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날 비 맞으며 이사를 왔는데, 일요일이 할로윈이다. 할로윈 장식 같은 건 있을 리가 없으니까 우리집에는 아무도 안 오겠지 했는데, 뭐 그런 것 쯤 아랑곳 않는 아이들이 참 많더라.
내가 부모 입장이 되어도, 실제 아버지이기도 하고, 아이들을 아무데나 풀어놓지는 않을 거다. 사탕을 많이 받아야 아이들도 즐거워 할테니 최대한 맛있는 사탕을 많이 받을 수 있는 곳으로 가는게 인지상정이지. 그럼 어떠한 조건이 필요할까? 아마도 가난한 동네에는 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부잣집들만 있는 곳도 가지 않을 것이다. 지나치게 큰 저택만 있는 동네라면 단위 시간 당 갈 수 있는 집의 수가 작을테니 말이다. 그리고 인도가 따로 있는 곳엘 보낼 것이다. 서버브엔 차도만 있는 곳이 실제로 많다. 이 모든 조건을 다 만족하는 동네가 있지. 바로 내가 사는 곳이 딱 그렇다.
이 동네에 아이들이 많이 올 것은 예상했는데, 그래도 우리집엔 안 올 줄 알았다. 그 흔한 호박 하나 없는 집에 왜 오겠나 싶었지. 그런데 이 동네 아이들은 그냥 와서 문을 두드리더라. 고작 4시 좀 넘었을 뿐인데 말이지. 대부분 이 동네 아이들일텐데 저 집이 동양인 구두쇠 양반이 산다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다. 꼬마 서너명을 실망시킨 후에는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급히 마트에 갔다.
이미 value pack 같은 건 다 쓸려 나갔더라. 그래서 생각보다 좀 비싼 쵸코렛 바를 수십개 사서 급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문 뒤에 서서 바라보니 그래도 우리집엔 적게 오는 편이더라. 아무래도 호박이 없어서인 것 같다. 앞 집을 가만히 보고 있었는데, 아무리 적게 봐줘도 200명은 넘어 보인다. 내년에 과자값이 참 많이 들겠다 싶다. 우리 애들이 아무리 지칠 때까지 돌아다녀도 그 정도 모으기는 불가능해 보이지만, 일 년에 단 하루 동네 아이들에게 인심 쓰는 날인 게지.
그런데 우리 동네 아이들은 맞는 건가? 딱히 차별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우리 동네 사람이 아닌 것 같은 꼬마들도 많았다. 걸어서 올 수 있는 애들만 갖고는 저 무지막지한 숫자가 채워질 수 없다. 부모가 차를 갖고 와서 애들을 풀어놓는 걸 여러 번 봤다. 셔틀에서 떨궈진 질럿들이 지체없이 가까운 벙커로 돌진하듯, 가까운 집으로 달려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뭐 하여간 땅거미가 깔리자 원정대들의 방문도 잦아들었고, 내가 준비한 과자도 떨어졌다.
우리 애들도 trick or treat이 처음이다. 작년엔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할 수가 없었고, 그 전엔 너무 어렸으니까. 아직 어린 둘째는 진작 나가 떨어졌고, 첫째는 재밌다고 2 라운드를 뛰러 갔다. 받아온 과자를 보니, 대부분은 뭐 흔히 보는 스니커즈 이런 것들이었는데, 가끔 제법 비싼 과자도 있더라. 이런 걸 수백개나 준비한 걸까? 참으로 관대한 이웃들이 많은 것 같다. 그래도 평생 처음으로 뭔 가를 벌어 온 애들 아닌가. 자기 과자에 손도 못대게 하던데, 내년에는 Hey Jimmy Kimmel, I told my kids I ate all their holloween candy 챌린지를 해볼까 싶다.
소박하게나마 할로윈을 치루고 나니, 나도 이 동네의 일원이 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 애들도 이 동네 집들 돌면서 인사를 다 했다. 어느 이웃은 연락처를 주기도 하더란다. 우리 애들을 놀이터에서 보면 이제 알아보겠지. 어차피 여기 동양인도 몇 없으니까 말이야. 나한테 과자를 받아간 애들도 나를 알아보지 않을까. 내년엔 제대로 준비해서 이 행사를 치루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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