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로 나가는 게 생각보다 나쁘지는 않다. 처음에는 절망적으로 받아들여졌는데, 그 정도는 아니란 얘기다.
출퇴근 시간도 어찌어찌 대충 맞춰진다. 아내가 일을 하지 않는 날에는 새벽에 회사에 와서 운동도 한다. 덕분에 펠로톤 살 생각은 싹 없어졌다. 기차 안에서는 책을 볼 수 있는데, 이건 평소에 못 누리던 호사 아닌가. 원래는 몇 년식 기다려야 한다는 기차역의 파킹 퍼밋을 바로 얻을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드는데, 이건 뭐... 주차장이 1/5 밖에 안 차 있어서 그럴 거란 생각은 했다. 일은 뭐... 그닥 엄청 효율이 좋진 않다. 턴어라운드가 빠를 때도 있지만, 동료들이랑 잡담하는 시간도 꽤 되더라고. 그리하여 대충 '할 만은 하다'라고 결론을 지울 수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리 간단치만은 않다.
애들을 8시까지 데이케어에 데려다 놓고, 그대로 기차역으로 차를 몰아 기차역으로 가면 급행 열차를 탈 수 있다. 그러면 오피스에는 9시 10분 정도에 도착한다. 오피스에서 4시 50분에 퇴근하면 급행 열차를 타고 주차장에 5시 35분에 도착한다. 데이케어로 바로 가면 6시 전에 애들을 픽업할 수 있다. 뭐 어찌어찌 되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간에 가면 다른 애들이 아무도 없다. 다들 집에서 일하지 나처럼 출근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남아있는다는 사실을 애들이 썩 좋아하지 않는다. 애들을 8시에 재우려고 하면, 먹이고 씻기기 바쁘다. 내가 놀아주는 시간이 없다. 학교에서 숙제도 내주는데, 봐줄 시간도 전혀 없는 것이다. 아침에도 문제인데 오전 8시까지 데려다 놓으려면 애들 응석을 받아주고 있을 시간이 없다. 뭔가 서두를수록 애들은 더 말을 안든는다. 이러다보니 아침밥을 제대로 먹고 가는 날이 없다. 항상 대성통곡을 하는 애들을 차에 밀어넣는 것으로 끝난다. 난 이런 상황이 전혀 행복하지 않다.
뭐 이런 일과를 하는 중에 내가 오피스에서 일하는 시간은 7시간 40분. 회사가 요구하는 건 8시간 30분. 아내가 일을 하는 날에는 뭘 어찌 할 수가 없어서 일주일에 두세번만이라도 조금 짧게 일해도 되겠느냐고 매니지먼트에 물으니 안된단다. 물론 공식적인 답변은 그래도 비공식적으로 벌써 저러고 있는 사람이 많고, 나도 그럴 생각인데 이런 상황이 편하지는 않다. 내년이 되면 더 문제인 것이, 첫째가 다니는 학교 문이 8시 반에 열리기 때문이다. 그러면 거의 10시가 다 되어서 오피스에 도착하게 된다. 아내가 일을 관두거나 좀 더 시간이 편한 직장을 찾지 않는 이상 회사를 편하게 다닐 수가 없다. 뭐 그냥 맘 편하게 배 째라고 하는 사람도 있긴 있더라만 그래도 10시 출근은... 이게 지속 가능한 상황인지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다.
회사 분위기는, 대충 안좋다. 안면에 미소를 머금고 "How are you doing?" 하는 게 이 동네의 인사 아닌가. 요즘엔 대신 똥씹은 표정으로 "It's stupid.", "I feel your pain." 이러는 게 인사다. 단순히 기분 문제만은 아닌 것이, 줄퇴사도 현실화되는 분위기다. 돌아다녀보면 방 문닫아놓고 쑥덕거리는 사람들도 많이 보인다. 뭔 얘기를 하고 있을지 너무 뻔하지 않은가. S급은 시원하게 퇴사를 지르고 그 아래 급은 눈치를 보고 있다. 오피스 복귀 날에 맞춰서 이미 여럿 나갔다. 어느 팀은, 퀄리피케이션 좋고 똑똑한 애들만 모아놓은 팀인데, 팀장과 팀원 하나만 빼고 다 나간다. 얘가 오피스 나오라니깐 쭉 휴가를 썼던데 웬 일로 회사를 나왔더라고. 알고 보니 짐 싸러 왔더라. 구글로 간다니 잡을 수도 없다. 그 팀 팀장은, 당연히,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단다. 아마도 다들 복귀 날짜 전에는 매니지먼트와 대화를 시도해본 것 같고 최종적으로 no를 들은 후에 인터뷰 잡고 뭐 그러고 있는 것이지.
그럼 나는 어쩔 것이냐. 나와 같이 일을 많이 하는 애가 요즘 인터뷰 보고 다니는 중인데, 걔가 나가면 내 일이 많이 힘들어질 것 같다. 그럼 나도 고민이 될 같다. 평소에 리쿠르터들한테서 연락을 자주 받지만 다 무시하고 있었는데, 일단 잡 마켓 상황이 어떤지 말이나 좀 섞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며칠 전에 온 이멜에다 답장도 보냈고, LinkedIn에 들어가서 메시지도 체크하고 그랬다.
나는 매니지먼트의 입장도 이해가 된다. 그들이 추구하는 기업 문화가 있는 것이고, 매일 대면하는 것이 거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이해하고 있는 것이지. 그리고 우리는 판데믹 전에 매일 모여서 일을 했다. 문제는 지난 2년 반 동안 사람들의 생활 패턴이 바뀌어버린 것이다. 그러기에 충분한 시간 아닌가. 매일 출근하는 것과 양립할 수 없는 생활 환경을 갖게 된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지. 뭐 그냥 감정 소비할 필요 있나. 회사와 직원의 관계는 결국 계약 관계일 뿐이다. 회사가 원하는 것과 직원이 원하는 것이 다르면 각자 갈 길 가는 거지.
여담으로 오랜만에 LinkedIn에 들어가니 참 여러 생각이 나더라. 지난 동료들을 찾아봤는데, 참 다들 다양하게 잘 풀렸더라. 우리 회사에서 2-3년 일하고 시카고대에서 MBA 한 후에 더 재밌는 걸 찾아가는 게 아주 당연한 커리어 패쓰더라고. 그래서 지금 일하는 회사들을 보니 테슬라라던가 뭐 선망하는 회사들은 다 나오더라. 그 중에는 구글에서 일하다가 직접 본인이 차려서 CEO를 하고 있는 사람도 있더라. 조금 친하게 지냈던 예전 동료가 그 회사에서 또 일을 하고 있대. 내가 너무 내 커리어 패쓰에 무관심했구나 싶기도 하고, 마누라 비위 맞추고 애들 키우는 것 또한 보통 일이 아니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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