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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Life

팔자에 없는거 하면 안된다 vs 팔자에 있으니까 하는거다

2019년 어느날이었던 것 같다. 친구한테 문득 연락이 와서는 책을 써보자고 하더라고. 이 친구 소개를 잠시 하자면,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고, 둘 다 공학을 공부했다. 은근히 같은 대학에 진학했으면 했는데 나보다 조금 못한 대학에, 물론 이 친구는 반대로 말하겠지만, 가더니 거기서도 학고도 맞아보는 등 참 여러가지를 하더라. 그런데 '꼭 공부 안하던 놈이 대학원 간다'는 가설을 증명이라도 하듯 석사까지 꾸역꾸역 마쳤다. 그러고는 대기업 들어가서 몇년 조용히 있다가 갑자기 주재원으로 뺑뺑이 돌기 시작하대. 사실 엔지니어야 뭐 현장에 있어야 하는 법이니 해외에 공장이 있으면 차출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배터리 만드는 회사에서 IT을 한다더라고. 너 전공이 배터리 아녔냐? 공장 돌리는 인프라스트럭쳐 쪽 일인 모양인데 나도 자세히는 모르겠다.

아무래도 본인이 해외로 돌다보니 해외생활에 대한 책을 써보자는 것이었다. 난 이 제안을 받고는 곰곰히 생각해봤다. 왜 하필 나일까? 친구들 중에 미국에서 사는 애들이 한둘이 아닐텐데 말이야. 그 중엔 분명히 예외적인 성취를 이룬 사람들도 있을텐데 왜 하필 평범하게 살고 있는 나일까? 뭐 근데 아마 이 제안에 OK를 한 사람이 나 밖에 없어서인 것 같다.

사실 내가 이 제안을 덥석 받은 건 믿는 구석이 있어서다. 지금껏 이 블로그에 쌓아둔 글이 있으니, 대충 여기서 긁어다가 욕 좀 빼고 편집하면 금방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더라고. 기본적으로 이게 내가 그 당시의 느낌을 일기쓰듯 쏟아놓은 것들이라 지금 시점에서 남들에게 읽히기 위한 글로는 적합한게 드물었다. 그래서 거의 그냥 지금 하고 싶은 이야기를 처음부터 다시 한다고 마음먹고 써야했다. 20% 정도는 이 블로그에서 가져오고, 나머진 그냥 다시 썼지. 그동안 짬짬이 써모은 글이 A4로 120 페이지 분량이 나오더라. 이제 대충 다 쓴 것 같다.

이제는 출판 준비, 즉 출판사를 알아봐야 할 단계에 왔다. 사실 이 친구가 결혼을 좀 일찍 했고, 애들도 일찍 낳아서 본인 시간이 제법 난단다. 그래서 이것저것 하는 와중에 이미 책을 출판한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난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사실 이 책으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이 없고, 실제로 책으로 돈벌기는 아주 어렵다고 하니까. 그런데 출판사를 알아보던 와중에 좀 배운 것들이 있다.

출판을 하는 방법은 일단 이 세가지 정도가 있다.
(1)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고 계약을 한 다음 출판사 주도로 책을 만들고 유통하고 등등 다 한다.
(2) 출판사에 내가 돈을 주고 출판사의 인력을 써서 편집 등을 한 다음 책을 내는 방법.
(3) 그냥 전자책으로 혼자 낸다. 종이책도 만들어주는 서비스가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1)이다. 출판사가 우리의 원고를 마음에 들어하면, 지네 이름을 걸고 책 만들고 편집하고 마케팅도 하고 등등 해서 책이 나오고 서점에 깔린다. 이것을 목표로 친구가 원고를 20군데가 넘는 출판사에 보내봤으나 거절 메일조차 받는 일이 드물었다. 그냥 철저히 무시당하더라. 이렇게 무시당하는 이유를 대충 알 것 같긴 한데, 기본적으로 돈이 되지 않아서다. 여기에 대해서는 뒤에 더 자세히 설명하겠다. 뭐 좋긴 하지만 할 수가 없는 방법 되시겠다.

(2)는 흔히 자비출판이라고 하는 건데, 그냥 300만원에서 500만원 정도 든다. 출판사에 그냥 인건비 주고 해달라고 맡기는거지. 그 친구가 예전에 이 방식으로 책을 낸 적이 있다. 그런데, 내가 돈 주고 사람 좀 고용해서 쓰는 것과 비슷한 것 같은데 의외로 나의 재량은 별로 없다. 책값조차 내가 원하는대로 정할 수가 없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우리가 그냥 아마추어인거 다 안다. 마케팅도 제대로 못할 책, 많이 팔릴 리는 당연히 없고 그저 지인이나 좀 사주겠지. 그러니 책값이 제법 비싸게 책정되더란다. 예비독자들이 가격에 비탄력적일테니. 지인들에게 강매하기도 미안하게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방법은 드랍했다.

(3)은 싸게 낼 수도 있고, 전자책의 경우에는 책값도 내 마음대로 책정할 수 있다. 전자책 전자서점에 올려주고 팔리면 거기서 수수료를 가져가는 서비스가 제법 있더라. Apple Books도 사실 그런거고. 그런데 문제가 좀 있다. 한국의 전자책 시장이 너무 작단다. 종이책에 비하면 1/8 수준이라네. 돈 버는 건 둘째치고, 전자책으로만 내면 우리가 쓴 책이 읽히지를 않는다. 또한, 사실 (2)하고 비슷하긴 한데, 아무도 우리가 책을 낸 줄을 모른다. 마케팅은 알아서 해야한다. 종이책 만들어주는 서비스가 또 있긴 한데, 뭐 이걸 또 유통시키는 건 별개의 문제다. 즉, 사람들에게 읽히지 않는다는 심각한 단점이 있다. 그런데 그냥 책 만들어보는 데 의의를 둔다면 이게 돈도 안들고 좋다.

그럼 도대체 책을 내고 팔리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 걸까? 이걸 좀 알아봤지. 지인들 통해서 말이야. 일단 내가 한다리 건너서 알 수 있는 사람들을 보면, 출판사에 원고 싸들고 가서 책 좀 만들어달라고 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 일단 본업으로 유명하거나, 유튜버로 유명해지거나, 블로거로 유명해지거나, 하다못해 어디 내가 올린 글이 여기저기 떠돌다가 사람들의 이목을 많이 받으면 출판사에서 접근을 해온다고 한다. 사실 출판사에서 기획하시는 분들 어디 싹수 있는 애들 없나 하고 열심히 찾아보고 다니지 않으시겠나. 이렇게 먼저 팬베이스를 갖고 있는 사람들, 글도 잘 쓰고 하면, 픽업해다가 책 내는거지. 그래야 홍보도 쉬울테고.

이 쯤에서 우리를 돌아봤다. 본업으로 유명한가? 아니다. 블로거로 유명한가? 이 블로그는 주인장인 나조차도 일주일에 한번 들어올까 말까다. 유튜버로 유명한가? 그 친구가 유튜버를 하고 있긴 하다. 업무 효율을 올리는 엑셀 사용법 이런거 올라 있는데, 구독자는 이천명 좀 넘는 수준이니 뭐 출판사에서 알아볼 리가 없다. 어디 내가 올린 글이 떠돌아다니며 이목을 많이 받았는가? 해당사항 없다. 사실 내 블로그는 가까운 지인들도 모른다. 그렇다고 하루키 뺨치게 글을 잘 쓰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출판사에서는 자기개발서를 원하는 듯한 느낌도 들었는데 이것과도 거리가 멀다. 도저히 뭐 출판사에서 좋아해줄만한 구석이 없다. 완성도 안된 원고를 출판사에 무작정 들이민게 참 무모하면서도 좀 무례했다 싶기도 하다.

What now? 그래 중요한건 지금부터 뭘 하느냐지. 일단 지인을 통해서 어느 출판사에서 편집하시는 분을 직접 컨택하기로 했다. 아마도 관심이 없으시겠지만, 그래도 거절의 이유라도 알고싶다. 진짜 간절하게 그 이유를 듣고 싶다. 앞으로 할 일에 참고도 적잖이 될 것 같고 말이지. 그래 뭐 출판사에서 거절이 날테니 우린 (3)으로 간다고 잠정적으로 정해놨다. 어디 사람 구해다가 표지는 디자인해야겠고 편집이야 뭐 우리가 알아서 해야지. 일단 책을 내고나면, 책 내용을 블로그에다가 올릴 생각이다. 전자책이라도 돈 받고 팔면서 그걸 그냥 블로그에 올리는게 언뜻 말이 안되어 보인다. 근데 우리 목적은 처음부터 돈이 아니었다. 그냥 우리 경험이 도움이 될 사람이 분명히 있지 않을까 해서 시작한 일이니까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하고 싶다. 뭐 나는 대충 묻어가는 처지라 이거 연구는 그 친구가 하겠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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