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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비싼 결혼식이 허영심 때문일까?

요즘 생긴 말 중에 '허니문 푸어'가 있다. 꼭 푸어가 되진 않더라도 결혼은 비싼 이벤트다. 왜 이렇게 사람들은 많은 돈을 쓰는가? 여기에 대해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해 놓았다. 하지만 나도, 얼마 전에 본의 아니게 아주 비싼 결혼식을 치른 사람으로써, 여기 내 경험을 보태고 싶다.

난 세상의 아주 많은 것들이 화폐로 환산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받는 스트레스도 금액으로 측정할 수 있고, 그 스트레스를 방어하기 위한 수단도 돈이 든다. 내가 여기 스트레스와 그 방어를 위한 돈을 지불하는 것을 언급하는 이유는 우리 결혼이 꼭 이랬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크게 느낀 것은 결혼식의 규모 문제였다. 처음엔 가까운 친구와 친척들만 모이는 소박한 결혼식을 계획했었다. 그렇게 해보니 신랑, 신부 합쳐서 150명 가량의 조촐한 결혼식이 된다. 그리고 이 숫자에 맞춰 웨딩홀을 알아보고 사람들에게 언제 정도에 결혼할 예정이다 이런 말도 했었다.

학교 동문회관이 싸지만 몇달 전에 예약해야 하기 때문에 집 근처에서 찾았다. 한편으로는 초청할 사람이 늘어갔다. 그 이유는 결혼식 초대를 하지 않는 것을 '너와는 인간관계를 끝을 내겠다' 혹은 '나는 너를 무시한다'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5년 쯤 연락한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과연 그 사람을 초대해야 하는가? 난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안그런 사람도 많더라. 그러다보니 리스트업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특히 부모님 쪽에서 그런 일이 많았다. 난 내가 정말 축하를 받고 싶고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연락했다. 그리고 내 친구들이라면 내 성격을 잘알기 때문에 오해가 생기는 일은 없었다.

적어놓고 보니 별 대단한 일이 아닌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이게 상당한 스트레스였다. 좋은 일 앞에 두고 욕으로 가득찬 전화를 한참 들어주고 나면, 아니 거기까진 아니라도 니가 날 이렇게 생각하니 섭섭하니 하는 최근 5년간 생사조차 모르던 사람들의 전화를 받고나면, 결국 혹시나 싶은 사람들에게 다 연락을 하게 된다. 물론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조심했다. 오랫동안 왕래가 없다가 결혼한다고 '계좌번호 적힌' 청첩장 내미는 사람들이 얼마나 웃기던가.

규모가 커진다는 건 전체 비용 뿐 아니라 객단가 자체를 높인다. 그냥 친한 사람들이 축하해주러 오는 거면 그럴 리 없지만, 기껏 와서 자리가 좁네, 장식이 이상하네, 음식이 별로네 하는 싸이코들이 꼭 있다. 그리고 인원이 늘어난다는 건 더 많은 싸이코들이 온다는 뜻이기도 한다. 결국 장소, 음식 등의 등급을 높이는 것으로 이 문제를 햇지하게 된다. 그래도 지랄하는 놈들은 지랄하더라. 지금 생각해보면 웃기지만, 결혼식 전후로는 이게 대단한 스트레스였다.

애초에 가까운 친구들과 서울 근처의 가까운 친지들만 초대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사람이 많아진다는 건 멀리서 오는 사람들 비율도 높아지게 만든다. 축하해주러 멀리서 오시는데 당연히 대접을 잘 해드려야 된다. 그런 분들의 마음은 너무 감사하고 기쁘다. 하지만 여기선 비용만 따져보기로 했으니 그런 측면에서는 부담이 늘어나는 건 사실이다. 쉽게 말해서 부르는 사람이 많아지면, 멀리서 오시는 분들 비중이 커진다. 그런 분들을 생각해서 음식 등급을 높이는 것도 비용을 부풀리는 원인이지만, 또 그런 분들께는 차비를 드리기 때문에 사람을 많이 부를 수록 객단가가 비싸진다. 게다가 결혼식장 음식이란 게 같은 가격의 호텔 레스토랑과는 비교가 안되는 수준이다. 호텔도 이런 사정을 다 알기 때문에 이렇게 터무니 없는 가격을 매기는 거고.

결국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객단가가 적어도 1.5배는 넘게 부풀었다. 전체적으로는 2배가 훨씬 넘는 돈이 들게 됐다.

내가 미국에 살고 부모님도 사회적 지위 같은 건 없으신 분들이라 그런 사람이 없을 거라 믿지만, 그 중에는 그냥 연락 받았는데 안가긴 뭣해서 온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 일 없도록 최대한 조심해서 연락을 했고, 굳이 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은 다 했지만 그래도 모르는 일 아닌가. 아마 그런 사람 입장에서는 내가 안좋게 생각할까 걱정이 되었겠지. 나는 혹시나 하는 걱정으로 초대를 하고 그 사람도 혹시나 하는 걱정에 온다면 이게 무슨 lose-lose game인가.

결국 '뒷말' 나오는게 싫어서 이런 초과 비용이 생긴 거다.

결혼식에 사람을 초대하는 이유는 축하를 받고 싶어서다. 마찬가지로 결혼식에 가는 건 축하해주러 가는거다. 사람에게 감동과 기쁨을 주는 건 그런 진심이 아닐까? 결혼식에 오지 못해도, 축의금을 낼 형편이 안되어도 그냥 날 진심으로 축하해준다는 사람들이 있어서 난 기뻤고 그날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다. 그런데 결혼식이 그냥 축하받고 축하하는 자리가 아닌게 된 것 같다. 뭐든지 일이 기본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 문제가 많이 생긴다.

결혼식을 '사회적 지위 혹은 네트웍을 확인받고 공고히하는 자리'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거기에 초대를 받느냐 참석하느냐 어떤 대접을 받느냐가 중요해진 것이겠지.  그러다보니 단순히 남의 결혼식이 아니라 내 일이 되어버린 것이고 왈가왈부하는 게 당연한거다. 게다가 한국사람들이 조금 남일에 감놔라 배놔라 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그래서 난 결혼식에 많은 돈을 쓰는 것은 분수를 잃어버린 당사자들의 허영심보다는 무수한 뒷말과 참견으로 스트레스를 주는 한국사회 특유의 분위기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적다보니 예전 내 친구 결혼식 때 있었던 일이 생각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10년 가까이 지난 어느날 내 친한 친구가 결혼을 했다. 그런데 거기서 본 다른 고등학교 친구로부터 이상한 얘길 들었다. 어느 연락 못받은 동창 하나가 심각하게 감정이 상했다는 거다. 난 의아하게 생각했다. 고등학교 시절 그 둘은 안친했다. 그리고 졸업 후에는 아마 만난 적이 없을거다. 이정도면 신랑이 그 사람을 기억하는지조차 애매한 상황인데 결혼식 초대를 안했다고 맘이 상했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더 웃긴 것은 그 말에 동조하면서 신랑이 잘못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던 것이다. 그땐 뭔 이런 사람들이 다 있나 하고 넘어갔지만, 결혼식 때 흔히 생기는 트러블인 것을 내가 결혼을 해보니 알겠다.

사람 일에 정답이란 없지만, 가끔 내가 험한 한국 사회에서 살기엔 너무 순진한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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