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참 좋아하고 한국 영화 찾는 애들한테도 많이 추천한다. 그래서 이번 미키 17에도 기대가 컸다. 근데 이번 주말에 애들한테 보여줄 영화를 고르는데 미키 17이 벌써 다 내려갔더라. 이 정도면 미국에서 상업적으로는 실패했다고 보는게 맞는 것 같다. 그럼 원작자가 그는 구린 영화를 만든 적이 없다고 단언한 봉준호가 왜 미국 관객들에게 어필하지 못했는지 나름대로 생각이 좀 있어서 적어보련다.
나는 봉준호의 첫 영화인 ‘플란다스의 개’도 여러 번 돌려봤을만큼 봉준호의 영화를 좋아한다. 뭐가 내게 그렇게 마음에 들었냐면 이건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그렇다. 봉준호 감독 영화의 중심 인물은 항상 그렇다. 대단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우러러보기에는 모자란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 이야기가 이리 저리 진행된다. 그 이야기는 보통 날카롭게 한국 사회나 한국 문화를 풍자하는데, 봉준호 감독이 이걸 완성도 높게 해낼 수 있었던 까닭은 그가 한국에 대해서 잘 알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보통 사람들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플란다스의 개’만 봐도 그렇다. 주인공이 이성재와 배두나인데, 이성재는 교수 자리 한 번 얻어보려고 발버둥치는 인문학 박사다. 분야가 인문학이라는 것 하나 빼면 너무 익숙하다. 배두나도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보는 인물이다. 한국의 아파트 관리 사무소가 얼마나 사람들에게 익숙한 존재냐. 이야기의 배경이 너무 사실적이고 익숙했다. 이래서 인물의 이야기에 공감되고 또 그의 풍자가 날카로왔던 것이지.
그런데 그 영화를 미국으로 옮겨오면 사정이 많이 다르다. 이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 미국 사람들에게 익숙하고, 사실적이며, 날카롭게 들리겠는가? 영화적인 완성도, 영화적 테크닉 이런 걸 신경쓰는 전문가들에게는 다르겠지. 외국 문화를 적극적으로 이해해보려 하는 사람에게도 좀 받아들여질 여지가 있다. 하지만 미국의 보통 사람들에게 어필한 구석은 별로 없다고 봐야 된다.
그럼 봉준호 감독이 미국 사람을 위하는 영화를 만들면 어떻게 될까? 이게 참 딜레마인 것이, 봉준호 감독의 최고 장점, 아니 내가 보는 최고 장점을 봉쇄하고 들어가는 게 된다. 봉준호 감독은 미국에 대해서 잘 모른다. 미국의 보통 사람들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러니 봉준호식의 이야기를 짜임새 있게 만들어낼 수가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만약 영화에서 누가 아침밥으로 BLT 샌드위치를 먹는 장면이 있다고 하자. 한국 사람들은 그냥 밥 먹나보다 뭐 이러고 넘어갈텐데, 미국 사람이 보면 누가 아침으로 저런 걸 먹냐 이래 되는 거지. 미국의 보통 사람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려고 하면 할수록, 미국 사람들에게는 거슬리는 점이 폭발하는 거다. 이성재를 둘러싼 현실에 대한 하나 하나의 디테일들, 그런 것들이 모여서 사실적인 이야기가 되었고 내가 그 영화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미국 사람들 대상으로는 이게 애초에 안 되는 거라.
미국 시장을 대상으로 미국 배우를 전면에 내세워서 찍은 영화는 모두 가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한 SF인 데에는 이 점이 무관하지 않을 거다. 봉준호 감독의 장점이 한국에 대한 깊은 이해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라면, 이 SF 영화들에서는 전자를 빼놓고 시작하는 거지. 차를 떼고 장기 두는 거다. 이러니 설국열차가 다른 영화들보다 울림이 작있던 게 우연이 아니다.
‘마더’의 마지막 장면에서 김혜자가 이 대사를 한다. “엄마 없어?” 이 부분에서 참 내게 와닿은 게 많았다. 그런데 미국의 관객들이 얼마나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까? 한국에서의 가족과 미국에서의 가족들 간의 관계는 참 다른 점이 많다.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그런 차이, 그런 차이가 이 대사의 무게에 영향을 주고 작품을 명작을 만드는 것인데 말이다.
그래도 봉준호 감독의 기본 역량이 있기 때문에 내 입장에서는 보통은 넘는 영화일 것이다. 하지만 최고의 작품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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