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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선배들의 해외생활 이야기

이렇게 교포가 되어간다

2018년 어느 날, 고향친구가 내게 롯데 자이언츠 투수 이름을 대보라고 하더라.

“손민한, 조정훈, 카브레라…”

내 입에서 나온 건 2000년대 중 후반 선수들 이름이었고, 당시에도 뛰던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놀랍게도 2018년 롯데 투수들 중에 내가 아는 이름은 ‘송승준’ 하나 밖에 없었다. 내 머릿속의 롯데 자이언츠는 2009년에 멈춰 있었던 게다. 사실을 말하자면, 프로야구팀 뿐만 아니라 내가 아는 한국은 2009년의 모습이다. 그 후에 있었던 변화는 별로 업데이트되어 있지 않다.

한국은 내게 특별한 곳이다. 거기서 성장했고, 많은 기억들이 남아있다. 친한 친구들, 친지들 대부분 그곳에 있다. 하지만, 점점 한국에 관심이 없어진다. 한국의 포털사이트에 내 아이디는 이미 다 휴면계정이 되었다. 이걸 다시 사용하려면 내 명의의 한국 휴대폰이 필요한데,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한국의 셀럽 중에 아는 사람이 뜸해지고, 네이버 뉴스에 들어가도 찾아보는 건 NBA 기사 정도다. 한인 마트 갔다가 재외국민 투표를 독려받아도 내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일부러 한국에 무관심해지려고 하진 않았다. 그냥 내 자리에서 내 삶을 살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한국은 이제 내 삶의 터전과 멀어졌다. 내가 갖고 있는 채권은 미국 연방은행의 금리에 반응하지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나에게 관련이 있는 뉴스는 한국의 포털이 아니라 아이폰 뉴스 앱에서 나온다.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주제도 NPR의 아침뉴스에 있다. 거기서 한국 소식은, 북한 빼면, 기억나는 게 별로 없다.

가끔 한국 뉴스가 다뤄지긴 한다. 하나 예를 든다면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다. 다음날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도 당선이 됐다. 둘 다 흔하지 않은 과정으로 대통령이 되었기 때문에 뉴스에서 예외적으로 크게 다뤄졌다. 나는 이 토픽이 며칠은 더 갈 줄 알았다. 그런데 하루 만에 이게 다 쓸려 나가더라. 바로 그 다음날 FBI의 전 수장인 제임스 코미가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압력을 받았다는 사실을 폭로했기 때문이다. 며칠 후, 나도 제임스 코미의 청문회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한국은 빠르게 변하는데, 나는 돌아갈 계획도 없고 자주 방문하지도 못한다는 것도 큰 이유다. 가끔 한국에 일이 있어서 방문해도 마치 외국에 온 것처럼 낯설었다. 오랜만에 추천서 받으러 모교에 갔을 때와 느낌이 비슷했다. 내가 어느 교수님이 퇴임하고 부임했는지 알 수가 없는 것처럼, 한국에 무슨 변화가 있었는지 속속들이 알 수가 없다. 그저 바뀐 자판기 위치나 알면 그걸로 충분하다.

솔직히 많이 아쉽다. 한 때는 나의 정체성의 큰 부분을 이루고 있었던 게 이렇게 되어 버리다니 말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내가 마주해야 할, 혹은 감당해야 할 현실은 한국이 아니라 바로 여기 있으니.

부산을 떠나 서울로 갔을 때처럼, 난 한국을 떠나 미국에 왔다. 내 기억 속에 새로운 부산의 모습이 없는 것처럼, 2020년의 한국은 내가 떠올릴래야 그럴 수 없는 게지. 살아가는 게 다 그런 것 같다. 우리는 한 곳에 머물 수 없으니까. 옛 것을 뒤로 하고 새로운 것이 익숙해져야만 한다. 이게 비단 옛날에 살았던 동네뿐이겠나. 사람도 유행도 다 마찬가지라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은 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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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공돌이 선배들의 해외생활 이야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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