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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기다림

Job interview의 분위기가 괜찮았기 때문에 나도 상당히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주일동안 연락이 없다면 이건 그냥 떨어진 것으로 봐야겠다. 결과를 언제 쯤 알 수 있겠냐고 물어보는 메일을 두번이나 보냈는데도 연락이 없는데 붙은 사람에게는 이렇게 할 수가 없지. 오바마가 실업문제에 전력투구하겠다고 선언했다지만, 이건 미국시민들 이야기고 투표권도 없는 international student에겐 해당사항 없는 말이겠지.

기다림... 그 초조한 기다림... 그동안 난 공부에 집중할 수도 없었고, 맘 편히 어딜 놀러 나가지도 못했다. 언제 그 회사로부터 메일이 올지 모르니까. 기다리는 게 너무 괴로웠다. 어디서 누구 누구는 internship이라도 구했다고 하지만 잡 없이 이번 학기를 들어가는 나. 이번 겨울에 한국 갈지도 모르는데, 그러면 겨울동안 인터뷰를 볼 수도 없을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다음 학기도 잡 없이 시작하겠구나.. 하는 생각들. 사실 시카고에 있는 학교로 굳이 온게 학교 다니는 동안 잡을 구해서 일할 수 있으면 그냥 공부만 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해서였다. 그게 안되니 참 여러가지 생각, 주로 기회비용에 대해서, 오만 잡생각이 다 나더라. 이러니 공부를 할 수가 있나.

어제 그동안 보고 싶었던 한국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를 봤다. 말이 필요없는 명작이더군. 이 영화를 보면서 난 기다림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심은하와 한석규가 만나서 사랑한 시간은 정말 며칠 되지 않는다. 영화 중반 조금 넘어서 한석규가 입원하고 나서는 둘은 다시 만나지 못한다. 하지만 그 둘의 사랑을 깊게 한 것은 기다림이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은 흔한 핸드폰, 삐삐도 없던 시절이니 그시절의 사랑은 으례 그런 식이었겠지. 만나기 위해서는 어딘가에서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특히 한석규가 사라진 이후부터는 심은하 혼자서 계속 기다린다. 하지만 그것은 멈춰 있는 기간이 아니다. 그동안 안타까워하기도, 그리워하기도, 분노하기도 한다. 둘이 만나서 뭔가 한 것은 별로 없지만, 기다림의 시간을 통해서 그것은 사랑이 되고 추억이 되었다.

요즘은 사람들이 '기다림'이란 걸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 그만큼 생각할 시간과 음미할 시간도 잃어가고 있는게 아닐까? 뭔가 할 때에는 정작 생각은 못한다. 기다림의 시간이 잠시도 없이 몰아치는 이벤트들 속에서 우린 얼마나 그것을 잘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내게 필요한 것은 조금의 시간낭비도 없는 perfect schedule이 아니라 이런 기다림의 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 시간 자체는 초조하기만 하고 전혀 즐겁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최소한 그 포지션에 대해서 더 생각해볼 수 있었다. 물론 그래서 날 부른 것이었겠지만, 정말 내게 잘 맞는 포지션이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한 포지션, 그리고 어떤 포지션에 내게 맞을지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이런 일이 없었다면 그동안 난 공부에 잡서치에 치여서 이런 생각은 전혀 못해봤겠지. 만약 이 시간 뒤에 직장을 구하게 되면 더 강한 동기를 가지고 더 나은 퍼포먼스를 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냥 계획대로만 착착 진행된다면, 절실한 마음, 감사한 마음을 사람이 왜 가질까.

이 일주일의 시간 동안 행복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또 뭔가를 하나 얻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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