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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선배들의 해외생활 이야기

관대한 기부 문화

2020년 초, 코로나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가게들이 큰 어려움을 겪었는데, 제아무리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이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Stay-at-home 명령이 떨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North Pond’라는 레스토랑에서 이메일을 보내왔다.

“아시다시피, North Pond는 3월 15일부터 문을 닫았습니다. 시로부터 다음 지침이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린 모든 직원을 해고했고, 그들을 위해서 무엇을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중략)… 많은 고객분들께서 우리를 돕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한 관심과 아량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에 우리 직원들을 위한 모금을 요청 드립니다. 레스토랑을 다시 열 수 있게 되면 기부해주신 분들을 재개장 파티에 초대하겠습니다. …(후략)”

한시라도 빨리 실업급여를 받게 하기 위해 직원들을 곧장 내보낸 것 같다. 그들에게 실업급여가 큰 도움이 되겠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고, 현 상황에 대한 좌절감도 크겠지. 업주도 분명 재정적으로 큰 타격을 받았을 게다. 이런 상황에서 ‘가족과 같은’ 스텝들을 돕기 위해 발 벗고 나서는 것도 인상적이었고, 그 수단으로 ‘기부’를 생각해냈다는 게 이채로왔다.

놀랍게도 이게 이 집만의 아이디어는 아니었다. 많은 레스토랑들이 같은 방법으로 스텝들에 대한 지원을 부탁했다. 내게 기부라는 건 조금 특별한 행동으로 여겨진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떠올릴 만큼 그렇게 보편적인 행위는 아니지 않나? 그런데 여기서는 그런 모양이다. 특별한 사람만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누구나 다 하고 사는 것 같다. 실제로 내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다들 크고 작은 기부를 하며 살고 있더라.

글쎄 자랑은 아닌 것 같은데, 난 한국에 있을 때는 한 번도 기부를 한 적이 없다. 내가 특별한 사람은 아니었던 게, 내 주변에도 기부를 하는 사람들이 드물었다. 오히려 나는 기부에 대해서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내가 기부한 돈이 제대로 쓰일지 알 수 없다는 게 크다. 그런데 그런 내가 여기서는 기부를 하며 살고 있다. 내 주변 많은 사람들도 그렇고 말이지. 어지간히 알려진 곳에 기부를 하면, 이 돈이 엉뚱한 사람 아들내미 맨해튼 콘도를 사주는데 쓰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라고 사기꾼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한국과 비교하면 경제 범죄가 훨씬 엄하게 다뤄진다. 집을 사고 팔 때는 은행 계좌를 반드시 통해야 하는 등 여러 제도도 횡령과 탈세가 드러나기 쉽도록 만들어져 있다. 거기다 미국 국세청은, 말이 많긴 해도, 가장 막강한 능력과 권한을 가진 행정기관이라 해도 무리가 없다. 한국 국세청은 여기 비교하기에 부끄럽다. 이런 인프라가 갖춰져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안심하고 기부를 하는 것 같다. 거짓말쟁이, 사기꾼을 경멸하는 특유의 문화도 무시 못한다. 미국의 제도와 법 집행, 이곳 사람들의 문화가 어우러져 ‘기부’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어프로치가 가능한 것이다.

아니 문화는 그렇다 치고, 남에게 베푸는데도 제도가 갖춰져 있어야 한다고? 그렇다. 난 법과 제도와 같은 인프라가 깔려 있어야 남에게 베푸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사소한 금액이라도 그렇다. 이왕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인데 최소한 이게 엉뚱한 사람들 술값으로 나가는 일은 겪고 싶지 않다. 그런 일이 없을 거라고 믿을 이유가 있어야 선행을 해도 마음이 편하다. 촘촘한 법과 강력한 집행이 있다는 건 충분히 훌륭한 이유다. 이러니 내가 편하게 기부를 하고, 기부 금액을 올려 달라는 이메일을 받아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

한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느 날 퇴근길 건널목에 서 있는데, 많이 봐줘야 사회 초년생 정도 되어 보이는 아가씨가 오더니 기부를 부탁하더라. 내가 거절하자 이유가 뭐냐고 물어보길래 어떤 단체인지도 모르고 그 돈이 어떻게 쓰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녀는 돌연 짜증을 내며 대충 이렇게 소리 지르더라.

“뭐하는 곳인지는 방금 설명했고 여기 웹사이트 들어가보면 돈 어디 쓰는지도 다 나와 있어요! 좋은 일 하겠다는데 의심부터 하는 건 문제가 있는 거라구욧!”

아무 잘못도 없는, 굳이 발굴하자면 솔직했을 뿐인데, 나에게 이러다니 화가 날 법도 한데 그냥 측은하기만 했다. 오늘 이 건널목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말을 붙였을 것이며 또 거절은 얼마나 많이 당했겠는가? 그렇게 짜증이 나 있는 게 이해는 되더라. 본인도 실수했다는 걸 인지했는지 황급히 내 곁을 떠났다.

글쎄… 무슨 단체였는지는 기억도 안 나지만 지금도 있다면 모금 전략을 바꿨기를 바란다. 여기서는 마케팅 쪽 교수가 기부금 모금 전략에 대해서 발표도 하더라. 연구할 거리가 많은 분야인 모양이다. 잔기술 부리지 말고 대범하게 나갔으면 좋겠다. 각종 화이트칼라 범죄를 엄벌하고 국세청의 역량을 강화시키는 걸 도와줄 국회의원을 찾아서 후원을 한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기부를 위한 인프라를 보완하는 게 어떨까? 그게 된다면 지친 직장인에게 소리 지르는 대신 이메일 한통만 보내도 될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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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공돌이 선배들의 해외생활 이야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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