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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그대 슬픔까지 사랑해

Babylon을 봤다. 데미안 샤첼 감독의 라라랜드를 워낙 인상 깊게 봤기 때문에 꼭 이 신작을 보고 싶었다. 정말 훌륭한 영화였다. 흥행에는 아주 제대로 실패했다는데 그럴만 했다라는 생각도 든다.

이 영화는 ‘영화’라는 불꽃에 날아든 불나방들, 그들의 화려한 몸짓과 사그러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영화에 대한 사랑. 영화의 환희와 기쁨 뿐만이 아니라 슬픔과 더러운 모습까지도, 그야말로 온전히 영화 혹은 영화 산업 그 자체에 바치는 사랑이다. 감독의 영화 사랑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다. 라라랜드를 봤을 때도 고전 영화를 좋아하는구나 싶었는데 그 정도가 아니라 영화학도가 교과서에서 배우는 최초의 영화까지 아우르는 것 같다.

이 모든 애정 표현을 진짜 풀 악셀을 밟으면서 해대는데, 이건 좀 과유불급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감독이 정말 이 정도로 과하게까지 표현하고 싶었던 거겠지. 내가 내 아이들를 사랑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냥 나 같은 일반 관람객들에게는,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하나’라고 느낄 지점이 분명히 있고 그래서 대규모 흥행은 기대하기 힘든 작품일 수 밖에 없다. 아마 제작진들도 모르지는 않았을 거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불나방들… 그들 이야기 하나 하나에 모두 공감이 되더라. 넬리는 그런 사람이니 정말 그렇게 행동했을 것이고, 시드니 팔머도 마찬가지이다. 잭이 영화에 가진 자부심과 자기애도 이해가 된다. 실질적인 주인공인 매니와 다른 캐릭터들의 이야기도 자연스럽다. 이렇게 캐릭터 하나 하나의 완성도가 높은 걸 보니 이야기를 공들여서 다듬어온 것 같다.

아마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지점은 넬리와 매니가 파티장 구석에서 서로의 꿈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다. 그 후로부터 그들이 겪은 우여곡절, 그러니까 rise and fall을 보여주는데, 특히나 그들이 마지막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크게 다가왔다. 잭, 시드니, 넬리는 그들의 캐릭터만큼이나 다른 방식의 끝맺음을 맞이한다. 시드니는 작은 재즈 클럽으로 돌아간다. 헐리우드에서의 화려한 삶이 본인이 원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넬리는 생각 없이 막 나가는 인물로만 보였지만 의외로 자신의 마지막을 알고 있었다. 여기가 막다른 길임을 말이다. 그럼에도 해온대로 살 수 밖에 없는 게 바로 자신이라는 것도. 그런 넬리를 매니는 감싸주는데, 사실 처음부터 넬리의 뒤치닥거리를 해오면서 정이 든 건지는 모르겠지만 애정이 없다면 그게 애초에 불가능하지.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잭이 평론가로부터 자신의 몰락을 확인받는 신이다. 너는 끝났다. 하지만 니가 뭘 잘못한 것은 아니다. 달리 할 수 있었던 일도 없다. 그냥 너의 시간이 끝난 거다. 그렇지만 너는 영화로 기억될 것이고 거기서 영원히 살 거다. 이걸 보면서 사라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한참 생각을 했다. 나도 거의 확실히 살아온 날보다는 살 날이 짧을 것인데. 나도 언젠가는 끝이 날테고 그게 어떤 방식으로 오게 될지 또 어떻게 받아들일지 말이다. 이 생각이 자꾸 나서 잠시 영화에 집중하지 못했다.

마지막 장면 역시 인상적이었다. 영화관에 들어간 매니는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자기가 쏟아부었던 열정, 그리고 본인의 소중한 사람들, 그 사람들을 잃은 일들이 떠올라 너무나 슬펐겠지. 하지만 그는 깨달았다. 자신은 무언가 중요하고 거대한 것, 바로 영화, 그 것의 일부였음을 말이다. 바로 영화 초반에 본인이 말했던 꿈, 그것을 이루었음을. 그리고는 미소를 짓는다.

나도 살면서 뭔가 꿈 비슷한 것을 이루면 좋겠다. 그러면 마지막을 저렇게 미소 지으면서 맞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게 뜻대로 될런지 모르겠네. 솔직한 말로 나는 지금 내 꿈이 뭔지도 모르겠다. 그냥 stay afloat 하느라 똥을 싸는데. 그냥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서 살다보면 저런 아름다운 끝맺음을 할 수 있는 건가. 그렇게 믿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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