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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느닷없이 물고기 키우기

원래 난 어항을 하나 들여놓고 싶었다. 집안이 좀 정리되고 가구도 다 자리 잡으면 작은 어항을 하나 사서 네온 테트라 같은 작은 물고기들을 키울 생각이었다. 이미 마누라하고 얘기도 끝났다. 단지 집안이 다 정리되지 않아서, 할 일아 너무 많아서, 저기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세상 일이란 게 꼭 내가 준비가 되어 있어야 터지는 게 아니지. 지난 주말에 동네 행사가 있어서 갔더니 애들한테 금붕어를 나눠주더라. 당연히 우리 애들도, 집에 어향이 있건 말건, 받아오는 사태가 생겨버렸다. 아무 준비도 안되어 있는 집에 금붕어 두마리가 나타난 게다. 솔직히 주최측에 좀 야속하더라. 저렇게 나눠주는 금붕어들 중에 오늘 끝까지 살아남는 건 얼마 없겠지. 진짜 저러면 안되는 게 아닐까. 인도적으로 말이다. 하지만 내 생각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벌써 그 금붕어들에게 이름도 지어주고 좋아하는 애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그 중에 한 마리는 몸을 잘 못가누기 시작하더니 죽어버렸는데 애들이 어찌나 슬퍼하던지. 둘째가 금붕어 봉지를 떨어뜨렸는데 아마 그 때 다친 모양이더라.

일단 멀쩡한 한마리는 커다란 대야에 담아뒀는데 여기선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얘마저 죽으면 애들이 울고불고 난리를 칠 것 같아서 서둘러 어항을 준비했다. 아무리 내가 물고기를 키우려고 했어도, 금붕어를 들여놓을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연구를 해야했다. 아... 금붕어는 생각보다 큰 어항이 필요한 것 같더라. 그런데 그 정도 사이즈를 덜컥 들여놓으면 감당이 안될 것 같았다. 무엇보다 시간이 걸릴 것 같은데 우리집 대야에는 벌써 어항이 필요한 금붕어가 한 마리 있다. 아직 유어이니 큰 공간이 꼭 필요하진 않을테고, 또 초보자가 키우다가 많이들 죽는단다. 그러니 이 작은 물고기 한마리 바라보고 대단한 투자를 하는 게 합리적이진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그냥 10 gallon짜리 어항 세트를 하나 사왔다. 작은 어항이니 전용 스텐드도 필요 없고 Ikea 책장에 올려놨다. 애들도 좋아하고 보기도 좋네. 나중에 얘가 잘 크고, 또 내년에 또 금붕어 얻어오고 하면 큰 어항을 사와야겠다. 그런데 내 꿈은 fancy한 물고기 키우는 거에다 궁극적으로는 해수 산호 어항이었는데 금붕어라니. 뭐 그래도 훌륭한 애완 물고기가 따로 있나. 내가 정 주고 내 손 타고 하면 최고지. 무엇보다 내 의견보다 훨씬 중요한 게 있기도 하고.

이번 일을 겪으면서 어릴 때 일이 떠올랐다. 시골에 살 때는 가끔 금붕어 트럭이 와서 금붕어도 팔고, 동그란 어항도 팔았다. 그걸 산 적도 있는데 며칠 못가서 물고기들이 다 죽더라. 그냥 덩그러니 어항에 물고기만 넣어놨으니 그랬던 건데 그 당시엔 영문도 몰랐지. 조금 더 나이 들어서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땐 그보다 좀 오래 키웠다. 어항에 기포기도 틀어놓고 하니까 뭐 그 당시로는 제대로 갖추고 키웠다고 생각했지. 헌데 내 기억으로는 이 어항보다도 작았던 것 같고 그나마 몇 년씩 키우지는 못했다.

요 며칠 어항을 준비하다보니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요 며칠 동안 내가 구글링 하며 습득한 정보의 양은 어릴 때 수족관 아저씨와 몇 마디 나눈 것과 비교도 할 수 없다. 진짜 내가 금붕어에 대해서 너무 몰랐다. 요즘 세상에는 현재 갖고 있는 지식보다는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는 걸 느낀다. 뭐랄까 머리를 유연하게 유지하고, 근간이 되는 지식을 꽉 붙들고 있어야 이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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