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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미국에 정착해서 사는데 필요한 quality

제목은 거창하게 달아놨는데, 내가 과연 제대로 알고 있는건지는 모르겠다. 서베이를 해본 것도 아니고, 어디서 통계를 본 것도 아니고. 그냥 내가 겪고 본 것이니 아주 심각하게 bias가 들어 있을거다. 그냥 '이런 식으로 적응하는 사람도 있다' 정도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


참 다양한 한국 사람들이 미국으로 오는 것 같더라. 근데 난 주변에 한국 사람이 별로 없고, 연락하고 지내는 한국사람도 수십명씩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내 얘기는 나와 비슷한 사람에게만 해당이 될 것 같다. 넓게 봐줘도 이런 사람들이다.


  • 미국에 유학 나와서 직장을 잡고,
  • 가족, 친지들은 대충 다 한국에 살며,
  • 유학과 그 이후의 과정에서 가족의 도움을 기대하지 않는 사람

결국 혈혈단신 미국으로 건너와서 공부하고 직장 다니고 사는 사람이란 얘긴데, 내가 한국에서부터 알던 사람들은 모두 여기 해당된다. 출발선이 다르면 아무래도 해야하는 것들도 다르니까 여기 속하지 않는 사람에게 뭐가 필요한지는 잘 모르겠다. 허나 딱 나같이 시작하는 사람들은, 내 의견이 편협하긴 하겠지만, 아래 열거할 quality 없이 어떻게 정착할지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1. 본인의 능력
가장 중요한 quality는 본인의 캐파다. 한국에서 능력 있다고 인정 받던 사람은 여기서도 인정 받는다. 언어나 환경이 달라서 시간이 좀 더 걸리긴 해도 말이다. 한국에서도 일을 잘하는게 못하는 것보다는 낫다. 헌데 여기서는 차이가significant하다. 이건 직장문화가 한국과 많이 다른데서 기인하는 것 같다. 그게 어떻게 다른지는 이 글의 주제를 벗어나니 다음에 따로 정리해봐야겠다.
 
1.1. 연봉
일단 경제적인 이유가 있다. 한국에서는 일 잘한다고 소문나봐야 야근이나 실컷 하지 돈은 얼마 더 안준다. 그런데 여기서는 정말 일을 한만큼 대우를 받는다. 같은 오피스에 앉아 있어도 연봉 차이가 많이 날 수 있다. 따라서 직장에서 capable하다고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에서 사는 것보다 더 쪼들린다는 생각이 들면, 미국 생활이 행복하기가 어렵다.
 
1.2. 네트워킹
새로운 도시에, 나라까지 바꿔서 왔으니 동네 친구가 하나도 없을 것이다. 학교에서 친하던 애들이 다 비슷한 동네에서 직장을 잡으면 좋겠지만, 미국이 워낙 넓어놔서 쉽지 않다. 자연스레 인간관계도 직장을 중심으로 맺어진다. 회사에서 짐짝취급을 받는 사람이 좋은 평판을 가지는 경우는 드물다. 나이 먹고 미국 와서 언어에 한계도 있고 하니깐, 일을 잘 하면 그래도 주변 사람들에게 녹아들어갈 기회가 많아진다.
 
한국의 직장에서는 일하는 시늉만 하고 다녀도 사는데 문제가 없다. 상사가 잘 모를 때도 많고, 알아도 큰 차이 없이 연봉을 받는다. 원래 있던 친구도 많고. 아니 더 안락하다. 일하는 척만 하면 되니까. 오히려 우직하게 일만 하는 사람을 비웃으며 스스로 스마트하다고 생각하는 병신도 봤다. 우리가 본인이 병신인거 모르는 줄 알더라. 뭐 한국 사회라는 데가 그래도 살아지는 면이 있긴 하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미국에 오면 내가 위에 기술한 것과 정확히 반대의 일이 일어난다. 이러면 미국 사람들 정 없다. 한국이 살기 좋다 소리가 저절로 나오겠지.
 
2. 멘탈
두번째로 중요한 것은 멘탈이다. 멘탈을 여러가지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나는 두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무심할 것, 스스로 동기부여를 하고 꾸준할 것.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이 두가지가 사회에 녹아드는 데 핵심이라고 본다.
 
2.1. 적당히 무심할 수 있는 배짱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무심해야 한다. 주변에서 잘났다고 부추겨줘야 신이 나는 유아적 멘탈은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다. 미국에서 한국인은 마이너리티다. 말도 못하는 놈이 어디서 사람 취급을 받겠나. 당연히 한국에서 살 때와 비교하면 한계를 느낄 일은 많고, 누가 좋다고 띄워주는 일은 적다. 처음 여기 왔을 때는 한국에서 당할 일 없었던 억울한 일을 여러번 당했다.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더라. 굉장히 힘든 일이긴 한데, 적당히 초탈해야 스트레스를 덜 받고 이게 삶의 질로 이어진다.
 
2.2. 스스로 동기부여를 하고 유지할 수 있는 능력
스스로 동기부여를 해야 한다. Extrinsic motivation이 아니라 intrinsic motivation을 찾아서 자기 길을 가는 사람이 여기서 잘 산다. 동시에 꾸준해야 한다. 파티에 가서 짐짝 취급도 당해보고 혼자서 맥주만 마시다 오는 경험도 해봐야 한다. 즐겁지는 않겠지만, 그러면서 새로운 동네에 익숙해지는거다. 간밤에 외운 영어가 입에서만 맴돌아 망신을 당해도, 돌아와서 또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나가서 시도해야 그나마 좀 빨리 는다. 과정 없이 결과가 어찌 나오겠나. 그렇게 조금씩이라도 늘어야 주변 사람들도 ‘아항 얘가 말은 못하지만 바보는 아니구나’ 이렇게 생각해준다.
 
한국에 있다 미국에 오면, 사람들이 날 떠받들어주는 일이 확 줄어든다. 한국에서는 길가다 연예인 본 이야기만 해도 사람들이 신기해하는데 말이다. 한국에서의 내 경험, 성취가 미국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경우가 부지기수다.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하찮아지는 기분… 정말 말 못할 일이긴 하다. 그래서 두부멘탈을 가진 사람들은 결국 자기를 떠받들어주고, 한국 드라마만 열심히 봐도 얘기가 잘 통하는 사람들을 찾아간다. 바로 한국 사람 커뮤니티다.
 
한국 사람들도 훌륭한 사람 많다. 하지만 앞서 기술한 이유로 한국사람들과 어울리기 시작하면 그냥 끝이다. 그렇게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비슷한 초딩멘탈을 가진 사람들 뿐이다. 한국에 있더라도 멀리 해야할 영양가 없는 사람들인데 미국에서 붙어 다니면 결과는 뻔하다. 내가 겪어온 바로는 그렇다.

여기에 더해서, 내가 영어를 조금만 더 잘했거나, 성격이 좀 아웃고잉했다면 더 잘 살 것 같다. 그런 친구 보니까 부럽더라. 언어의 중요성이야 두말할 필요가 없고, 외향적인 성격은 새로운 곳에 적응하기에 언제나 유리하다. 난 수줍음도 많고 혼자 놔두면 하루종일 책이나 보는 성격인지라 더 힘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동네는 대충 넘겨짚고 뭐 이런게 없더라고. 다들 자기표현 확실하게 하고, 나도 그렇게 살아야 정상이다. 한국에서 대충 30년 가까이 살며 몸에 벤 습관이 쉽게 바뀌지는 않더라.

 

폐쇄적인 한국과 다르게 미국이나 유럽은 개방적인 곳이다. 왜 유럽과 미국에서 그 많은 시장 경제 이론이 나왔는지 이해가 될 것 같다. 마치 시장에서 재화의 가치가 결정되듯, 사람의 가치도 놀랍도록 유연하게 매겨진다. 그래서 내가 앞서 기술한 것들을 본인이 갖고 있다면, 미국에서 더 잘 살 수 있다.

 

미국에서 박사하는 대학친구들 얘기를 들어봐도 비슷하다. 한국 대기업들이 미국의 박사과정 학생들을 리쿠르트하러 오는데, 조건을 들어보면 미국보다 나은게 하나도 없단다. 하긴 내가 받아본 한국 회사 오퍼도 오지게 후졌다. 그래서 거절을 하면 그 회사에 있는 학교 선후배들을 통해서 ‘그래도’ 들어오라고 작업이 들어온다. 전화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참 할 짓 아니다 이거. 이 얘기를 해준 친구들은 다 미국에 남아서 아주 잘 살고 있다. 미국에서 잘 살다가 한국으로 가는 사람들도 몇명 봤는데, 그게 예외적인 경우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해당이 안될 것 같다.

 

상투적인 얘기 하자면, 나도 처음에는 힘들었다. 특히 그 외로움은... 외로울 줄 알았지만, 겪어보니 전혀 다른 수준의 문제더라. 친구 하나 없는 도시에 온데다 주변에 한국인도 몇명 없었다. 마음 맞는 사람은 없었고. 대학 친구가 옆 도시도 아니고, 옆 주로 이사를 온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직장을 잡고부터는 조금씩 괜찮아졌던 것 같다. 꼭 직장이 문제가 아니라 그 즈음부터 영어도 좀 잘하게 됐고 이 동네에 좀 익숙해졌다. 지금은 내 일이라면 깎아내리기 여념이 없는 마누라조차 미국에 잘 왔다고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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