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신문 기사를 통해서 본 그녀는 그렇다. 시카고에서 멀지 않은 위스콘신 출신이고, 거기서 아주 뛰어난 학생이었다. 스탠퍼드에 진학했고 거기서도 역시 뛰어난 학생이었다. 졸업 후에 사람도 몇명 없는 스타트업인 구글에 합류했다. 아무리 유망한 회사라고는 해도, 오라는데 많았을텐데, 미래가 불투명한 스타트업이라니, 대담한 무브라고 말할 수 있다. 그 뒤로 구글이 어찌 되었는지는 다 알테고, 그녀도 그 안에서 승승장구했다.
공대에는 여학생이 드물다. 아무리 많이 쳐줘야 10% 정도인데 미국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자연스레 실리콘벨리도 남초지역이다. 이런데서, 엔지니어로써, 승승장구하는 아름다운 외모의 여성이라면 미디어의 조명을 받지 않을 수 없겠다. 아마 실리콘벨리의 테크 업계에서는 수퍼스타 대접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녀에게 시련이 닥친다. 승진에서 물을 먹은 것이다. 아마 평생 처음 겪어보는 좌절이었겠지. 허나 이 능력자가 의기소침하게 기죽어 있을 수가 있나. 또다시 대담한 무브를 보여주는데, Yahoo!의 CEO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야후병을 고치겠다며 야심차게 팔을 걷어부친 그녀는 53개의 인수합병을 비롯해 역시나 대담한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야후는 단순히 그녀에 대한 기대감으로 주가가 상당히 많이 뛰었던 걸로 기억한다.
무슨 영웅의 서사를 보는 듯 하다. 영웅까지는 아니더라도 드래프트 1순위 유망주가 리그 최고의 선수를 향해서 성장해가는 것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녀는 뭐든 다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포스를 내뿜었다. 극적으로 야후를 부활시키고 화려하게 권토중래를 하는 이야기만 남은 것이다. 나는 딸이 생기면 Marissa라고 이름을 지을까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런데 아뿔싸! 그녀가 야후의 관뚜껑에 마지막 못이었을줄 누가 알았을까.
앞서 언급한 인수합병을 비롯해 자신있게 추진한 프로젝트들이 남겨준 건 엄청난 손실 뿐이었다. 야후는 리더의 독단으로 조직이 무너지는 대표적인 사례로 오래오래 회자될 것 같다. 결국 이 오랜 인터넷 기업은 백기를 들었고, AOL에 인수됐다. 그러면서 또 하나의 유명한 golden parachute 사례를 만들었다. 회사가 망가졌지만, 그녀와 아무 상관 없이, 예전에 사둔 알리바바의 지분 덕에 회사 주가는 부풀어 있었다. 이유야 어쨌든 주가는 부풀어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23 million이나 되는 퇴직금을 받고 CEO에서 물러났다. 야후에서 받아간 총 금액이 $260 million에 가까운데 사업은 완전히 망했으니 이거 뭐... 그러면서 앞으로 또 다른 회사의 CEO를 맡아보고 싶다고 얘기를 했는데, 사람들의 반응은 육두문자에 가까웠다.
예전의 영광은 잃었다고 해도 굳건하게 굴러가던 회사를 이렇게 신속하게 망하게 만들기도 쉽지 않기 때문에, 이 야심만만한 CEO가 어떻게 회사를 망쳤는지 분석해놓은 기사는 많다. 대충 뭐 스티브 잡스 흉내 내다가 다 말아먹었다고 생각하면 크게 놓치는 것 없다. 난 여기서 몇가지 생각이 더 들더라.
시계를 그녀가 야후로 옮기기 전으로 돌려보자. 그녀는 구글 부사장 승진에서 탈락했다. 이 때 남초지역인 실리콘벨리의 문화를 거론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난 어느 정도 일리 있는 지적이라고 생각했다. 남자와 여자는 모이면 노는 것부터 아예 다르니까 여성 보스에 대한 편견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만약 구글이 이런 이유로 그녀를 물먹였다면, 야후로 가서 정말 멋지게 재기하겠구나 뭐 구경이나 해보자 그랬지. 그런데 야후에서 있었던 일을 보니, 뭐 그냥 그녀의 그릇이 그정도까지였던거다. 구글이 사람 제대로 보고 있었던거지. 이래서 내가 구글 주식을 팔지 않는다.
구글 시절 그녀의 평판은 ‘같이 일하기는 힘든 보스지만 성과는 낸다.’로 요약되더라. 난 기껏 몇가지 일화로 짐작만 할 뿐이지만 대충 머릿속에 그림이 떠오른다. 좀 쓸데없이 고집 세고 폭주하는 성향이 있는게 아닌가 싶다. 윗선에서 그녀의 폭주 혹은 쓸데없는 어거지를 통제하고 있는데다, 가끔 헛발질을 해도 팀원들이 우수하니 그게 회복이 된다. 게다가 본인도 한번 제대로 꽂인 일은 완벽하게 해낸다. 이런 조건 하에서 그녀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마도 저 얘기는 그녀가 구글에서 승승장구하던 시절에 나온 말이라는 것도 좀 감안해야 할것이다.
CEO가 되자 아무도 그녀의 폭주를 제어할 수 없었다. 조직을 헛발질로 밀어붙인다. 그러니 사람들이 견딜 수 없어서 나가버리고, 안나가고 버텨봐야 헛짓거리 열심히 한 것 밖에 안되는거다. 결국 그 사람의 성향 문제다. 적절히 통제를 받아야 하는 경주마인데, 자유롭게 뛰도록 놔두니까 관중석으로 뛰어든거지.
이 파란만장한 전 테크 CEO의 근황을 확인해봤다. 아무도 CEO로 불러주지 않았는지, 예전 동료와 회사를 차렸더라고. 선수로 직접 뛰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는데 부디, 스티브 잡스처럼, 황야에서 성숙해졌으면 좋겠다. 범상치 않은 인재임에는 틀림이 없는데, 이대로 사라지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은가. 역시 전 야후 CEO였던 Carol Bartz의 인터뷰를 본 김에, Marissa Mayer 생각이 나서 끄적거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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