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인생 살면서 손발 오그라드는 짓을 한게 한두번이 아닌데 가끔 잘 한 짓도 있다. 오늘은 옛날에 잘한 일이 하나 떠올라서 끄적여본다.
아마도 대학교 1학년 때 일인 것 같다. 과외를 하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왠 남루한 아저씨 하나가 상가 옆에 서 있다가 나를 불러 세웠다. 집이 의정부인데 차비가 없으니5000원만 달라고 했다.
그 때는 내 주식이나 다름 없던 학관 밥값이 1200원 하던 시절이었다. 과외로 생활비 벌어쓰던 대학생에게는 5000원은 그냥 남 주기에는 너무 큰 돈이었다. 차비 없으니 돈 달라는 거지를 한두번 만나본 것도 아니고 해서 그냥 지나칠까 했는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2000원 정도를 드렸던 것 같다. 사실 돈이 그것 밖에 없었다. 그거라도 의정부까지 가는 국철은 충분히 탈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아저씨는 아주 고마워하며 꼭 사례 하겠으니 내 호출기 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난 참 숫기 없는 학생이라 모르는 사람한테 그런거 안알려주는데, 또 무엇에 홀렸는지 알려드리고 말았다. 그리고 잊었다. 여기서 끝났으면 뭐 그냥 딱한 사람에게 적선한 걸로 끝났을텐데, 정말 내가 잘한 짓으로 만들어준 건 다음에 일어난 일이다.
그런데 며칠 지나서 호출기에 음성메세지가 들어왔다. 그 아저씨였다. 덕분에 집에 잘 왔으니 다음에 소주라도 한잔 사고 싶다고 했다. 난 다시 연락하지는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수줍음 많이 타는 학생이다보니. 하지만 기분이 정말 좋았다. 내 하루 점심값 + 음료수값이 그 사람에게 참 큰 도움이 되었구나. 또 그걸 그 사람이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사실 이게 중요한 것 같다. 내가 비록 작은 호의를 배풀었지만, 상대방이 그걸 크게 생각하면 큰 것이니까.
그 후로부터 누가 도움을 청하면, 웬만하면 도와주려고 했던 것 같다. 겨우 자잘한 것들이었겠지만, 상대방에는 큰 도움이 될지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생각해보니 여기에는 대학 때 친하게 지냈던 선배의 영향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인생이 그리 만만하고 아름답기만 한 게 아니지. 이런 내 policy를 근본적으로 흔든 사건이 생겼다. 과외를 하러 가던 지하철에서 자기 아내의 수술비를 보태달라던 어느 할아버지를 본 적이 있는데, 몇년 후 그 아저씨가 똑같은 래퍼토리로 또 구걸을 하고 있더라. 그걸 보는데 참 나름 대단하다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어찌 구걸을 해도 그리 성의 없게 하냐. 나같으면 뭐 다른 이야기라도 지어내겠다. 내가 그 할아버지를 처음 봤을 때 돈이라도 줬었다면 얼마나 기분이 엿같을까 생각하니 그때 돈 안주길 참 잘한 것 같다.
똑같은 행동이라도 상대가 고마워하면 잘한 짓이 되고 아니면 병신짓이 된다. 이게 내가 남에게 호의를 받았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미안한 짓을 했으면 미안해하고, 호의를 받았으면 감사해한다. 이게 참 기본인데 말이야. 뭐든 그렇지만, 기본이 가장 중요하고, 가장 크다. 기본 됨됨이를 갖춘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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