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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외줄타는 현대인

얼마 후면 새로 구한 아파트로 이사를 간다. 그리고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내 유학시절을 함께 해줬던 싸구려 가구들은 들고 가지 않기로 했다.

알아보니 버리는 데도 돈이 든다 그래서 염가로 판다고 포스팅을 올려놨다. 워낙 싸게 판다고 해놔서 그런지 연락이 많이 오더라.

이사를 자주 다녀본 사람이라면 공감하겠지만, 가장 골치가 아픈 녀석은 침대다. 내 침대는 3년 전 어떤 사람으로부터 거의 거저 얻은 것인데, 박스에 매트리스만 얹어져 있다. 당연히 상태는 안좋다. 비록 잠자는데 지장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누가 돈을 주고 사갈 것 같진 않은 녀석이다. 솔직히 침대 상태를 공개하고 가져갈 사람 있으면 공짜로 가져가라 그랬다.

그런데 침대를 가져가겠단 사람이 있어서 전화를 해봤다.  그런데 그사람 자기 자신을 홈리스로 소개했다.  직장에서 잘려서 집에서도 쫓겨났는데 그냥 잠을 자기 밴에서 잔단다.

미국 상황이 익숙치 않은 사람에게 좀 배경을 소개해주자면, 대부분의 미국 학생들은 학자금 융자로 학교를 다닌다. 그리고 직장을 잡으면 그 빚을 갚기 시작하고, 다 갚으면 다시 집을 사기 위해서 융자를 얻는다. 이렇다보니 모아놓은 자산이 거의 없는 상태로 집을 사게 된다. 있던 자산도 down payment로 집에 다 들어간다. 이런 상태에서 직장에서 잘리면 당장 모기지를 낼 수가 없게 되고 그러다 은행에 집이 넘어가고 쫓겨나게 된다.  집을 산게 아니라도 매달 랜트를 내야 되는 상황인데 직장에서 잘리면 랜트를 낼 방법이 없어서 결국 쫓겨난다.

그리고 이 일이 바로 그 사람에게 생겼던 것이다.

내가 이번 토요일날 픽업을 오겠냐고 물었더니 당연히 그러겠다고 했다.  그래서 난 "Okay, I'll keep it for you."라고 했는데 갑자기 그러지 말라는 거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딴 사람에게 팔 수 있으면 팔아라. 니가 못팔아서 버리게 되면 그때 내게 연락을 달라." 이러더라.

그런데 이런 거래라는 것이 보통 먼저 연락해서 컨펌을 받으면 그 사람이 가져가는게 당연한거다. 그런데 먼저 연락을 했음에도 '보통의 사람들'에게 팔 수 있으면 팔고 자기를 가장 나중 옵션으로 남겨놓으라고 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

직장을 잃고 홈리스로 전락한 것이 그 사람의 자존감에 적지 않은 상처를 줬을 것이다. 그래서 보통의 사람들보다 자기 자신을 한 단계 아래의 사람으로 여기고 그래서 자신이 갖고 있는 높은 priority를 행사할 자격이 없다고 여긴게 아닌가 싶다. 아마 내 생각이 맞을 것 같다.

그 사람은 자기 자신을 보통 사람과 다르다고(열등하다고) 느끼는 모양이지만, 사실 나도 그 사람과 별 차이 없다는 걸 잘 안다. 지금 이 시기에, 나도 직장 잘리면 곧 월세를 내지 못하는 상황을 만날테고 집에서 쫓겨나겠지. 한국 사람이야 그냥 한국 돌아가기도 하겠지만, 미국인이라면 어떻게 될까? 빈대붙을 친척이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서, 직장 잃으면 곧장 극민자로 직행하는게 대부분의 현대인일 것이다.

깨끗한 얼굴, 아이폰을 귀에 꽂고 다운타운의 멋진 건물로 출근을 하는 사람이라도 직장에 잘리는 순간 홈리스와 별 차이없는 극빈자로 떨어지는게 한순간이다. 그리고 회사가 사람을 정리하는 건 그 사람이 일을 못해서 정리하는 것보다 경기가 나빠지거나, 회사 실적이 안좋아져서 어쩔 수 없이 비용절감 차원에서 해고를 하게 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보면 거시경제적인 차원에서 한 사람이 직장에서 잘리고 극빈자로 떨어지는 데에 대해서 정작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이 얼마나 불안한 인생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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