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이가 계모에게 맞아서 숨졌다는 뉴스를 봤다. 어쩌다가 그날만 심하게 때려서 애가 죽은 것도 아니더라. 몇년 동안이나 때려오다가 결국 그렇게 됐다고 한다.
계모는 훈육하느라 때렸다고 하는데, 도대체 그 아이가 무슨 대단한 죄를 저질렀다고 죽을 때까지 맞아야 했을까? 어디 가서 사람이라도 죽이고 왔단 말인가?
기사를 읽는 순간 가슴이 먹먹했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 불쌍한 아이는 지옥에서 산 것일게다. 그 힘 없는 아이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을동안 친부마저도 외면했단다. 아마도 새장가를 든 아내 눈치를 보느라 그랬을 것이다.
어린 시절에 비슷한 일을 당했던 사람으로부터 과연 그게 아이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들어본 적이 있다.
제대로 된 이유도 없이 부모가 몽둥이를 휘두르며 달려오는데 피할 곳은 없다. 죽어버리는 것이 낫다고 폭언을 퍼붓고 실제 폭력도 목숨의 위협을 느끼는 수준이다. 아무도 편들어주는 사람도 없고 대신 손가락질하고 조롱하는 사람만 있다. 그 폭력과 조롱을 피할 곳도 없고 감싸주는 사람도 없다. 게다가 이것이 어쩌다 한번도 아니고 일상적인 일이라면 과연 그 아이는 어떻게 느낄까?
이건 그냥 그 자그마한 존재가 설 자리가 모두 없어지는 것이다. 존재의 가치, 이유 모두 부정당하는 것에 다름이 아니라 했다.
한번은 개처럼 쳐맞다가 탈출해서 몇시간이고 거리를 걸었던 이야기를 해줬다. 괜히 친구집에 갔다가는 다시 끌려가서 맞을 것 같아서 친구 집에 가지도 못했단다. 그냥 몇시간을 걷다가 어느 고가 도로 위로 올라갔단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그냥 여기서 끝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단다. 어차피 신경 쓰는 사람도 없다. 집에 가면 또 그 모멸감과 폭력을 견디며 하루하루 버텨야 하는데 그럴 이유를 모르겠어서 그냥 끝내버리고 싶었단다.
거기서 끝내지 않고 집으로 돌아간 이유는 뭐였을까? 자기가 그런 꼴을 당하는 이유를 생각해봤는데, 딱 답이 나오더란다.
“힘이 없어서.”
작고 힘이 없어서 그 꼴을 당한다고 생각하니 덩치가 크면 안그런 날이 오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 사람도 참 독한게, 그렇게 크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그래도 그때까지 견뎌내면 광명 찾을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기더란다. 그래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고 집으로 돌아가 식구들의 비아냥과 폭력을 다시 마주하던 순간 받은 스트레스가 인생에서 최악의 경험이었단다.
물론 뒤로도 바뀐 것은 없었고 그냥 그 희망 하나로 꾸역꾸역 버텼단다. 그러다가 진짜 나이를 먹어가고 힘도 세지면서 점차 숨쉴 구멍도 생기더란다. 결국 그 시절을 다 견뎌내고 나왔다. 정말 제대로 떨어져 나와서 남남처럼, 그러나 행복하게, 살고 있다. 독하다. 나름 해피앤딩인 것 같은데 여전히 어린 시절은 악몽이란다. 얘기를 다 들어보니 그 사람이 특별하게 독했으니 망정이지 조금만 여렸어도 사고를 치지 않았을까 싶더라.
애가 강하면 버텨내느니 어쩌니 하면서 지랄하는 놈들은 기본 전제를 빼먹고 있다. 어린 아이는 훈육 이전에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다. 가정은 어린 아이에게 의지할 보금자리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가정으로부터의 학대는 보금자리를 생지옥으로 만든다. 피할 곳 없는 생지옥 말이다.
이건 취업 못한 대학생이나 직장에서 잘린 실업자가 받는 스트레스보다 훨씬 클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은 술한잔 하면서 넋두리라도 할 친구가 있지 않은가. 어린 아이에게는 가족이 전부인데 거기서 저런 학대를 받으면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그 불쌍한 아이. 얼마나 괴로웠을까. 얼마나 절망했을까. 부디 명복을 빈다.
계모는 훈육하느라 때렸다고 하는데, 도대체 그 아이가 무슨 대단한 죄를 저질렀다고 죽을 때까지 맞아야 했을까? 어디 가서 사람이라도 죽이고 왔단 말인가?
기사를 읽는 순간 가슴이 먹먹했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 불쌍한 아이는 지옥에서 산 것일게다. 그 힘 없는 아이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을동안 친부마저도 외면했단다. 아마도 새장가를 든 아내 눈치를 보느라 그랬을 것이다.
어린 시절에 비슷한 일을 당했던 사람으로부터 과연 그게 아이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들어본 적이 있다.
제대로 된 이유도 없이 부모가 몽둥이를 휘두르며 달려오는데 피할 곳은 없다. 죽어버리는 것이 낫다고 폭언을 퍼붓고 실제 폭력도 목숨의 위협을 느끼는 수준이다. 아무도 편들어주는 사람도 없고 대신 손가락질하고 조롱하는 사람만 있다. 그 폭력과 조롱을 피할 곳도 없고 감싸주는 사람도 없다. 게다가 이것이 어쩌다 한번도 아니고 일상적인 일이라면 과연 그 아이는 어떻게 느낄까?
이건 그냥 그 자그마한 존재가 설 자리가 모두 없어지는 것이다. 존재의 가치, 이유 모두 부정당하는 것에 다름이 아니라 했다.
한번은 개처럼 쳐맞다가 탈출해서 몇시간이고 거리를 걸었던 이야기를 해줬다. 괜히 친구집에 갔다가는 다시 끌려가서 맞을 것 같아서 친구 집에 가지도 못했단다. 그냥 몇시간을 걷다가 어느 고가 도로 위로 올라갔단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그냥 여기서 끝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단다. 어차피 신경 쓰는 사람도 없다. 집에 가면 또 그 모멸감과 폭력을 견디며 하루하루 버텨야 하는데 그럴 이유를 모르겠어서 그냥 끝내버리고 싶었단다.
거기서 끝내지 않고 집으로 돌아간 이유는 뭐였을까? 자기가 그런 꼴을 당하는 이유를 생각해봤는데, 딱 답이 나오더란다.
“힘이 없어서.”
작고 힘이 없어서 그 꼴을 당한다고 생각하니 덩치가 크면 안그런 날이 오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 사람도 참 독한게, 그렇게 크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그래도 그때까지 견뎌내면 광명 찾을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기더란다. 그래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고 집으로 돌아가 식구들의 비아냥과 폭력을 다시 마주하던 순간 받은 스트레스가 인생에서 최악의 경험이었단다.
물론 뒤로도 바뀐 것은 없었고 그냥 그 희망 하나로 꾸역꾸역 버텼단다. 그러다가 진짜 나이를 먹어가고 힘도 세지면서 점차 숨쉴 구멍도 생기더란다. 결국 그 시절을 다 견뎌내고 나왔다. 정말 제대로 떨어져 나와서 남남처럼, 그러나 행복하게, 살고 있다. 독하다. 나름 해피앤딩인 것 같은데 여전히 어린 시절은 악몽이란다. 얘기를 다 들어보니 그 사람이 특별하게 독했으니 망정이지 조금만 여렸어도 사고를 치지 않았을까 싶더라.
애가 강하면 버텨내느니 어쩌니 하면서 지랄하는 놈들은 기본 전제를 빼먹고 있다. 어린 아이는 훈육 이전에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다. 가정은 어린 아이에게 의지할 보금자리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가정으로부터의 학대는 보금자리를 생지옥으로 만든다. 피할 곳 없는 생지옥 말이다.
이건 취업 못한 대학생이나 직장에서 잘린 실업자가 받는 스트레스보다 훨씬 클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은 술한잔 하면서 넋두리라도 할 친구가 있지 않은가. 어린 아이에게는 가족이 전부인데 거기서 저런 학대를 받으면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그 불쌍한 아이. 얼마나 괴로웠을까. 얼마나 절망했을까. 부디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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