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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나도 미국에서 산지 10년이 넘었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보낸 부산을 제외하면 가장 오래 산 동네가 서울도 아니고 미국 시카고다. 가끔 한국에서 살 때를 회상해보면 뭐 이것저것 떠오른다. 지금은 인간관계에서 지켜야 할 선에 대해서 좀 써보고 싶다. 미국 사회는 이 선이란 게 좀 명확하게 그어져 있는 반면, 한국에선 좀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내 생각에는 두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번째는 비슷한 사람들끼리 비슷한 경험을 하고 살았다는 사실이다. 단일민족으로 이뤄진 나라이기도 하고 그 안에서도 시골 가면 집성촌 같은 것도 많았다. 그런 작은 동네에서 대대로 살아가는게 당연하던 시절이 불과 몇십년 전이다. 게다가 가난과 전쟁, 고도성장과 거기에 따른 삶의 변화까지 전 국민이 비슷하게 경험하고, 보고 들었다. 내가 아는 건 너도 당연히 알아야 하고, 내가 이렇게 느끼면 너도 당연히 그러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뭔가 좀 문제가 있는거다. 그러니 지적하고 고쳐줘야 한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많다. 두번째 이유는, 아마 이게 더 큰 이유이지 싶은데, 이러한 삶의 변화가 너무나 가팔랐던 탓이다. 워낙에 압축 성장을 해서 그런지 가치관도 휙휙 변하고 사람들 사는 모양도 급하게 바뀌다보니깐 예전엔 되던게 지금은 안된다. 나 스스로도 대학 시절에는 후배들에게 술 강권한 적이 있다. 그 때는 선배가 테이블에 자리 잡고 술자리를 주도해야 해야하는 시절이었다. 나도 그러기 싫었지만 주변에서도 그걸 기대했다. 지금에야 뭐 어림도 없는 일이겠지만. 내가 그럼으로써 강단 있는 선배로 봐준 사람도 있겠지만, 불편하게 느낀 후배들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미국이란 동네는 다른 점이 많다. 먼저 여러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복닥거리다보니 뭘 어떻게 해야 소모적인 분쟁을 피할지 고민을 일찍 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미국적인 가치와 생활 양식이 200년 동안 서서히 확립되어 왔다. 그게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만 한국에 비하면 뭐 느린게 사실이니까. 사회 자체가 안정되어 있다보니 가치관이 빨리 변하지 않는다. 게다가 100년 전에도 미국은 선진국이었고, 지금도 선진국이다. 동네사람들 모두 누구네 집에 밥숱가락이 몇개인지 알던, 그 정도로 서로에게 의지해야 생존할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최소한 살아 있는 사람들 중에는 거의 없다고 봐야된다.

그럼 바로 이 ‘선’이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오지랖이다. 쉽게 말해 오지랖 금지다. 나의 due diligence만 하면, 남이 뭐라 그러지 않는다. 상대가 내 입맛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해도, 구체적으로 피해를 보지 않는 이상, 기분이 좀 얹짢네 하는 빌미로, 뭐라 그럴 수 없는거다. 여기서 나서면 또라이 되는거다. 미국에 와서 이 구역의 미친놈이 되보고 싶으신가? 그럼 오지랖을 떨어라.

이 선 덕분에 사람들은 오롯이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다. 본인이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느냐가 체크리스트의 맨 위에 올라간다. 그렇게만 한다면 다른 사람들과 문제는 없을 것이다. 간혹 문제가 생길 수는 있지만, 이건 내가 실수를 했다거나 상대가 또라이거나 둘 중에 하나다. 내가 잘못한 게 있으면 인정하고 개선해나간다면 그만이다. 상대가 또라이라면 뭐…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우니까 피하지. 아무튼, 내 할 도리만 하고 살면, 상대도 역시 그러하기 때문에, 인간관계에서 불거지는 변수가 없다는게 핵심이다.

이 선이 흐린 한국에서는 내 일 잘 하는게 충분조건이 아니다. 상대의 반응도 같이 확인해야 한다. 내 생각에는 일을 완벽하게 했더라도 상대가 불쾌해하는 것 같으면 내가 실수한 것으로 짐작하고 다음부터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행동을 고쳐나가야 한다. 여기까지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미국도 사람 사는 곳이라 상대의 반응을 확인하는 건 여기서도 한다.

여기서 한발 더 나가면, 사회적 통념으로 그어진 선 따위는 모르겠고, 오로지 상대의 반응으로만 허용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판단한다. 여기까지는 뭐 봐줄만 하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발 더 나가면 문제적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내가 화를 내면 니가 잘못한거다라고 우긴다. 한국에 살 때 이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참 많이 받았다. 갑질을 비롯해서 인간 관계에서의 많은 불합리한 문제가 이것 때문에 생기는 것 같다.
“니가 잘못한게 없는 건 잘 안다. 그런데 저 사람이 저렇게 화를 내니 미안하다고 해주고 좀 맞춰줘라.”
이런 소리를 한두번 들은게 아니다. 내가 써놓고 봐도 병신같다.

게다가, 한국 사람들은 상대에게 우위에 서려는 욕구가 유난히 강한 것 같다. 상대에 대해 우위를 점하려면 좋은 방법이 있다. 본인이 잘나면 된다. 그런데 이게 안되니 상대를 깎아내리려 드는데, 딱히 핑계가 안보인다. 그럼 화를 냄으로써 상대를 뭔가 잘못한 사람으로 만들려 든다. 다시말해 화를 내면 상대방은 내게 뭔가 잘못한 사람이 되고, 나를 떠받들어 주거나, 내가 원하는 걸 들어줘야 한다. 그러면서 본인의 자존감을 채우려 든다. 매번 그런 사람들하고 엮일 때마다 참 피곤했다.

다음 선은 tengible한 것이다. 남의 물건이나 몸에 손을 대서는 안된다. 난 아직도 내 볼펜을, 술집 볼펜인줄 알고, 가져가서 잃어버린 친구가 얼마나 미안해했는지 잘 기억하고 있다. 연필 하나 가져가도 꼭 말을 하고 갖고 가야한다. 내 아이에게 손을 댄다던지, 내 옷을 좀 입어보고 싶다던지 하면 반드시 먼저 허락을 구한다. 심지어 남의 아이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조차 허락을 받는게 예의다. 약간 실용적인 이유도 있는 것이, 그 아이에게 엘러지가 있어서 뭐가 잘못되면 다 뒤집어쓴다. 이건 뭐 더 설명할 게 없다.

간혹 이 선을 넘나드는 행위를 친분의 증거로 보는 사람이 있더라. 참 내… 대체 평소에 어떤 인간들하고 어울리길래 이런 생각을 하는건지. 스스로 이 질문을 던져보길 바란다.
‘나는 누가 내 선을 넘어오는 걸 좋게 본 적이 있는가?’
나는 한번도 그런 적이 없다. 누가 딱 저렇게 생각해서 저 지랄을 한다면, 그 새끼가 병신이란 소리 밖에 안된다. 뭔 열 몇살 먹은 애도 아니고. 모진놈 옆에 있으면 벼락 맞는다는 옛말이 있지 않은가. 병신 가까이 해봐야 도움 될 일 없다. 선을 넘나드는 행위와 친분과의 관계는, 친분이 있다면 그나마 쌍욕은 안먹는다 정도일 뿐이다.

요약하자면, 한국에서는 그 선이 명확하지 않은 덕에 영양가 없는 오지랍에 시달려야 했고, 뜬금없이 화내는 사람들을 견뎌야 했다. 내 옷을 허락 없이 입고 나간 룸메는 덤이다. 미국생활 10년 동안 나한테 이런 짓 한 사람이라고는 한국인 유학생들 밖에 없었다. 이룬건 쥐뿔도 없는 주제에 다른 사람들 귀찮게 개소리 찍찍 뱉고 건드려놓고는 어색한 맞장구라도 쳐주면 뭐가 된양 어깨 피는 맛으로 산다면야… 미국 오면 안된다. 나도 그런 인간들하고 말 섞기 싫다. 내가 내 할 일만 제대로 하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피곤할 일이 없는 미국 사회가 편하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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