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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비수기의 시카고

내가 ‘비수기의 시카고’라는 제목으로 비수기의 시카고에 대해서 글을 쓰게 된 것은 아마도 황경신씨 때문일거다. 한국에 있을 때 황경신씨의 글을 즐겨 읽었는데, 그 중에 여행기 같은게 있었다. 그 여행기는 또 다른 여행기(혹은 외국 체류기)를 언급했는데 그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다. 난 그 책을 사다 읽었고, 그 중에 이런 챕터가 있었다. ‘비수기의 그리스’. 특유의 무덤덤한 문체로, 비수기의 그리스를 묘사해놨다. 그리하여 내 평생에 비성수기에 그리스에 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비록 내 글재주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감히 언급할 수도 없지만, 시카고에 오래 살았으니까 비수기의 시카고가 놀러 올만한 곳은 못된다는 이야기를 할 자격은 충분한 것 같다.

시카고의 최성수기는 7, 8월이다. 미시건 애비뉴가 커다란 카메라를 둘러맨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시기이다. 날씨도 좋고, 그렇게 더운 날도 많지 않아서 내가 봐도 놀러올만 하다. 6월과 9월도 괜찮다. 오히려 관광객들이 많지 않아서 더 좋을 수 있다. 나도 지인들에게 권할 땐 극성수기를 살짝 비켜난 이 시기에 놀러오라고 한다.

그 외의 계절에는 안와야된다. 다른데 좋은 곳 많은데 굳이 시카고에 올 필요 없다. 10월만 되어도 겨울 옷 입고 다닌다. 5월도 봄이라기에는 좀 애매하다. 특히 겨울에는 절대 오면 안된다. 오후 4시만 되어도 어둡고 기온은 섭씨 영하 10도가 예사다. 재수 없으면 섭씨 영하 20도 아래도 겪어볼 수 있다. 게다가 바람은 어찌나 부는지. 여기가 Windy City 아닌가. 이상하게도 하늘에도 잔뜩 구름이 낀다. 여름에는 흐린 날이 드문데, 겨울엔 맑은 날이 드물다. 누군가는 겨울에 시카고 있으면 우울증 걸리기 딱 좋다고 하더라. 하루종일 건물 안에서 우중충한 창 밖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그럴 만도 하겠지.

이런 날 시카고에 오면 할 게 없다. 추우면 시내 돌아다니는 것도 고역인데, 호수로 유람선을 타러 나가겠나 아키텍쳐 투어를 하겠나. 아마 호수가 얼어서 배도 안뜰거다. 시카고에서 다양한 요리를 맛볼 수 있다고는 하는데, 뉴욕이나 LA 가도 비슷할 것 같다. 요리가 목적이라도, 특정 레스토랑이 목표가 아니라면야, 날씨 좋고 할 거 많은 캘리포니아로 가는걸 추천한다.

이게 내 생각만은 아니다. 몇해 전, 어느 누가 대규모 컨퍼런스를 열어야 했단다. 예산이 별로 없어서, 호텔은 디따 많지만 아무도 안가는 동네를 찾아야 했다. 그게 한겨울의 시카고였다. 비성수기에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한국인 관광객을 마주칠 때가 있다. 그들은, 내가 한국말을 알아듣는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지네끼리 거침없이 불평불만을 쏟아내는데, 들어보면 춥다고 난리다. 겨울에 춥기로 유명한 동네 와서 춥다고 불평을 한다라… 이게 살짝 이해는 안되지만 여행 와서 못노는데 짜증은 나겠지.

어쩌면 이것도 먼 미래에는 다를 수 있겠다. 지구 온난화 현상이 시카고만 비껴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확실히 겨울이 따뜻해지고 있다. 오늘은 1월 초인데도, 심지어 비가 온다. 몇해 전 이때는 화씨로 0도 아래였다. 감기에 걸렸는데, 눈보라를 헤치며 약을 사러 갔다. 이러다가 시카고가 LA처럼 되는거 아니냐는 농담도 한다. 좋은 일일지 아니면 나쁜 일일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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