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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선배들의 해외생활 이야기

공연 예술 즐기기

한국에 살던 때와 비교하면, 공연 예술을 즐기기가 편해졌다. 특히 재즈를 좋아한다면 시카고만큼 좋은 곳도 드물다. ‘알 카포네’가 운영하던 곳을 비롯해서 라이브 연주를 들을 수 있는 클럽이 많다. 일반 대중음악으로 눈을 돌려도 역시 공연이 많다. 한국에서 유명한 가수들 중에 누군가는 지금 공연을 하고 있는 것처럼, 미국에서도 팝스타 중 누군가는 지금도 투어를 돌고 있다.

가장 큰 차이는 클래식 음악에 있다. 여긴 흔히 CSO라 불리는 Chicago Symphony Orchestra가 있다. 덕분에 클래식 공연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이 부담이라는 것이 꼭 티켓 가격만을 뜻하지 않는다. 한국과 비교하면 싼 티켓이 많긴 한데, 내가 보기엔 심리적인 면이 더 크다. 한국에서 클래식 공연에 가려면 예술의 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에 가야한다. 들어가는 길은 얼마나 위압감을 주며, 옷도 차려 입어야 한다. 그런데 CSO는 그냥 대로변 상가 건물 같은 곳에 있다. 버스 정류장이 바로 앞이고, 기차역도 불과 한 블록 떨어져 있을 뿐이다. 그냥 건물에 들어가면 개표대를 통과하고 바로 공연장이다. 옷도 다들 대충 입고 온다. 가장 비싼 좌석에 앉은 사람도 다르지 않다. 

이렇게 가격도 싸고 옷도 대충 입고 간다고 해도 라인업은 후덜덜하다. 예를 하나 든다면 현존 최고의 피아니스트 ‘예브게니 키신’이다. 현재 전성기에 있는 이 거장의 연주를 한국에서 들을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5년에 한 번이나 한국에 가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티켓이 비싼데도 순식간에 팔려 나간다. 그런데 이 귀하신 분이 시카고에는 매년 온다. 오히려 공연이 없는 해가 드물다. 2018년에는 유라시아 쪽에서만 투어를 돌기로 해서 시카고에 공연이 없었다. 이 때는 CSO에서 따로 ‘예브게니 키신 올해 안 오십니다’라고 알려주더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CSO 공연은 매년 여름 Ravinia라는 곳의 야외 공연장에서 열리는 콘서트이다. 여긴 아예 잔디밭에 돗자리 깔고 밥 먹고 술 먹는 건 물론, 누워있어도 괜찮다. 어떤 날에는 나와 아내는 김밥을 싸 갖고 갔고, 친구 하나는 시카고에서 자전거를 타고 와서 트라이애슬론 선수처럼 입고 있었다. 그런데 들려오는 선율은 ‘요요마’의 손가락에서 나오고 있었으니 낮은 문턱과 후덜덜한 라인업의 적절한 예시가 아닐까 싶다.

미국에서도 하이 엔드인 CSO가 앞장서서 부담을 내려놓으니 이 동네 사람들에게 클래식은 각 잡고 듣는 음악이 아니다. 소규모의 클래식 공연도 동네 곳곳에서 많이 열린다. 다 편하게 가서 있다 오는 공연이고, 걔 중에는 유아들을 위한 것도 있다. 이런 거 보면서 자라는 애들이 나중에 악기 하나씩 집어 드는 게지. 막연히 미국은 클래식 음악의 저변이 넓다고 하는데, 다 이런 배경이 있었던 거다.

어느 날 갑자기 곧 있을 공연을 찾아봤다. 불과 한 달 후에, 아주 재능 있는 가수, ‘아리아나 그란데’의 공연이 있는 게 아닌가. 여길 갈지 말지 아내와 옥신각신했는데, 결국 가지 않기로 했다. 좀 아쉽긴 했지만, 뭐 또 기회가 있겠지. 그렇게 잊고 지내던 어느 날 아침, 구글이 오늘의 주요 뉴스를 알려줬는데 영국 런던에서 테러가 있었단다. 바로 ‘아리아나 그란데’의 공연장에서 말이다. 도시는 다르지만 내가 가려고 했던 바로 그 투어가 아닌가. 난 너무 놀랐고, 기사를 클릭해봤다.

“초등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가수인 아리아나 그란데의 콘서트에서…”

아니 기자 양반! 누가 보면 동요라도 부르는 줄 알겄소! 어린이 희생자가 많았던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 붙인 말인 것 같긴 한데, 콘서트장이 초등학생으로 가득 차 있었다면 진짜 적응이 쉽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걔네들 부모님들도 따라왔을 테니 괜찮았을라나. 뭐 다음에 직접 가서 확인을 해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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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공돌이 선배들의 해외생활 이야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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