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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학대받은 아이는 나중에 어떻게 되나

사랑을 못받고 자란 아이는 괴물이 된다라.

얼마전에 비슷한 걸 어디서 봤다. 내가 잘 아는 어떤 사람이 생각나더라.

어릴 때부터 부모님에게서 사랑은 별로 못받고 학대를 많이 당한 사람이다. 다행히 그 사람은 괴물이 되진 않았지만, 성격에 아주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그래도 정상적인 사람이고 굳이 따지자면 꽤 괜찮은 사람이다.

그 사람이 어릴 때 당한 것으로 말하면, TV에 나오는 학대받는 아이와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왜 그랬을까?

본인이 어릴 때는 그냥 부모님의 기대에 못미쳐서 그랬을거라고 생각했단다. 주변에 공부 아주 잘하고 말 잘 듣는 애들이 많았단다. 그랬다고 치자. 그래도 그 사람이 평균에서 많이 떨어지는 건 없어보이는데 당한 건 평균을 우습게 넘는다. 그리고 그 사람이 심지어 학교라는 데를 가기 전부터 자주 심하게 맞았다고 하니 내가 봐도 부모님의 기대에 못미쳐서라는 것은 별로 타당한 이유 같진 않다.

그 기대라는 게 꼭 공부가 아니었을 수는 있다. 그냥 키가 좀 덜 큰다거나, 말을 늦게 한다거나 글을 늦게 깨우쳤을 수도 있고, 좀 웃기긴 하지만, 여기서 실망이 컸을 수도 있다. 그래 그런 이유로 실망했다고 치자. 아니 그런게 쌓이고 쌓였다고 해보자. 그래도 이런 이유로 애를 복날 개 패듯 때린다면 그런 부모가 정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애가 어떻다는 것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정량화가 적절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이의 qualification과 학대받는 정도를 회기분석한 것보다 그 부모의 qualification과 애를 학대하는 정도를 회기분석하는 것이 통계적으로 의미있는 결과를 낼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생각한다. 괜히 복잡하게 얘기했는데, 부모가 아이를 자주 때린다면, 아이가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부모에게 문제가 있어서일거다.

그 사람도 그렇게 말한다. 화목한 가정과는 좀 거리가 멀었고 부모님들 성격도 그리 좋은 편이 못된단다. 나중에 들어보니 어렸을 때가 특히 더 그랬단다. 집안 분위기가 흉흉할수록 사소한 이유로 아이가 미워보이는 일이 잦았을거고 약한 아이이게 화풀이를 한거겠지. 그런데 무서운 점은 아이가 그걸 안다는 거다. 자기가 왜 맞는지... 딱히 자기 잘못이 부모님을 화나게 해서가 아니라 부모님이 화가 나 있었고 사소한 시비를 걸어서 자신에게 화풀이한다는 것을 말이다. 아이가 맞으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아마 '내가 커서 힘이 더 세지면 똑같이 해줘야지'가 아니면 다행일거다.

앞서서 아이가 어떻냐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고 했다. 실제로 그런 것 같다. 객관적인 퍼포먼스는 훨씬 못한 시블링이 있는데 오히려 양친의 사랑은 듬뿍 받는게 내 눈에도 보일 정도다. 아마도 이것은 사람의 관성 때문일 것이다. 한번 어떤 사람에게 모질게 대하기 시작하면 그게 잘 안바뀐다. 집안 분위기가 나아지건 말건, 한번 샌드백은 여전히 샌드백인거다.

상황이 이러면 아이는 집이 불안해진다. 그 사람도 분명히 그랬을거다. 자기가 뭘 잘 해도 부모님이 기분 좀 안좋으면 비오는 날 먼지나게 맞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아이가 받는 스트레스는 엄청날거다. 그러면 정상이기가 힘들다. 그래서 좀 남들보다 못한 점이 있으면 그걸로 화가 난 부모가 또 때리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리고 추측컨데 동생으로부터 존중도 못받았을 것이다. 심지어 개도 집안 식구들의 권력관계를 빠르게 캐치하는데 사람이 개보다는 좀 더 민감하게 알아채고 행동하지 않았을까.

그런 환경에서 자란 그 사람이 어떻게 됐을까? 앞서 말한대로, 꽤 괜찮은 사람이다. 그런데 한가지, 가족에 대한 정이 전혀 없다. 아예 마음에 자기 가족에 대한 공간이 없는 것 같다. 그의 부모님이 과거에 했던 행동을 후회하고 진심으로 미안해한다고 한다. 그 사람도 그런 부모님을 이해한다고 하는데 그런다고 가족을 향한 정이 생기지는 않는 모양이다.

Home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난 "내가 돌아갈 곳", "편히 쉴 곳" 이런 게 생각난다. 마찬가지 가족이라면 "내가 어지간히 또라이 짓을 해도 내 편인 사람들", "날 위로해주고 힘이 되어줄 사람들" 이런 느낌이 든다. 그런데 그 사람은 그렇지 않은거다. 가족은 맞지만 어릴 때의 트라우마로 그런 느낌이 없는 것이지. 그런데 이게 한편으로는 합리적이다. 사람이 한번 한 짓은 얼마든지 다시 할 수 있거든. 미안해하는 것과는 별개로, 자기가 힘 없을 때 그 사람들이 본인에게 어떻게까지 했는지 이미 잘 알고 있으니 "돌아가 편히 쉴 곳"이 될래야 될 수 없는거다. 그 사람도 본능적으로 이걸 느끼고 있는거고.


꼭 가족에 대한 정 뿐이겠나. 겉으로 보인게 그것이고 또 다른 게 있겠지. 뭔가가 '결여'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해도 메울 수 없다는 것. 그것이 어린 시절 학대의 결과인 것이지. 그런데 본인은 별 불만 없이 잘 사는 것 같긴 하더라. 정이 없으니 서러움도 없는 것인가. 하긴 실망도 기대가 있어야 하는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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