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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코로나 아포칼립스 대충 끝

벌써 몇 주가 된 일인데, 머릿 속에 계속 맴도는 장면이 하나 있다. 단골 음식점에 저녁을 시켜놓고 가지러 가는 중이었다. 술집 몇 개를 스쳐 지나간다. 아주 그냥 예전처럼 술집이 북적북적했다. 아무도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밝은 얼굴로 모여앉아 술을 마시고 음식을 나눠먹고 있었다. 선남선녀들이 어울려 있는 모습이 문득 아름답게 느껴졌다.

한국에 있을 때 '미인도'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허구헌날 춘화만 그려대는 신윤복에게 임금이 왜 이러냐고 묻자 신윤복은 '남녀가 서로 희롱하고 사랑하는 모습이 아름다워서'라고 대답한다. 사실 난 저 장면이, 아니 저 대답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아름다움'이란 마땅히 비범함이나 선망을 내포해야 한다고 여겼고, 난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냥 본능에 충실한 모습들인데 재밌거나 자연스럽다가 아니라 '아름다움'을 느겼다는 걸 난 이해하지 못했다.

허나 그 영화를 보던 시절보다 열 몇살 나이를 더 먹은 내가 그날 본 장면은 분명히 아름답게 느껴졌다. 예전엔 난 알지 못했지만, 충분히 비범하고 선망되어져야 할 것처럼 느껴졌다. 이유를 잘 설명하지는 못하겠다. 아마도 젊음인 것 같다. 바로 그 비범한 것이 말이다. 내가 본 바로 그 모습은 오직 젊음에게만 허락되어 있는 게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나이 들어도 바에 앉아 이성을 유혹할 수는 있고 그것 또한 자연스러운 모습이겠지만 거기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꽤 다를 것이다. 그냥 젊은이들이 젊은이다운 행동을 할 뿐인데 그게 아름다워 보였던 거다.

지금의 내가 저기 있으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봤다. 솔직히 난 이제 그런거 재미 없다. 그냥 내 아이들의 손을 잡고 동네 공원을 산책하는 게 훨씬 좋다. 내가 나이가 더 들어서 아이들이 성장하면 나 또한 애기들과 동네를 산책하는 부모들을 보며 아름답다고 느끼지 않을까 싶다. 그냥 인생의 각 단계에서 자연스레 겪게 되고 하게 되는 것들이 정녕 아름다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흔히 인생을 여행에 많이 비유한다. 상투적이긴 해도 적절한 비유이다. 하와이에 놀러가서는 호텔방에 틀여박혀 드라마 재방송만 보고 온다면, 뭐 그러는 건 본인 자유이긴 해도, 하와이에서 잘 놀았다고 쳐주기 어렵다. 로마에 놀러 갔으면 로마에서 로마를 가장 잘 뽑아먹을 수 있는 걸 해야하고, 파리에 가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재밌는 드라마라도 그거 재방송 주구장창 본 게, 하와이 말고 다른 데서는 못하는, 하와이를 잘 뽑아먹은 거라고는 할 수 없을테니까.

새삼 지금의 나, 아버지라는 이 역할을 잘 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얘네들이 아빠만 보면 좋다고 매달리는 게 길어야 10여 년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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