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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2018년도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다.

참 재밌는 한해였다. 아이가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게 너무 기쁘다. 다다미방에서 첫 발을 내딛던 순간이 아직 기억난다. 엄마 아빠도 말할 줄 안다. 무엇보다 나를 따라하는, 나를 빼닮은 아이가 있다는게 너무 신기하다.

그래 한국에도 갔었지. 많은 친구를 만나지는 못했고, 한국으로 간 여행 자체는 그리 즐겁지 못했다. 그래도 내가 한국에 가만히 있었다면 어찌 됐을까 궁금할 때가 있었는데 현실적인 답을 얻을 수 있었다. 한국에 남았다면, 뭐 야근이나 하고 있겠지. 휴일에도 툭하면 불려나가고. 휴가도 눈치보면서 쓰고 말이야. 이렇게 아이가 커가는 걸 볼 수 없었겠지. 운이 좋아 잘 풀려서 하는 말이긴 한데, 미국에 오길 정말 잘 한 것 같다.

내 개인적인 성취라고 할만한 일은 없었다. 이 점이 좀 아쉽다. 어째 시간을 쪼개서 새로운 기술이라도 익히고 해야할텐데. 그냥 회사에서 일 열심히 했고, 작년보다 조금 더 인정 받은 것 같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좀 더 여유가 생겼다. 이정도면 B 정도는 줄 수 있을 것 같다. 내년에는 A를 향해서 노력하겠다.

내가 어릴 때는 우리집이 가난한 것도 몰랐다. 그렇게 좋은 동네 살았던 것도 아닌데 거기서도 평균에는 못미치는 형편이었다. 대학교에 다닐 때도 가난한 학생이었다. 과외로 생활비를 벌어 썼는데, 그게 내 기분에는 많은 돈이라 이게 여유가 생긴 거라고 생각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워낙 그 전에 돈 없이 사는게 익숙해서 그리 느낀 것 같다. 회사 다닐 때는 유학을 가고 싶어서 밑천을 모으느라 허리띠를 졸라맸다.

지금 이정도의 경제적 여유는 나도 처음 경험해본다. 유학을 마치고 직장을 잡으면서 점점 여유가 생겼다. 애기 옷을 사거나, 아이에게 먹일 음식을 살 때 일일이 예산을 계산하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너무 좋다. 편하다. 만약 애기를 병원에 데리고 가면서 돈걱정이 앞선다면 정말 슬플 것 같다. 그런 슬픔 없이 아이 키우는 행복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지금의 여유가 참 좋다.

그냥 경제적 여유를 주제로 한 어느 연구가 생각나 끄적여본다. ‘가난한 사람이 더 도덕적인가’에 대해서 누가 실험을 하나 했다. 부자 동네와 가난한 동네에 적은 돈이 든 편지를 보냈다. 봉투 겉면에 수신인 이름을 실제 집주인과 다르게 했다. 이 돈이 집주인에게 온 게 아니라는 걸 알아보게 만든 것이다. 얼마나 많은 집주인들이 그 돈을 그냥 꿀꺽할 것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정직하게 봉투를 반송할 것인가?

처음의 기대는 부자 동네의 봉투가 적게 반송되어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부자들은 돈에 대한 집착이 강하기 때문에 부자가 되었을테니 이런 easy money를, 비도덕적이지만, 그냥 놓고 보지 않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과는 반대였다. 부자 동네에서 압도적으로 많은 봉투가 반송되어 왔다. 더 도덕적인 사람들은 부자동네 사람들이었다.

그 연구자는 여기서 또 다른 사실을 발견해냈다. 그 돈편지를 한 날에 보내지 않았다. 어떤 편지는 월초에, 어떤 편지는 월말에 보내는 식으로 날짜를 다 다르게 만들었다. 부자 동네에서는 별 패턴이랄 게 안보였다고 한다. 허나 가난한 동네에서 반송되어 오는 편지들에는 날짜별로 패턴이 읽혔다. 월급을 받은 직후일 월초에는 그래도 많은 편지가 반송되어 오는데 월급날이 가까워질수록 편지가 적게 반송되어 오더란다. 심지어 빈봉투마저도 같은 패턴을 보였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느냐면 주머니 사정이 개인의 도덕성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헌데 은행 계좌의 잔고가 바닥난 월말에는 비도덕적으로 행동하고, 월급을 받아 다시 잔고가 높아지면, 일시적이건 뭐건, 다시 잃어버린 양심을 찾는다. 여기에 대해서 보충되는 연구도 있었을 것이고 해서 얻은 결론은 참 슬프다. 경제적 여유를 잃어버리면 양심도 같이 잃어버린다는게.

내가 나쁜 놈이었다가 점점 착해지고 있는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난 평생 그냥 착하게만 산 것 같은데. 예전보다 조금 여유로워졌다고 해도 내가 쓰는 돈은 달라지지 않았다. 아내 말로는 내가 돈을 너무 안써서, 본인도 내 핑계를 대면서 쓸 수가 없으니, 미치겠다고 한다. 헌데 나도 좀 바뀌긴 했다.

돈을 써야 할 때 복잡한 생각을 안해도 된다. 뭐 대단하게 돈을 쓰는 것도 아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먹거리를 산다거나, 시카고에 놀러온 친구에게 밥을 산다거나 이런거다. 예전이라면 여기서 돈을 쓰면 마누라가 타박하지나 않을지, 이번 달 여유 자금 안에서 쓰는건지 등등 복잡한 생각이 딸려왔다. 전혀 우리 가족의 재무상태에 영향을 주지 않을 금액이어도 그랬다. 그냥 마음에 여유가 없었던거지. 그런데 지금은, 예전에도 쓸데 없었고 지금도 여전히 없는, 걱정 없이 살 수 있다. 마음 편하게 친구를 환영해주고, 아이가 좋아하는 과일을 사주면 된다.

예전보다 좀 나아졌다고는 해도 내가 돈을 엄청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애를 위해서 뭐든 다 해줄 수 있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당장 큰 집으로 이사를 가고 싶어도 그럴 돈이 없으니. 앞으로 더 나아지도록 일 열심히 해서, 학군 좋은 동네의 단독 주택에 부담없이 이사갈 수 있도록 돈을 모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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