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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ance

대책 없는 그리스

이건 사실 일주일 전에 써둔 글이다. 내 생각이 틀렸기를 바라면서 발행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슬픈 예감은 빗나가지 않냐더니, 일주일 간 상황은 악화일로를 치달았다.


요 몇년 금융시장의 가장 큰 이슈는 "그리스"다. 도대체 언제적 그리스 이슈인가. 지겹다 지겨워. 그냥 차라리 확 부도나 나버려라 싶을 때도 있다. 자세한 이야기는 여기저기 써놓은 사람이 많으니, 난 그냥 대충의 상황과 여기에 대한 느낌을 적어보련다.


그동안 트로이카(EU, ECB, IMF)와 그리스 간에 진행된 이야기를 간단히 가상 대화로 만들어봤다.


그리스: 은행아. 일주일 있다가 갚아야 되는 2조 말인데, 내가 돈이 없어 못갚겠다. 좀만 더 빌려줘라.

트로이카: 야 이게 도대체 몇번째야. 이게 한두번도 아니고. 돈도 없으면서 그렇게 흥청망청 쓰니까 못갚지. 돈 좀 아껴쓰겠다고 약속하면 빌려줄게. 안그러면 세달 있다가 또 빌려달라 그럴거 아냐.

그리스: 지난번에 지출을 줄이라 그래서 나도 나름대로 아껴 쓰고 있다고. 우리 식구들이 불평하는거 몰라? 근데 더 아끼라고?

트로이카: 으이구 그럼 더 아껴야지. 니가 버는 걸 봐라. 난 아무리 생각해도 니가 지금처럼 쓰면서 살면 돈을 갚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그리스: 얼씨구. 그동안 맛있는 것도 제대로 못먹어가며 니네들 빚 갚으려고 애썼는데 여기서 더 뺏아간다고? 이번에 안빌려주면 확 파산해버리고 그동안 빌린것 다 떼먹을테니까 알아서들 해!


협상장 분위기가 acrimonious했다고 하니 실제로 오간 워딩은 이것보다 훨씬 심했던 것 같다. 내 생각으로는 그리스가 참 뻔뻔하다 싶다. 자연스레 1997년 외환위기 당시의 한국 상황이 생각났다. 그때 상황을 가상의 대화로 만들어보면 대충 이렇게 되겠지.


한국: IMF님 우리가 지금 돈이 없어서 빵꾸가 나게 생겼거든요. 급전 좀 땡겨줘요.

IMF: 쯧쯧 한국아. 나 너네 결국 이럴 줄 알았다. 내가 대충 보니까 말이야. 니네한테 빌려줘봤자 니네 지금처럼 살면 못돌려받을 것 같은데 내가 왜 빌려주냐.

한국: 예예 제가 그동안 좀 막 산거 인정합니다. 혹시 고칠 점 있으면 지적해주세요. 그거 다 한다고 약속하면 빌려주실건가요?

IMF: 그래 그럼 내가 todo list 줄테니까 이거 다 한다고 약속해라. 그러면 내가 돈 빌려줄게.

한국: 어이구 감사합니다. 돈만 빌려주신다면 그정도는 얼마든지 하지요.


한국은 그렇게 IMF로부터 숙제를 받고 그 대가로 돈을 빌릴 수 있었다. 그때 받은 숙제의 수준은, 장하준 교수의 표현을 빌자면, "쉬는 시간이 너무 많으면 일을 적게 할 우려가 있으니 하루에 집에 있는 시간은 4시간을 넘기지 않도록 한다." 정도였으니 지나치게 가혹했던 것 같다. 정말 고통스런 시간이었고, 숙제의 부작용도 컸지만 그런 처방을 따르는 데에 국민적인 저항이 있었다고 보긴 어렵다. 결국 한국은 그걸 다 극복해냈다.


그런데 지금 그리스 하는 꼴을 보면 한숨이 나올 정도다. 누가 굳이 말을 안해저도 그리스는 고칠게 많다. 세정을 바로잡고 지출도 조정해야 한다. 물론 안내던 세금 내야되고 받을 돈 깎인다면 좋아할 사람 없지. 그래도 현실을 직시해야 할 것 아닌가. 계속 벼랑 끝 배짱을 부릴 때가 아닌 것 같은데 그러고 있다.


만약 이러다가 진짜 그리스가 부도가 나고 유로존에서 퇴출되면 누가 얼마나 피를 보는지 사실 너무 계산이 뻔하다. 그리스가 진 빚의 총 합이 2500억 유로 정도 된다. 주로 IMF와 독일, 프랑스가 돈을 떼일텐데 지금은 해지 등으로 exposure을 많이 줄여놓은 것으로 알고 있다. 대충 15% 정도로 들은 것 같다. 이렇게 되면 한국 돈으로 30조에서 40조 정도 되는 돈이다. 참고로 이명박 정부가 자원외교로 날린 돈이 대충 200조 좀 넘는다. 걔네들의 경제규모로 볼 때 충분히 저 돈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 게다가 그리스의 GDP는 EU의 1.2% 정도로 생각보다 그리스의 붕괴가 EU의 실물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제한적일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에 불어칠 후폭풍은 그냥 나라가 아주 끝장이 나는 수준이다. 자세히 설명할 필요도 없이 가장 피를 보는 건 그리스 국민들이다. 그것도 아주 처참하게.


내가 보기엔 그렇다. 그리스 총리는 지금 온 그리스 국민들의 삶을 판돈으로 올려놓고 도박을 하고 있다. 사실 그 사람의 정치적 동기나 그리스의 정치적 지형을 고려해보면 왜 이렇게 벼랑 끝 도박을 하는지 이해는 간다. 동시에 그리스가 왜 이모양이 되었는지도 알 것 같다. 자신의 입지 때문에 전 국민의 삶을 통째로 도박판에 밀어넣는 지도자가 있는 나라가 이성적으로 굴러가는 나라라 할 수 있을까? 고통스럽더라도 멀리 보고 손해를 감수할 줄 아는 지도자와 국민들과 당장 손해를 보느니 배째고 꼬장이나 피우겠다는 나라가 어찌 비슷하게라도 굴러가겠냐.


여기까지가 일주일 전에 썼던 글이다. 일주일 동안 아주 중요한 일이 있었다. IMF의 제안을 받을지 말지를 총리가 국민투표에 부쳐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는데 이건 뭐 "IMF의 제안을 받지 맙시다!" 수준이다. 아 씨바 할 말을 잃었다. 내가 그리스 정치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총리가 자기가 해야 될 결정을, 이미 반 쯤 해놓고, 방아쇠를 당기는 건 국민에게 미루고 있다. 국민에게 책임을 미루는 것 말고 아무런 의미가 없는 행동이다. 자기의 비전을 갖고 국민을 설득하고 이끌어가는 게 위기 상황에서 지도자가 해야 될 일이 아닌가. 참으로 어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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