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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Trader Joe’s

내가 가장 많이 이용하는 식료품점이 바로 여기다. 트레이더조. 여기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싸고, 품질은 준수하고, 친근하면서도 친절하고, 북적거리면서 명랑하다. 여기다 애기들 데려가기도 좋다. 카트에 안전띠 고장난거 한번 본 적 없고, 애기들한테 스티커도 준다. 이렇게 온갖 좋은 것만 떠올려진다. 어느날 Freakonomics Radio에서 이 식료품점이 다뤄졌을 때 정말 반갑더라. 반가울 뿐만 아니라 재미도 있어서, 그 내용에다가 내 생각을 좀 보태봤다.

내가 이 마트에 온갖 즐겁고 밝은 이미지를 떠올리긴 하지만, 사실 식료품점 업계는 따분하다. 그냥 농산품을 유통할 뿐이다. 유통망으로 장사를 하는거다보니 뭔 혁신적인 R&D하고 거리가 좀 있다. 자연스레 이 업계는 경쟁이 치열하고, 그러다보니 마진은 박하고, 직원들 급여도 짜고. 뭐 이래 답답한 이미지만 떠오르는 산업이다. 무엇보다 돈을 많이 못버니까 재미 없는 업계다. 이건 미국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회사, 트레이더조는 좀 다르다. 일단 돈을 많이 번다. 어디 상장된 기업이 아니라 지네들이 발표한 것은 아니지만, 이 회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 따르면, 돈을 잘 번다. 특히나, 단위 매장면적당 매출은 압도적인 1위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물건을 바가지 씌워 파는건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여기는 싸다. 직원들 급여를 후려치는 것도 아니다. 매장 매니저는 미국에서도 고연봉인 10만불 넘게 받는단다. 사람을 다 기계로 대체해서 인건비를 줄인 것도 아니다. 직원들이 이렇게 북적대는 식료품점은 또 없다. 뭔 마케팅 이벤트로 사람을 끌어모으는 것도 아니다. 세일 이벤트나 멤버쉽, 쿠폰 같은게 아예 없다. 이 식료품이 뭐 압도적으로 커서 물건을 떼올 때 buying power가 있을 것 같지도 않다.

비밀은 운영에 있었다. 무엇보다 물건의 가짓수가 적다. 여기서 취할 수 있는 장점이 여러가지인데, 매장을 작게 유지할 수 있다. 물건을 늘어놓을 공간 뿐 아니라, 고객들도 매장에 체류하는 시간이 짧아지기 때문이다. 재고 관리에도 잇점이 있다. 거기에 더 재고를 상당히 타이트하게 갖고 있어서 재고에 묶인 현금이 작다. 게다가 물건 가짓수가 적으니까 물건당 volume이 커진다. 여기서 물건을 다른 큰 식료품점만큼 싸게 떼올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나도 이 이야기를 듣고서야, 이게 트레이더조를 이용하는 중요한 이유라는 걸 깨달았다. 링귀니 파스타를 사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 다른 마트 같으면 수많은 제품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한다. 그런데 트레이더조에서는 하나 아니면 두종류 밖에 없다. 사실 맛이야 다 거기서 거기 아닌가. 쓸데 없는 고민 안해도 돼서 좋다. 세일 이벤트 이런거 없으니까 그냥 가서 맘 편하게 사면 된다. 게다가 여길 가면 쇼핑하는 시간이 줄어들어서 좋다. 나도 이런 이유로 거길 가고 있었던거다. 내가 인식을 못하고 있었을 뿐이지.

덧붙여, consumer behavioral research 관점에서도 내가 특이한 인간이 아니더라. 상품 종류가 많은 것은 집객에는 도움이 되지만, 실제 구매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단다. 종류가 적으면 반대로 집객에는 도움이 안되지만, 실제 구매는 훨씬 많이 일어나더란다. 이건 정말 맞는 말이다. 나도 종류 많으면 고르기 귀찮다. 거기서 더 시간을 써서 포장지를 뚫어지게 쳐다본다고 모르던 정보를 알게 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게다가 사람을 줄여가는 다른 식료품점과는 다르게 종업원으로부터 도움을 얻기도 편하다. 그냥 직원들이 항상 돌아다니고 있다. 물건 정리를 가게를 열기 전에 하는 다른 곳들과는 다르게 그냥 고객들이 왔다갔다 하는 시간에 같이 섞여서 돌아다니면서 한다. 당연히 나같은 무지렁이가 뭐 물어보기 편하다. 괜히 일하는 사람 귀찮게 하는건가 했는데, 다들 친절하게 알려준다. 이는 우수한 고객 경험으로 이어진다. 애초에 직원 뽑을 때부터 사람 좋아하고 친화적인 사람들을 채용한단다.

이리하여 트레이더조는 내 메인 식료품점이 되었다. 내가 이 매장에 대해서 좋게 느낀 것들이 다 의도한바였고, 그 덕분에 나 같은 사람들이 많이 가는 식료품점이 됐다는 사실이 참 놀랍다.

이 밖에도 흥미로운 내용이 많았다. 이 식료품점의 주요 타겟은 고학력, 저임금의 여피들이었는데, 실제 고객들을 분석해보니 식료품점들 중 가장 고소득자들이 많이 드나들고 있었다거나. 매장은 부자동네에서 살짝 벗어난 곳에 열고, 트레이더조 매장 근처의 부동산 가격은 다른 곳보다 빠르게 상승한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트레이더조가 부동산 보는 눈이 있거나 트레이더조가 부동산 가격 상승을 일으킨다는 얘긴데 어느쪽인지는 뻔한거 아닌가. 나도 이사갈 집 찾을 때 제일 먼저 확인하는게 트레이더조 위치인데 나같은 놈들 많겠지.

사실 트레이더조가 언제까지 승승장구할지는 알 수 없다. 내가 여길 이용하는 주요한 이유가 바로 시간인데, 홀푸드는 공짜로 배달까지 해주니까 시간이 돈보다 귀한 사람들은 홀푸드를 이용하겠지. 그보다 따분해보이는 식료품 업계에도 이런 식으로의 혁신이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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