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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첫째 아이 베프에 대한 단상

Fancy Nancy라는 TV쇼를 우리 애가 좀 좋아했다. Nancy라는 아이가 나오는데 6살로 설정되어 있다. 애들이 좋아할만한 요소가 많은데 각 에피소드의 스토리도 꽤 완성도 있더라. 애들 보는 거라고 대충 만든 게 아니더라고. 그 중에 내가 보고 가슴이 덜컹 했던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발렌타인 데이를 맞아 친구들에게 카드와 쵸콜렛을 나눠줬다. 근데 실수로 베프에게 쓴 카드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친구에게 전달된 것이다. 내용은 “넌 내 단순한 친구가 아니라 베스트 프랜드야.” 뭐 이런 거였지. Nancy는 무척이나 당황했는데, 정작 카드를 받은 아이는 너무나 좋아하는 거다. 베프만 초대하는 거라면서 Nancy를 자기 집에 초대를 하질 않나. Nancy는 사실 다른 아이에게 쓴 카드라는 사실을 어떻게 말을 하나 전전긍긍 했는데, 어렵게 첫 마디를 꺼낸 순간, 그 친구가 사실 자기에게 쓴 카드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고 실토한다. 나도 여기 이사오기 전에는 베프가 있었는데… 하고 나지막히 읊조리는 장면에서는 진짜 억장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하필 시카고에서 이 동네로 이사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우리 아이의 친구들을 떠나 새로운 동네로 온 것이었지. 게다가 여긴 백인 동네. 댈러스 근처 사는 친구는 자기 동네에 30%가 동양인이라는데 일리노이주에서는 15% 넘는 동네도 잘 없다. 시카고에서 다니던 데이 케어도 대충 다 백인이긴 했지만 서버브는 분위기가 다를 것이다. 아무리 그 동안 백인 아이들과 어울리는 데 문제가 없었긴 했어도 걱정이 많이 되었다. 지난 해에 어느 한국계 아이 하나가 킨더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사립 학교로 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특히 더 했다.

근데 얘가 킨더 첫 주부터 이 쌍둥이들과 친구가 되었다. 얘들 엄마도 애들이 학교에서 누구랑 놀았다고 하는데 도대체 걔가 누군고 하고 있었고 우리도 마찬가지였지. 그런 우리가 동네 축제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얘네들 셋이서 손잡고 다니는 걸 보는데 어찌나 뿌듯하던지. 하지만 애들이 지내다 보면 같이 안 놀게 되기도 하고 뭐 별의 별 일이 다 있다. 실제로 학교에서 친구들과 지내는 데에 어려움이 있기도 했지. 그런데 뭐 결론적으로 그 쌍둥이들과는 베프가 됐다. 이 사실이 너무나 다행으로 여겨진다. 좀 기쁘기까지 하다.

쌍둥이들에게는 내니가 있었는데 정말 최고더라. 무엇보다 같은 반 애들 엄마하고 친하게 지내대. 뭐 나하고도 안면 트고 지낼 정도면 말 다 했지. 그리고 애들 플레이데이트를 다 잡아주더라고. 그래서 얘네들은 뭐 안 가본 집이 없더라. 옛날에 팟케스트에서 들은 건데 high-end nanny는 애를 보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친구를 만들어준다고 하던데 바로 그런 내니였던 것이지. 아쉽게도 그 내니는 다른 데 풀타임 잡을 잡아서 떠났는데 그집 엄마는 그 후로 어지간한 내니들은 맘에 안 찰 것이다.

우리 애는 쌍둥이들 중 하나와 더 친하다. 마누라의 해석은 아무래도 피지컬 때문인 것 같단다. 우리 애는 어릴 때 팔이 잘 빠져서 철봉에 매달리는 걸 못 하게 했다. 의사가 그렇게 시키더라고. 그래서 그런 걸 아직도 잘 못 한다. 이제는 해도 되는데 말이다. 그리고 그 쌍둥이들은 둘이 덩치가 조금 차이 난다. 그 중에 작은 애는 힘도 좀 약하고 해서 놀이터에서 다른 애들이 하는 걸 다 못 한다. 그건 우리 애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둘이 친해지지 않았냐는 게 우리 마누라의 의견이다. 근데 내가 보기엔 그런 것과 상관 없이 둘이 잘 맞는 것 같다.

다른 애는 아주 착하다. 드물게 온순하고 착한데다가 언제나 생글생글 웃고 있다. 얼굴도 예쁜 애가 그렇게 미소 짓고 있으니까 이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이냐. 진짜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역시 외모와 행동거지에서 드러나는 인상은 대단한 힘을 갖고 있다. 나도 얼굴 펴고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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