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imple Life

예브게니 키신 형님 또 알현

지난 11월 15일 CSO에 또 갔다. 키신 형님이 이번 공연을 끝으로 2018년까지 시카고 안오신단다. 그러니 이번에 꼭 그 용안을 뵈어야 하지 않겠나.

형님의 연주 실력을 굳이 논할 필요가 있나 싶지만, 간단히 내 느낌을 적어보면 이렇다. 내가 쇼팽 연습곡 악보를 막 외워서 연주를 할 수 있을 때의 점수를 1점이라고 하자. 열심히 연습했다 싶은 단계를 2 잘하면 3 정도. 그러다가 피아노 선생님께 시범 한번 보여달라고 부탁하면, 같은 피아노가 우째 이래 다른 소리를 낼까 싶으면서 프로의 대단함을 느낀다. 이게 8 정도. 그러다가 유명한 연주자의 공연을 들어보면 9~10점 정도인 것 같다. 사실 피아노를 업으로 삼은 사람들은 나같은 놈은 꿈도 못꿀 경지에 이른 분들이다. 난 유명 연주자나 내 피아노 선생님들이나 별 차이가 없다고 본다. 다시 말하면, 내 선생님들이 연주회에서 보여주는 퍼포먼스는 그냥 흠 잡을 데 없다. 프로의 수준으로 가면 뭐 다 취향이다. 어지간해서 실력차이를, 나같은 아마추어가, 느끼기는 어렵다. 이게 내가 항상 생각하는 바다.

그런데 말이다. 키신 형님의 연주를 들어보면 내 지론을 스스로 부정할 수 밖에 없다. 그 다른 유명 연주자들의 환상적인 퍼포먼스 위에 내가 모르던 한 단계가 더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형님은 11점. 테슬라 모델 S에 만점이 넘어가는 점수를 줬던 컨수머 리포트 리뷰어의 심정이 이랬을까. 내가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것보다 한 단계 위라니.

이번 프로그램 중에서 내가 그래도 좀 익숙하다고 할만한 작곡가는 모차르트와 베토벤 밖에 없었다. 참 모차르트는 모차르트답게, 베토벤은 베토벤스럽게 연주하시더만. 베토벤은 자신의 곡이 이렇게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을거라 과연 상상했을까. 자신의 곡이 이렇게 완벽하게 연주되기란 아무 작곡가나 누리는 호사는 아닐 것이다.

형님의 마지막 터치 하나까지 온전히 연주를 즐길 수 있었다. 동시에 우뢰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끝까지 남아 박수를 쳤던 까닭은 앵콜곡 하나를 더 하사받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형님께서 얼마나 대단한 연주를 들려주신 것인지 조금이라도 더 알아달라는 뜻이었다. 몇년 후에나 시카고에 오실 형님, 다음에는 좀 더 좋은 자리에서 뵐 것을 약속드리면서 공연장을 떠났다.

어떤 티켓을 가진 사람들은 리셉션장 같은 데서 키신 형님을 또 뵐 수 있는 것 같더라. 아내와 내가 갖고 있는 싸구려 티켓으로는 당연히 거기 못들어가더라고. 솔직히 좀 아쉬웠다. 그래도 혼신의 힘을 피아노에 다 쏟으신 형님을 이 무지렁이가 더 피곤하게 만들 수야 있나. 나같은 놈 상대하는 시간에 좀 더 쉬시고 이 호사를 다른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배풀어주시길 바라면서 빠져나왔다. 아 형님 정말 최곱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