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imple Life

강의료는 왜 떼먹으려 했을까?

오래전 한국에 있을 때 사내 트레이닝에 강사로 뛰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회사 내 다른 분들 얼굴을 익힐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지만, 합리적인 강의료를 준다는 것에도 솔깃했다. 팀원들도 '최소한 10만원은 나오지 않겠어?'라며 그 돈으로 삽겹살이라도 구워먹자는 합의를 했고 난 열심히 강의 준비를 했다.

몇시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2~3시간이었던 것 같다. 물론 준비 시간은 그것보다 훨씬 길었다. 강의는 유익했다는 평을 들었고, 뒷풀이도 재밌었다. 그런데 나를 섭외했던 사람으로부터 황당한 메일을 하나 받았다.

내가 했던 강의가 정부의 직업교육으로 등록이 되어서 노동부에서 약간의 강의료가 지급이 되었단다. 그냥 사내 트레이닝이 노동부 차원의 직업교육이 되어서 정부의 지원을 받는게 합법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게 해서 지원받는 강사료는 시간당 만원이 안되는 수준으로 기억한다. 이런 설명이 있고나서 황당한 내용이 이어졌다.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이니 그냥 사내 자원봉사 동아리에 기부를 하는 것이 어떠냐며 찬성하는 사람은 답변을 달라고 했다.

너무나 기가 찼다. 애초에 합리적인 강사료라는 것이 기껏 정부에서 지원받는 것을 그대로 줄 생각이었으며 이제와서 그 돈도 주지 않을 생각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 메일엔 이번 트레이닝에 강사로 뛰었던 모든 사람들의 주소가 나와 있었고, 대부분 내가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 모두 황당해 했고 삼겹살파티를 기대하던 팀원들도 실망했다. 그리고 난 답변을 주자 않았다.

다음날 더 황당한 일이 생겼다. 어제 그 사람이 전체 직원들에게 '이 강사분들이 강사료를 자원봉사 동아리에 기부해주셨습니다.'라는 요지의 메일을 발송한 것이다. 정말 난 미친놈도 가지가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사내 트레이닝에 강사는 두번다시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다.

강사로 뛰었다는 사실은, 최소한 그 사람이 아예 회사에서 병신취급 받는 사람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나마 일 좀 하던 강사들의 원성이 너무나 자자해서 다음해부터는 제대로 된 강사료를 지급해주겠다는 식으로 일이 마무리되었다. 난 다음 해에 또 강의를 했고 약간의 강사료를 받아서 팀원들과 식사를 했다. 하지만 이 일은 내게 강사료 떼먹는 병신이 실제로 있다는, 그리고 별로 잘못했다고도 생각을 안한다는 사실을 알게 해줬다.

http://media.daum.net/culture/fashion/newsview?newsid=20120727234208941&RIGHT_LIFE=R12
그리고 이 기사를 보니 그런 병신이 제법 있는 모양이다. 한국엔 강의를 우습게 보는 경향이 좀 있는 것 같다. 그냥 설렁설렁 가서 노가리만 대충 까다가 오는 강사도 분명히 있고, 강사가 준비 없이 와서 대충 노가리만 까다 갈텐데 뭐 돈을 줘야 하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내 생각엔 이게 결국 노는 물의 문제인 것 같다. 자기 주변 사람들이 다 병신이니 사람을 섭외해놓고도 딱 자기 수준의 대접을 하는 것이지. 병신들 노는데는 끼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심어준 소중한 에피소드다.

반응형

'Simple 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외줄타는 현대인2  (0) 2012.09.18
외줄타는 현대인  (0) 2012.08.20
산으로 가는 배의 병신 리더  (0) 2012.07.29
씨발 CFA 떨어졌다  (0) 2012.07.26
honest + straightforward = rude  (0) 2012.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