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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한국 공대 대학원 수준과 병역의 의무

이따금씩 대학원 연구실에서 벌어지는 교수의 전횡에 대한 뉴스가 나온다. 뭐 놀라울 것도 없고, 새로울 것도 없고, 그렇다. 뉴스를 접하는 독자들도 이게 가끔 있는 미친놈인지 아닌지 헷갈릴거다. 뭐 저런 일 없는 대학원 연구실이 드물다는 사실을 상상하기는 어렵겠지. 대학원생들의 피해를 차지하고라도, 한국의 명문대 대학원 연구실들이 학생들의 수준에 비해서 놀랄만큼 형편없는 연구성과를 내고 있다는 것은 우려할만한 사실이다. 이걸 개선해보려고 내가 대학 다닐 때는 BK21 같은 것도 해보고 했는데, 개선된 점은 없다. 나는 이 지지부진한 성과의 핵심 원인이 병역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공부를 쭉 해보겠다고 결심한 학생들이 밟은 패쓰는 이렇다.

1. 학부 졸업 -> 한국(주로 동대학원) 석사과정->석사 병특->해외유학
2. 학부 중간에 병역 문제 해결 -> 학부 졸업 -> 해외유학

공부를 쭉 이어서 한다는 장점 때문에 1번을 많이 선택한다. 나 때만 해도 병무청이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맞춰주는 행운이 없다면 병역의 의무를 2년만에 하기는 불가능했다. 여차저차 3년을 쉬게 되는데, 이정도면 무시 못할 공백이다. 게다가 학부만 졸업하고 병역특례업체를 가면 조그만 업체에 가게 된다. 석사를 졸업하면 외국 사람들도 다 아는 대기업에서 병특을 할 수 있다. 레쥬메에도 나쁘지 않고, 돈도 좀 모을 수 있다.

결국 석사과정을 한국에서 하는 이유는 팔할이 병역의 의무 때문이다. 병역 면제를 받은 친구는 학부 졸업 후 바로 미국의 명문대로 진학하는데, 나같은 놈은 그냥 동대학원에 머문다. 다시 말해서 미국의 명문대에서 공부할 자격이 있는 학생들이 억지로 수준이 낮은 국내의 대학원에 진학하게 된다. 국내의 대학원 입장에서는 과분한 수준의 학생들이 끊임없이 공급되는거다.

원래 똑똑한 애들이니까 석사과정이 끝나고 유학 가서는 성과를 낸다. 회사에 간 애들은 일 잘해서 높은데 가고 말이야. 한국의 교수 입장에서는 자기 제자들이 잘 되는거다. 본인의 영향력도 따라서 커진다. 이게 자기가 대학원생들을 잘 키워서 이뤄진게 아니다. 똑똑한 애들이 애초에 자기 밑으로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졸업생들이 나중에 성과를 내니 꼭 자기가 잘 해서 그런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온갖 패악질에 연구는 하나도 안하는대도 잘 굴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니 교수들이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이나 할까?

나의 학부 마지막 학기 때로 시간을 되돌려보자. 내가 진학하기로 결정난 연구실에서 나온 석사논문들을 읽어보고 난 좌절했다. 내가 당장 2달만 있어도 이것보다는 잘 쓰겠다 싶더라. 이게 허세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오히려 진실에 가깝다. 대학원 들어가면 공부는 하나도 안하고 죽도록 수준 낮은 일만 하다가 막판에 딱 2달 주고 논문 쓰라고 하더라. 그동안 공부를 안했으니 학부 졸업 때보다 석사 3학기를 마쳤을 때가 더 못하다. 그 상태에서 2달만에 쓴 결과물이니까 내가 저렇게 느낀 것이 정확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그 연구실은 학생 수급에 문제를 겪은 적이 없었다. 오히려 들어오려고 난리들이었지. 쓰레기 교수에다 연구성과는 사실상 없는데도 이랬다.

나에게 병역의 의무가 없었다고 가정해보자. 난 당연히 외국에 있는 대학원으로 눈을 돌렸겠지. 그 중에 딱 저런 연구실이 있었다면 내가 그곳으로 진학했을까? 어림도 없는 소리다. 내가 국내의 대학원에 간 것은 병역의 의무로 묶여 있었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 없다. 내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국내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석사 병특을 대기업에서 하고는 유학을 가기 위해서 거기 있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그런데 교수의 패악질에 꿈을 꺾은 이들이 여럿이다. 정말 아까운 인재들이다. 마땅히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자격이 있는 애들인데 그리됐다.

만약 한국의 남자들에게 병역의 의무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한국의 공대 대학원들은 이때야말로 자기 수준을 알게 될거다. 딱 자기 수준에 걸맞는 학생들만 공급이 될거다. 졸업생들 중에 학문적 성과는 커녕 멀쩡한 대학 교수도 드물거다. 산업계로 간 졸업생들도 빌빌거리는 놈들 밖에 없을거다. 교수들도 딱 그 수준의 영향력을 가지게 될거다. 반면 원래 연구를 잘 하던 연구실과 교수들은 비로소 안그런 교수들과 차별화가 될거다. 그 때가 와서야 바뀔 놈은 바뀌겠지.

대한민국에서 병역의 의무가 없어지는 날이 쉽게 오진 않을거다. 남자들이 군대에 끌려가는 한 교수들의 갑질 뉴스는 계속 들려오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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