가 그 서예원에는 나중에 동네의 수재가 된 애들이 다 모여있기도 했고. 그저 좋기만 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나도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그런 취미생활은 다 내려놓아야만 했다. 그래도 매일 서예원 앞으로 학교를 다녔고, 거기서 만난 친구들과는 여전히 친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문득 서예원 간판 위로 담쟁이가 너무 자랐다는 생각이 들더니 며칠 후 부고를 알리는 등이 밖으로 걸려 있었다.

어느 분이 돌아가신 것일까. 할머니일까 아니면 할아버지일까. 순간 가슴이 덜컹했다. 용기가 없어서 안으로 들어가보지는 못했지만 진심으로 슬펐다.

그렇게 행복했던 내 어린 시절 기억 하나가 과거로 사라졌다. 그 즈음 해서, 뭔가 사라진다는 것에 대해서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불과 1, 2년 전에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이번엔 서예 선생님도 돌아가셨다. 이제 그분들을 다시 볼 수 없고, 나도 언젠가 잊혀질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서예원을 같이 다닌 친구 중 하나와는 아직도 친하다. 가끔 그곳 이야기를 한다. 인재의 산실이었던 우리 서예원. 우리 모두 그 곳에서 좋은 시간을 보냈고 그곳을 자랑스러워 한다. 한국에 가게 되면 꼭 한번 그 앞을 들러보고 싶다. 허름한 주택가에 자리한 그곳이 변하지 않고 남아있어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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