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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선배들의 해외생활 이야기

영혼을 치유해주는 음식

서울에서 살던 집 근처에는 유명한 소고기집이 있었다. 갈비탕이 끝내줬다. 컨디션이 안 좋으면, 주로 전날 과음 등의 이유로, 여기서 갈비탕을 먹는 것으로 기운을 충전했다. 아마도 누구나 이런 음식은 하나씩 있을 것이다. 한국 사람이라면 대부분 한국 음식에서 영혼의 휴식을 찾겠지. 그런데 나의 갈비탕 사랑은 시카고에 오는 순간 끝이 났다. 뭐 다른 한국 음식이었어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을 거다.

일단 한인 타운이 부실한 것도 문제이고 대중교통으로 접근이 쉽지 않다. 미국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데, 갈비탕 사 먹을 곳이 없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시카고보다 큰 두 도시인 뉴욕과 LA는 말할 필요도 없고, 애틀란타, 시애틀, 산타 클라라에도 한인 음식점이 잘 갖춰져 있었다. 그런데 시카고는 왜 이런지… 아직도 이 미스터리를 풀지 못하고 있다. 미국에 올 때부터 딱히 한인 커뮤니티를 찾아서 의지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그랬다면 심하게 좌절을 할 뻔했다. 내가 한인 타운 관련해서 원한 것은 단 하나. 그저 갈비탕일 뿐이었는데 그 갈증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게 안타깝다.

수십 년 전에는 시카고 북쪽 로렌스 거리 따라 한인타운이 형성되어 있었다. 지금은 한인들이 대충 다 북서쪽 교외지역으로 옮겨가버렸다. 내가 자주 가는 식당이 구 한인타운에 있긴 하지만, 거긴 남아있는 한인 가게가 많지 않다. 한국의 위상이 높아져서인지 한국 음식점이 여기저기 산재되어 있긴 한데, 갈비탕 맛있는 집은 한국에서도 드물지 않은가? 그냥 일찌감치 포기했다. 뭐 그래도 다행이라면 도시 안에 삼계탕 맛있게 하는 집도 하나 있고, 비빔밥 정도라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먹을 수 있다. 한국식 고기집도 구 한인타운에 가면 제법 있고 말이지. 본인이 꼭 먹어야 하는 한국 음식이 이 세 가지 중에 없다면 곤란하겠지만, 이거라도 먹으면서 타향살이의 설움을 달랠 수 있다.

향수병은 그렇게 달랜다고 치고, 휴일 늦은 오전에 무거운 몸을 일으켰을 때는 뭘 해야 하느냐? 집 근처 다이너에 가서 전형적인 미국식 아침식사를 시켜 먹는다. 에그 베네딕트나 몬테 크리스토 샌드위치 같은 거. 나도 내가 이런 음식 먹으면서 영혼의 휴식 운운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러나 뭐 어쩌겠는가? 인생이라는 게 그렇지. 언제까지나 깔끔한 정답만 쫓으며 살 수는 없다. 답이 없으면 근사치라도 찾아내는 게 엔지니어다운 어프로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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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공돌이 선배들의 해외생활 이야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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