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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선배들의 해외생활 이야기

박물관에 자주 가는 이유

한국에서 공립 문화시설을 이용할 때마다 건축물이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지 잘 보거라!”

아마 이게 그 시설이 지어진 의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서 건물에서 웅장한 느낌이 들고, 건물로 들어가는 길도 웅장하다는 문제가 있다. 특히 국립중앙박물관은 한번 갔다가 다리가 끊어지는 줄 알았다. 서울시립미술관이 가장 접근성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생활 밀착형 시설 같다는 느낌은 역시 안 든다.

유럽의 박물관들은 조금 다르다. 과시하는 느낌이 드는 곳은 많아도, 루브르 박물관을 제외하고는, 입구에 들어가기까지 관람객들을 대놓고 고생시키는 곳은 못 봤다. 전시물을 잘 볼 수 있게 하는 데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 같다. 대영박물관조차 대장정 같은 건 없이 들어갈 수 있고, 입구를 통과하자 마자 바로, 아마도 가장 유명한 전시물인, ‘로제타 스톤’이 나타난다.

미국의 박물관들은 아이들을 위한 곳이다. 아이 딸린 가족이 나들이할 수 있는 공간으로 설계가 되었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전시 자체부터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것 같다. 한국이나 유럽에 있는 시설보다 아이를 위한 공간이 많고, 아예 놀이터를 갖춰 놓은 곳도 많다. 이렇게 아이들 오라고 만든 곳인데 들어가는 길이 멀어서는 안되겠지. 대부분 쉽게 들어가고 나가도록 되어 있다. 웅장한 느낌이 드는 박물관이 없지는 않지만, 그마저도 한국에서 본 것에 비하면 단촐하다.

아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박물관을 만든 게, 이걸 어떻게 하면 잘 쓸까 하는 고민에서 출발한 것 같다. 뭘 만들었으면 잘 써야 하지 않겠는가? 이번 주말에 애들을 데리고 뭘 해야 하나 하는 고민은 아이가 있는 가정이라면 누구나 다 한다. 적당히 나들이하기 좋게 만들어 놓으면 온 동네의 부모들이 애들을 데리고 몰려온다. 국가의 세금으로 만드는 걸 좀 폼 나게, 위엄 넘치게 만들고 싶은 유혹이야 있겠지. 그런데 이미 최강대국인 미국이 어디 눈치를 보며, 남들에게 인정 받기만을 위해서 안 하던 짓을 할 이유가 없다. 이곳 사람들의 실용적인 마인드셋이 그걸 허용하지도 않을 거고.

오늘도 시카고의 박물관들은 아이들로 넘친다. 내가 다니는 박물관은 일곱 개가 있는데, 주말마다 하나를 골라서 나간다. 날씨 좋으면 동물원과 식물원이 추가된다. 이들 시설들과 공공 도서관이 아니었으면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까 싶다. 내가 지금 이렇게 열심히 돌아다니고는 있는데, 한국 같았다면 글쎄. 근처에 어떤 박물관이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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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공돌이 선배들의 해외생활 이야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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