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한 친구가 하나 있다. 다른 애들이 하는 얘길 들어봐도 대충 다 나처럼 생각하더라. 나랑 비슷한 점도 있지만 참 다른 점도 많고 말이지. 그래도 참 좋은 녀석이고 미국 온 이래로 사귄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이다. 이 친구가 드디어 결혼을 한다고 알려왔다. 그래서 밴쿠버 여행을 다녀오게 되었다.
얘가 지난 10년 간 살아온 도시가 시카고, 런던, 싱가폴, 밴쿠버다. 런던하고 시카고는 두 번씩 살았구나. 참 오지게 돌아다녔네. 그래서 초대된 사람들의 반 이상은 세계 방방 곡곡에서 왔다. 어느 정도였느냐. 결혼식 이틀 전에 신랑 친구들하고 술이나 한잔 하자고 해서 모였는데, 서로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그 중 한명이 나하고 전에 런던에서 만난 적이 있는 있더라. 서로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던 게 문제라면 문제지만 말이야.
결혼식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미국 영화에서 흔히 보는 소박한 결혼식이었다. 밴쿠버 교외에 자리한 아담한 요트 클럽, 백야드에서 꺽어 온 나무와 꽃으로 장식되어 있는 식장, 직접 준비한 음식들. 주변 경관도 너무나 아름다웠고. 무엇보다 이 두 사람들의 가족들이 이들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좋은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 있는 것 자체가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물론 다양한 사람들과 얘기를 하고 친구를 사귈 수 있었던 것도 좋고 말이지. 이날의 speech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Thank you the goverment of Canada for relaxing Covid restrictions."
아이들을 식장에서 얌전히 데리고 있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둘째가 웨딩 케잌으로 돌진을 했을 때는 진짜 간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어찌어찌 막았으니 망정이지. 나중에 이 이야기를 Best Man에게 했더니 정말 놀란 표정을 짓더라. 그 케잌을 여기로 가져오느라 참 고생을 했던데 말이야. 뭐 근데 애가 케잌을 엎었어도 결혼식은 그대로 진행됐을 거고 그 나름의 이야기가 되지 않았겠느냐 이러긴 하더라. 다행히 식장 근처에 놀이터가 하나 있었고, 댄스 파티가 시작되고 나서는 비로소 나도 좀 앉아서 쉴 수 있었다. 진짜 애들을 데리고 다니면 긴장을 놓을 수가 없는데 이게 무척이나 에너지를 많이 잡아먹는 것 같다.
이 날에서 유일하게 아쉬운 점이 댄스 파티 때 내가 우리 애들과 춤을 추지 않은 것이다. 내 딴엔 드디어 긴장을 내려놓고 앉아 쉬는 시간이어서 그냥 애들을 지켜보기만 했는데, 다 변명이지 뭐. 나도 같이 놀았으면 우리 애들에게도 좋은 추억이 되었을텐데 이게 계속 후회가 된다. 아내가 좀 나가라고 했는데도 왜 그 때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는지. 그 다음 날이 되어서야 후회가 뼈아프게 밀려오더라. 그래도 우리 애들 모두 웨딩이 재밌었다고 하니까 여기서 추억을 하나 만든 것 같긴 하다.
밴쿠버는 듣던대로 아름다웠다. 왜 이 친구가 밴쿠버로 돌아가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는지 알겠더라고. 무엇보다 자연 경관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이렇게 아름다운 해변과 산을 동시에 갖고 있는 도시가 있는지 생각을 해봤는데, 없다. 다른 사람들한테 물어봤는데도 없더라고. 산이 이렇게 생겼으면 스위스를 뭐하러 가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밴쿠버 다운타운에서 무료 셔틀버스 타면 30분 만에 이런 데 오는데 말이다. 도시 자체도 깔끔하고 안전했다. 과장 좀 하면 다운타운이 리조트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밴쿠버 인구만 보면 백만 정도라는데 도시가 너무 크지도, 심하게 붐비지도 않은 점도 마음에 든다.
보너스로 음식도 맛있었다. 특히 아시안 음식이 흔한데다 훌륭하기까지 했다. 어떻게 그냥 시도해본 호텔 근처의 아시안 음식이 다 이렇게 맛있을 수 있는지 놀랍더라. 미국에서는 어지간한 곳에 여행가면 그냥 샌드위치만 먹고 살아야 되고, 이번에도 그럴 각오를 하고 왔는데 기우에 불과했다. 시카고에 있는 아시안 음식은 진짜 뭐.. 비교하기 쪽팔린다. 얘전에 이 친구와 나름 괜찮은 일식집에 갔는데 얘가 너무나 실망하던 게 기억났다. 난 나름 괜찮게 먹었고 나중에 단골 비슷하게 되었는데 말이야. 밴쿠버에서 일식을 먹어보니 100% 이해가 된다. 이런 곳이라면 한 달, 혹은 두 달 있어도 괜찮겠다.
결론적으로 난 밴쿠버에 또 갈테다. 아름답고, 여유롭고, 음식도 맛있고, 구경할 것도 많다. 단점을 발굴하자면 비싼 것 정도인데, 그래도 스위스 가는 것보다는 싸고 시간도 덜 걸리고 물가도 거기보다는 싸다. 애들이 조금 더 크면 하이킹도 할 수 있고, 스키장에도 갈 수 있을테니까 더 좋겠지. 이 친구와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것 같다. 우리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밴쿠버 너무 재밌었고 그 중에 베스트는 웨딩이었기 때문에 삼촌이 한 번 더 했으면 좋겠단다.
그렇게 아름다운 기억만 만들어서 시카고로 돌아왔는데, 바로 총기 난사 사건이 터지네. 근데 이 사건이 뭐 시카고의 흔하고 흔한 위험한 동네에서 생겼다면 뭐 그냥 그러려니 하겠는데, Highland Park은 손꼽히는 부촌이다. 어느 정도 부촌이냐면 마이클 조던 집도 이 동네에 있다. 유학생 시절 여기 있는 헤지펀드에 잡 인터뷰 보러 갔다가 넋 놓고 동네 구경을 한참 했었지. 뭐 그 때 그 인터뷰는 낙방을 했지만서도. 그래서 어디 잃을 것 없는 놈이 부자들한테 깽판 치러 갔구나 싶었는데, 범인은 그 동네에서 자란 도련님이네. 잃을 게 많은 놈이 왜 이 지랄을 했을까. 정말 의외인 사건이다.
범인의 아버지는 평소 총기 규제론자였다는데, 아들 총 사는데에 도움을 줬다고 하네. 다른 사람들이 총 들고 다니는 건 불안해도,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아들은 총을 가져도 된다고 생각했단 건데 참... 인간이란 동물은 신기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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