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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선배들의 해외생활 이야기

바람의 도시? 추위의 도시

시카고는 Windy City라는 별명이 있다. 정말 이름값 한다 싶을 정도로 바람이 많이 분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서풍이 16마일로 불어오고 있다. 시속 25km가 넘는다. 한국에서는 태풍이라도 와야 불 법한 바람이 여기서는 그냥 수시로 부는 것이다. 같은 시간 서울에는 시속 3마일의 남풍이 불고 있다. 이 바람은 내게 장점으로 다가왔다. 내가 이 도시에 처음으로 왔을 때는 여름이었다. 나무 그늘에서 책을 읽거나 호숫가를 따라 자전거를 탈 때면 적당히 불어주는 바람이 고마웠다. 시카고는 도시 자체도 깨끗한데, 이것도 바람 덕분이 아닐까 싶다. 허나 이게 장점만은 아니다. 시카고 기후의 또 다른 특징인 추위. 그리고 이 바람이 추위와의 시너지가 엄청나다.

“동부에는 허리케인, 서부에는 지진, 남부는 토네이도, 우리 시카고는 그냥 춥다.”

농담 좀 보태면 이 지역의 추위는 자연재해 수준이다. 대충 6개월은 겨울이고, 본격적으로 추워지면 한국에서 입던 겨울 옷 정도는 어림도 없다. 어찌하여 이렇게 추운 땅에 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되었는지 의아스러울 정도다. 옆에 미시건호가 없거나, 산이라도 드문드문 있었으면 아무것도 아닌 땅이었을 게다.

하긴 나도 여기 오기 전에 똑 같은 얘기를 들었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한국에서도 추운 날은 춥잖아. 어차피 겨울엔 건물 밖에도 잘 안 다닐텐데 그게 좀 길어진다고 해도 뭐가 큰 일이겠어? 좋아하는 스키는 원 없이 타겠네. 차라리 잘됐다.’

진짜 이렇게 생각한 순진한 총각이 바로 나다. 이는 큰 착각이었다.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추운 날이 많고, 이게 길다는 것도 힘든 점이다. 게다가 겨울이 되면 하늘에 구름이 잔뜩 낀다. 여름엔 흐린 날이 드문데, 겨울엔 해를 보는 날이 많지 않다. 맑은 날이라도 오후 4시 좀 넘으면 어두워지고, 추우니까 바깥에 나갈 수도 없다. 건물 안에서 우중충한 창 밖만 내려다보는 생활이 반 년이나 이어진다. 우울증 걸리기 딱 좋다. 스키를 타러 다니면 즐겁지 않냐고? 시카고가 대평원에 자리한 탓에 근처에 스키장이 없다. 차로 두 시간을 달리면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잡은 스키 리조트가 하나 나오는데, 빈말로라도 좋은 스키장은 아니다. 조금 더 나은 스키장은 두 시간 반은 달려가야 하고, 더 나은 곳은 세 시간을 가야한다. 그곳마저도 강원도 횡성에 있는 스키 리조트보다 많이 못하다.

날씨가 이런 줄 알았으면 내가 여기에 왔을까? 나도 여기 쉽게 대답을 못하겠다. 뉴욕과 비교해도 여기가 더 춥고, 겨울은 더 길고, 스키장도 더 멀다. 더 나아가 날씨 좋은 주로 가는 것도 진지하게 고려했을 것 같다. 사람 나름이지만, 사철 따뜻한 서부 출신들은 유독 시카고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얘기도 들린다. 실제로 서부 출신 직장동료들 중 여럿이 다시 돌아갔다. 꼭 캘리포니아 출신이 아니더라도 시카고의 겨울을 한두 해 겪어보고는 기겁을 하고는 탈출한 사람이, 내 친구 중에도 여럿이다.

미국은 땅이 넓다 보니 지역마다 기후도 많이 차이가 난다. 시카고가 섭씨 영하 20도일 때,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로 휴가를 떠나보니 거긴 영상 20도가 넘더라. 물론 날씨 하나 믿고 살고 싶은 도시를 선택하기에는 다른 현실적인 조건도 많이 중요하다. 커리어, 생활비, 때로는 한국까지의 거리 등등. 시카고의 겨울이 이보다 덜 중요할 수는 있겠지만, 최소한 각오라도 좀 하고 왔으면 충격을 좀 덜 받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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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공돌이 선배들의 해외생활 이야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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